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말풀이가 어려워서 짜증난 과학자가 벌인 일

사진 출처, Getty Images and Matt Ginsberg
- 기자, 제인 웨이크필드
- 기자, 기술 리포터
매트 긴즈버그 박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는 인공지능 과학자, 작가, 극작가, 마술사이자 스턴트 비행기 조종사다. 하지만 십자말풀이엔 영 능하지 못하다.
그는 사실 미국 언론사 뉴욕 타임스에 십자말풀이를 기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자신이 낸 문제조차 풀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한 십자말풀이 대회에서 또다시 패배하자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십자말풀이를 정말 잘하는 700명과 함께 있으니 실력없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절 대신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죠."
마침내 그는 해냈다. 10번의 시도 끝에 그의 프로그램 '닥터필(Dr Fill)'이 첫 우승을 거둔 것이다.
닥터필은 미국 최고의 십자말풀이 대회 '아메리칸 크로스워드 퍼즐 토너먼트(American Crossword Puzzle Tournament)'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닥터필은 인터넷에서 긁어 모은 엄청난 양의 십자말풀이 도움말과 해답을 포함해 다량의 자료로 훈련을 받았다.
십자말풀이에 쓰일 수 있는 단어 배치를 빠르게 검색하는 방법도 배웠다. 긴즈버그 박사는 이 같은 방식이 상당히 '원시적인' 시스템이라고 인정했다.
올해 들어선 다른 과학자들과도 손잡았다.
"행사 시작 몇 주 전, 십자말풀이 힌트 시스템을 만든 이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우리는 곧 서로의 시스템을 결합할 수 있음을 알아챘죠."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자연어 처리 연구 그룹'을 이끄는 댄 클라인 교수는 봉쇄령 기간, 연구진을 하나로 모을 무언가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고 BBC에 말했다.
그러던 중 십자말풀이 해결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클라인 교수는 '닥터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두 시스템이 좋은 조합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우리 시스템은 언어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이 있고, 닥터필은 정답과 도움말을 결합하는 데 능숙했습니다. 각기 매우 다른 기술이지만 확률에 대한 공통 언어를 사용했죠."
독이 든 펜네 파스타
십자말풀이를 인공지능에게 시키는 건 얼핏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십자말풀이는 실제로 머신 러닝에는 놀 거리 풍성한 놀이터다.
즉각적으로 답을 떠올려 내야 하는 기본 십자말풀이는 인공지능 입장에선 아주 쉬운 작업이다.
인공지능은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에서 얻은 많은 양의 정보로 프로그램되기 때문이다.
영국인에게 친숙한 암호 십자말풀이 또한 기계엔 매우 쉽다. 철자법 같은 정해진 규칙과 지시를 포함하고 있어서다.
반면 미국식 십자말풀이는 지식과 측면 사고가 모두 필요하다. 말장난식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클라인 교수는 닥터필이 답을 맞춘 문제들 중 특히 뿌듯했던 질문으로 '살인 사건의 중심에 있는 파스타 요리가 무엇인가?'였다고 했다.
정답은 '독이 든 펜네(Poisoned penne)'였다. 익명으로 음해성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 '포이즌 펜(Poison pen)'을 유추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클라인 교수는 "이런 건 위키피디아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이라고 덧붙였다.
긴즈버그 박사는 미국식 십자말풀이는 컴퓨터가 맞추기엔 '잔인하게 어려울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닥터필은 전체 대회에서 단 세 번의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약간의 차이로 우승했다.

사진 출처, YouTube/Matt Ginsberg
다만 우승 상금 3000달러는 긴즈버그 박사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사전에 동의한 일이었다.
그는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했다.
긴즈버그 박사는 인간과 기계가 모두 대회에 참여한다면 주최 측엔 복잡한 일이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십자말풀이 동호회에 대해 '멋진 집단'이라고 했다.
경쟁자들은 인공지능 적수를 혐오하는 척했다. 닥터필이 잘하면 야유를 보냈고, 못하면 환호했다.
하지만 그는 참가자들이 정말로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물론 올해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경쟁자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이들이 정말 응원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닥터필은 일반적으로는 쓸 수 없는 추가적인 컴퓨터 성능의 이점까지 누렸다.
이번 성과로 그는 선도적인 인공지능 연구 회사이자, 모두 알다시피 게임 우승에 익숙한 딥마인드(DeepMind)로부터 축하를 받았다.딥마인드는 2016년 세계 정상급 바둑 기사를 이겼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딥마인드 선임 연구원인 앨버타 대학 컴퓨터과학과 마이클 볼링 교수는 우승 소식에 이 같은 말을 전해 왔다.
"긴즈버그 박사와 버클리 팀, 축하합니다. 주요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힘을 합친 것과 검색 및 학습의 강력한 인공지능 구성 요소가 함께 쓰인 건 모두 굉장한 성과이자 고무적인 협력입니다. 다만 나보다 십자말풀이를 더 잘하는 존재가 있다 해도, 화요일 퍼즐을 놓고 고군분투하는 나의 즐거움을 뺏지는 못할 겁니다."
다르게 배우기
한 가지만 잘하는 기계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작업들을 해낼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의 완성까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미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클라인 교수의 전문 분야인 자연어 처리는 이미 번역, 음성 인식 및 일상 대화가 가능한 음성 비서 등 다양한 현실 시나리오에서 상당한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는 기계가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시작 단계라고 했다.
"컴퓨터가 처리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계속 변화하는 문제입니다. 한때는 컴퓨터가 인간과 체스를 둘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이제는 인간이 기계와의 체스 경기에 도전할 수 있다는데 놀라죠."
컴퓨터는 수학, 논리, 미래 전망을 조합해 경기에서 어떤 수를 둘지 결정한다. 이는 인간이 수를 계산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긴즈버그 박사는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한다는 데 동의한다.
"닥터필은 우리가 하는 방법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가능한 모든 답변을 엄청나게 검색하죠."
그는 이 같은 다양성이 미래를 위한 '좋은 선구자'라고 말했다.
"기계를 쓰면 우리가 직접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겠죠. 우리는 상호 이익을 위해 기계와 협력할 것이고요."
그러나 그는 아직 세계를 지배할 계획이 없다.
"닥터필은 십자말풀이 프로그램일뿐이며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