서아프리카가 프랑스에 분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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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모든 게 너무나 긍정적이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왜 현재 아프리카에선 프랑스의 인기가 하락하는 것처럼 보일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 자국이 식민통치 시절 훔친 아프리카 문화재의 반환을 시작했다. 의례적인 국가 간 관계를 뛰어넘어 아프리카의 젊은 세대와 시민단체들과 교감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노력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수많은 민간인과 경찰, 군인을 살해한 지하디시트 (이슬람성전주의자및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싸우기 위해 프랑스군의 사헬 주둔을 결정하기도 했다. 또한 군사 정변에 맞서 민주정치를 수호하는 지역 공동체인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도 지지했다.
더불어 올해 그는 르완다로 날아가 1994년 르완다 대학살에서 자국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를 향한 아프리카인들의 불만과 비판은 이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들끓고 있다.
지난달 현지 이슬람 무장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를 지나던 프랑스군을 시위 주민들이 여러 차례 막아냈다.
지난 9월 초구엘 마이가 말리 총리는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프랑스를 정면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말리에 배치됐던 프랑스군 감축에 나선 것을 "비행 중에 말리를 버린 것"이라 비유한 것. 그의 발언은 많은 공감을 샀다.
진보적인 서아프리카 전문가들과 도시 거주 청년층 사이에서 제기되는 CFA 프랑 폐지론은 이젠 흔하게 들린다. CFA 프랑은 프랑스의 해외 영토나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사용하는 통화로 프랑스 정부의 보증하에 가치가 유로화에 고정되어 있다.
반대론자들은 CFA 프랑을 통해 프랑스가 자국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해당 통화 사용국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신 식민주의를 연상시키는 오만감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떤 전임자보다 아프리카를 더 걱정하고, 아프리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더 잘 아는 대통령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감지되지 않았던 그런 높은 수준의 반감에 직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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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개인 성향을 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자신감이 자칫하면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여러 차례 외교적 결례를 범한 바 있다.
2019년 11월 말리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프랑스 군인 13명이 사망한 후, 그는 서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긴급회담을 위해 프랑스로 날아 오라고 요청했다. 이는 신 식민주의적 오만감으로 비쳐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이전에 말리와 니제르는 프랑스의 사망자 규모보다 훨씬 큰 군 인명 피해를 겪었으니 더 그랬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신속히 상황 수습에 나섰다. 그는 니제르 수도 니아메로 날아가 니제르군 전사자를 추모하고 정상회담을 2020년 1월까지 연기했다.
사실 현재의 반 프랑스 정서는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되기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정치 분석가 실백 응게산은"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화와 관련돼 오랫동안 존재한 논란을 그 이유로 볼 수 있다"며 "우리 가운데 다수는 식민지 시기와 그 굴욕을 알고 있는 부모의 자녀"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프랑스에서 독립된 초반, 프랑스는 아프리카 지도자와 엘리트들과 끈끈한 인맥을 유지했다. 이런 특별한 관계를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인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관계가 인권이나 투명성에 대한 고려 없이 기득권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너무 자주 동원되는 데 있다.
물론 프랑스 말고 다른 강대국들 역시 독재자 행보를 보여온 동맹과 결탁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들과 어떤 의심도 없이 관계를 맺었고 유독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카리스마와 변화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실패는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났다. 당시 르완다의 주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은 대량학살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르완다의 동맹이면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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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역대 정부는 프랑스의 아프리카 관계를 개선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개발과 민주적 통치를 확립하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런 기세는 나중에 꺾여버렸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임기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인은 역사에 충분히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너무나 전략적이지 못한 발언이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1967년부터 가봉을 통치해온 봉고 가문과 같은 옛 동맹을 총애했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취임 당시, 프랑스는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 지대의 안보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헬에 힘을 쏟느라 프랑스는 개혁 노력을 되살릴 만한 정치적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취임으로 상황이 바뀌게 된다. 그는 아프리카와의 관계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가진 정치적 영향력과 개인적인 열정으로 이런 변화를 일궈 낼수 있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은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에서 학생들에게 아프리카 정부가 원한다면 프랑스는 CFA 프랑의 개혁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몽펠리에에서 열린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담에 대통령들 보단 시민사회, 청소년,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했다.
사헬이라는 이름의 곪은 상처
마크롱 대통령은 대중의 언어를 구사했고 낡은 구조적 문제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던 사안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성향은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항상 환영 받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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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사헬 지대의 상황은 점점 곪아만 갔다.
이 지대는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점점 더 먹고 살기 어려워졌고, 공권력이 닿지 않은 곳도 많다. 이런 공백을 틈타 사헬 지대는 지하디시트의 새로운 본거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사헬 지대 국가들은 이들을 제압하기에 역부족이었기에 프랑스가 2013년부터 '바르칸 작전'이라고 불리는 지하드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사헬 주둔은 오히려 서아프리카 전역에 프랑스에 대한 불만이 퍼지는걸 부채질했다.
병력 5,000명 이상이 배치했고 5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프랑스는 대규모 군사적 노력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지역 사회와 보안군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을 일삼는 지하디시트를 근절하지 못했다.
그러지 못한 덴 군사적,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현지 여론은 프랑스가 서구의 첨단 군사 강국으로서 문제를 "해결"했었어야 했고, 그렇게 못하다면 이젠 빠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반감이 앞서 현지 시위대가 프랑스군 차량을 막기로 한 결정에도 작용한 것.
이에 앞서 벌어진 일련의 일도 반 프랑스 정서에 기여하기도 했다는 게 응게샨의 지적이다.
"다카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설, 와가두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 코트디부아르에서의 전쟁, 그리고 실망스러운 테러 세력 소탕 결과, 이 모든 것에 대한 실망감이죠. 그외 CFA프랑화에 대한 문제,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 프랑스의 일부 독재자에 대한 지지, 프랑스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단어 선택 등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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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아프리카에서 반 프랑스 정서의 기저엔 사회적, 공동체적 요소들 또한 깔려 있다.
사헬의 한 고위 장교는 프랑스가 말리 북부에 있는 투아레그 반군의 동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이 주장을 완강히 부인했으며 프랑스의 부인엔 근거가 있어 보인다.
이와 비슷한 복잡한 상황은 프랑스가 지지를 표한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를 둘러싸고도 나타난다.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는 말리와 기니의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젊은이는 이 경제공동체를 현직 대통령의 친목 단체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은 이 단체가 민선 정부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규칙을 조작하는 걸 너무 늦게 지적했고, 개혁을 약속했던 군부 지도자들을 대중이 지지하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를 위기관리 기관으로서 지지하지만, 프랑스가 오래된 기득권의 버팀목으로 인식되고야 말았다.
저자 폴 멜 리는 런던의 국제 정세 연구소 채텀 하우스의 아프리카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