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스타 올리비아 뉴튼 존, 암투병 끝 별세… 그는 누구였나?

영국 태생의 유명 가수이자 배우 및 사회 운동가였던 올리비아 뉴튼 존이 지난 8일(현지시간) 향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컨트리 팝으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던 뉴튼 존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뮤지컬 영화인 '그리스'에서 착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등장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스타다.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거친 이미지는 1981년 앨범 '피지컬'을 발표하며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나 이후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인도주의적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뉴튼 존은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웨일스 출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블레츨리 파크' 기관에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던 영국 보안국(MI5) 요원이었다.

사진 출처, Robert Whitaker
어머니는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막스 보른의 딸로, 1933년 나치당이 집권했을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왔다.
1954년 뉴튼 존의 아버지가 호주 멜버른대학교의 독일어 교수로 부임하면서 가족 전체가 호주로 이주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했던 뉴튼 존은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학창 시절 과학 공부에 어려움을 느껴 꿈을 접는다.
대신 뉴튼 존은 음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학교 친구 3명과 짧게 여성그룹을 결성해 언니의 남자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호주 경연 대회 우승
그러다 호주 현지 싱어송라이터인 이안 투르피와 프로페셔널하고도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한다.
투르피가 멜버른 방송국인 ATV의 '더 고!! 쇼' 진행을 맡게 됐을 때 뉴튼 존은 미리 녹음한 영국과 미국의 히트곡을 선보이며 고정 게스트가 된다.
뉴튼 존은 호주의 또 다른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 'Anyone Who Had a Heart'를 부르며 1등을 차지한다. 처음엔 호주를 떠나기 꺼렸으나, 딸의 커리어에 찾아온 기회를 알아본 어머니의 권유로 모녀는 함께 1966년 영국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사진 출처, Rex Features
뉴튼 존은 런던의 여러 클럽에서 공연하며 이름을 알리려고 시도했다. '데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첫 싱글 음반으로 'Till You Say You'll Be Mine'의 커버곡을 발표했으나, 차트 진입에 실패했다.
이후 호주에서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팻 캐럴과 팀을 이뤄 2인조를 결성하게 된다. 이 듀오는 유럽의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런던 '레이몬드 가극단'에서도 공연했는데, 후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스트립클럽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컨트리풍 앨범
1971년 밥 딜런이 쓴 타이틀곡 'If Not For You'가 수록된 동명의 앨범을 발매하며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다. 해당 곡이 영국 차트에서 7위까지 오른 것이다.
이 앨범의 또 다른 곡인 'Banks of the Ohio' 역시 히트하게 되는데, 뉴튼 존의 향후 음악 커리어 방향을 알리는 컨트리풍의 곡이었다.
이후 비록 수록곡 'What is Life'가 영국 톱 20에 들긴 했으나, 1972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Olivia'는 이전만큼 큰 화제를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다 1973년 컨트리풍의 앨범 'Let Me Be There'를 발매하며 마침내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동명의 곡으로 뉴튼 존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뉴튼 존은 1974년 유럽 최대의 음악 경연 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Long Live Love'를 부르며 4위를 차지했다. 그 해 1위는'Waterloo'를 부른 스웨덴 출신 4인조 그룹 'ABBA'였다.
같은 해 앨범 'If You Love Me, Let Me Know'를 발매하며 대서양 건너 북미에서도 자리 잡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발매된 이 음반 이후 싱글 'I Honestly Love You'로 미국에서 첫 1위를 차지한다.
1974년~1977년까지 '빌보드 핫 100'이나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할 히트곡 7곡 중 첫 곡이다.
영화 '그리스'
또한 같은 해인 1974년 로레타 린, 돌리 파튼, 태니아 터커 등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미국 컨트리음악협회(CMA) 선정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
당시 뉴튼 존의 팝 스타일 음악이 최고의 정통 컨트리 곡들과 동등하게 심사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미국 컨트리 뮤직 팬들의 반발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유명 컨트리 뮤직 스타들의 지지 덕에 뉴튼 존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1977년까지 뉴튼 존의 커리어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자신의 히트곡을 모아 만든 앨범 'Olivia Newton-John's Greatest Hits'가 컨트리 뮤직 차트에서 7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차트에 들어갈 새로운 곡을 선보이지 못한 것이다.

사진 출처, Rex Features
그러다 제작자 앨런 카로부터 뮤지컬 영화 '그리스'에서 여주인공 '샌디'역을 제안받게 된다.
당시 28살이었던 뉴튼 존은 자신이 10대 소녀 역을 맡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걱정했다. 이에 남자 주인공 '대니' 역을 맡은 미국 배우 존 트라볼타와 스크린 테스트를 먼저 하고 싶다고 고집했다.
이후 뉴튼 존의 억양 때문에 극 중 샌디는 호주에서 온 소녀로 설정이 바뀌었다.
이미지 변신
영화 '그리스'는 1978년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뉴튼 존이 극 중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 'Hopelessly Devoted to You', 'Summer Nights' 등은 히트곡 반열에 올랐으며, 뉴튼 존은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해당 영화를 통해 뉴튼 존은 이미지와 음악에 변화를 주게 된다. 뉴튼 존은 다음에 발매한 앨범 'Totally Hot(1978)'에서 검정색 가죽옷을 차려입고 등장했다. 이 앨범으로 1975년 이후 다시 한번 미국 톱 10 앨범에 들게 된다.
후속 앨범 'Physical(1981)'은 뉴튼 존의 앨범 중 가장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드러낸 작품으로, 여러 비평가로부터 커리어 최고의 음반이라고 칭송받았다. 동명의 타이틀곡은 10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머무를 정도로 사랑받았다.

사진 출처, Rex Features
뉴튼 존은 이 앨범을 당시 남자친구였던 매트 라탄지에게 헌정했다. 1984년 결혼한 이들 커플은 뉴튼 존이 주연을 맡았으나 흥행엔 실패한 뮤지컬 판타지 영화 '제너두' 촬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1986년 딸 클로이를 낳고 3년간 휴식기를 보낸 뉴튼 존은 다시 음악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했으나, 유방암을 진단받으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투병과 회복 과정을 통해 뉴튼 존은 또 한 번 음악적 변화를 맞게 된다. 더 대중적인 팝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사회 운동
뉴튼 존은 이후 인도주의 및 건강 관련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참치 어망에 잡힌 돌고래 학살에 항의하기 위해 1978년 일본 콘서트 투어를 취소하는 등 동물 복지 운동가로도 이미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또한 멜버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암 연구기관인 '올리비아 뉴튼 존 암 & 웰니스 센터'도 설립하는 등 암 연구와 환자 지원 활동도 펼쳤다.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뉴튼 존은 대부분 앨범이 호주 내에서만 발매됐음에도 음반 작업 또한 멈추지 않았다.

사진 출처, Rex Features
2008년엔 페루에서 잉카식 영적 의례를 통해 자연 치유법 기업가 존 이스털링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2017년 5월 유방암이 재발해 척추로 번지면서 미국과 캐나다 콘서트 투어가 취소됐다. 이후 고통 완화를 위한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하자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몇 년 후인 2020년 음악 및 사회 운동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과 함께 '데임(Dame)'의 작위를 받았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인물이다. 60년대 말 팝 여왕은 컨트리 뮤직 스타로 변신했고, 이후 '그리스'에선 거친 모습으로 돌아왔으며, 이후엔 여러 의미 있는 사회 활동을 이끌었다.
한편 뉴튼 존이 '그리스'에서 입고 나온 전설적인 가죽 재킷과 바지는 2019년 경매에 출품돼 40만5000달러(약 5억원)에 팔렸다.
당시 억만장자 2명이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에 나온 이 의상을 소유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뉴튼 존의 바람대로 경매 수익금은 호주 암 연구를 위해 기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