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러시아는 어떻게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씨를 훔쳤나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농장 위를 헬리콥터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씨유 수출국이다

BBC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역에서 곡물뿐 아니라 현지 농민들에게서 조직적으로 해바라기 씨까지 강탈하고 있다는 주요 증거를 포착했다.

BBC는 피해를 본 농민들을 인터뷰했으며, 해바라기 씨가 어떻게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에서 러시아 본토까지 운반되는지 보여주는 개인 및 공개 SNS 단체 대화방 메시지를 추적했다.

작년 기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씨유 수출국으로, 각각 510만 톤, 310만 톤을 수출했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산 해바라기씨유의 일부는 우크라이나산 해바라기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농업의 주요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달 중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멜리토폴에서 러시아 측이 세운 행정부 관료들은 지역 농민들과 만났다.

해당 만남은 영상으로도 촬영됐다.

자칭 "멜리토폴 내 [러시아가 세운] 군민 행정부의 수장"인 안드레이 시후타는 농민들을 향해 "우리는 '국립 곡물 회사'를 설립했다. 이제 이곳에서 곡물의 지표 가격을 정하고 해바라기 씨의 가격도 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엔 관련 법인이 등록된 사실이 없다.

현지 친러 텔레그램 채널은 이 만남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공간은 우크라이나 농업의 주요 상징물인 밀 한 다발과 해바라기 꽃다발로 꾸며져 있었다.

해바리기 씨 운반 경로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씨 추적하기

약 500명이 참여한 왓츠앱 단체 대화방에선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서 러시아 본토까지 농작물을 운송해달라는 주문이 이뤄졌다.

이 대화방의 참여자 중 한 명이 BBC에 대화 내용을 캡처해 보내왔다.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달 18일에는 "씨앗.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자포리자에서 [러시아] 로스토프-온-돈까지. 대량 운반"라는 주문글이 올라왔다.

같은 날 올라온 또 다른 모집글은 "수송 호위 제공됨. 싸움은 없고 평온한 분위기. 러시아 검문소만 있음. 빨리 통과할 수 있음"이라며 자칭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지역에서 러시아까지 해바라기 씨를 운반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BBC가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해당 대화방의 전화번호 십여 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트럭 운전사나 중소 화물 기업 소유주들의 번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러시아인들 혹은 이들과 협력하는 이들은 공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도 곡물을 운반해줄 사람을 찾기도 한다.

이에 BBC 특파원은 여러 트럭의 소유주인 척 위장해 비밀리에 이들과 접선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에서 농작물을 운송해줄 트럭을 찾는다던 러시아 출신 차량 배치 담당자 엘레나는 우리에게 "훔친 씨앗이 아니"라고 말했다.

엘레나는 "[러시아가 세운] 군민 행정부가 통제되는 지역이다. 이러한 거래는 투명하게 이뤄지며, 합법적으로 사들인 씨앗"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에선 러시아가 세운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국영 기업의 농작물뿐만 아니라 전쟁 비축 물자인 곡물도 몰수했는데, 엘레나가 말한 "합법적으로 구매한" 작물이 이에 해당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 출발하는 모집 광고도 찾아볼 수 있었다.

BBC가 발견한 어떤 글엔 "적재 지점: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쿠피얀스크 지역. 하역 지점: [러시아] 보로네슈 지역. 긴급 모집! 내일 적재 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글의 작성자이자 자신을 러시아 사업가라고 밝힌 빅토르 역시 "공식적으로" 구매한 씨앗이라는 점을 들어 우리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빅토르는 곡물 운송업자로 위장한 BBC 기자에게 "서류도 전부 다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어떤 서류들인지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농작물을 "몰수"당하지 않으려면 시장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농작물을 "몰수"당하지 않으려면 시장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어떻게 우크라 해바라기 씨를 '구매'하나?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농작물을 "몰수"당하지 않으려면 시장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BBC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러시아 점령지 출신인 어느 농민을 인터뷰했다.

자신은 떠났지만 여전히 직원들은 남아있다면서 익명을 요구한 이 남성에 따르면 러시아 군인들이 5월 말 창고로 찾아와 농작물을 몰수해갔다고 한다.

"해바라기 씨 1200톤과 밀 860톤을 창고에 보관 중이었는데, 그들[러시아군]이 전부 가져갔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쪽 경비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려고 하더군요. 러시아군은 '우리가 하려는 게 아니라 지휘관이 내린 명령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지휘관이 어디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어요. 그냥 상냥한 척 군겁니다."

"전부 싣고 가져가 버렸습니다. 값을 내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경비원에겐 어떤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러시아 군인들은 그를 구타했습니다."

이 남성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강탈당한 농작물은 전쟁 전 가격을 기준으로 총 82만달러(약 10억원)에 이른다. 또한 180만달러에 달하는 장비도 잃어버렸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의 발레리야 마트비옌코 농민협회장은 "점령 당국에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저 씨앗과 농작물을 빼앗길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점령지에서 농산물을 판매하고 싶다면 러시아의 "군민 행정부"에 먼저 등록해야 한다고 한다.

마트비옌코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등록을 원치 않아 씨앗을 창고에 보관했다"면서 "만약 그 규모가 크고 등록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 몰수당한다. [러시아 군인들이] 창고에 들어와 모든 걸 싣고 떠나버린다"면서 "저들은 '귀사는 러시아 연방을 위해 국유화됐다'는 내용의 편지만 보여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점령지 내 중소 농가는 저렴한 가격에 해바라기 씨를 넘길 수밖에 없다. 전쟁 전 1톤당 600~700달러였으나, 현재 러시아인들은 1톤당 150달러 정도를 제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의 올렉산드르 호르디엔코 농민협회장은 헤르손 내 러시아 점령지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농민들은 [해바라기 씨를] 팔 수밖에 없습니다. 디젤, 연료, 비료 등을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러시아가] 이렇게 낮은 가격을 계속 제시한다면 다음 파종을 시작하는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씨로 무엇을 하나?

해바라기 씨로는 주로 기름을 추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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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해바라기 씨로는 주로 기름을 추출한다

BBC가 분석한 모든 모집 광고 속 우크라이나산 해바라기 씨를 실은 트럭의 최종 목적지는 러시아에 있는 추출 공장이었다.

하르키우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 농작물을 운반할 트럭을 찾고 있던 빅토르는 "우리는 바로 추출 공장으로 간다. 창고 같은 곳에 [씨를] 하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모집 광고에선 러시아 기업인 '블라고'의 씨유 추출 공장이 있는 러시아 남서부 보로네슈의 베르킨야야 카바 지역까지 가달라고 적혀 있었다.

러시아 서부 로스토브의 기간트로 곡물을 운송해줄 사람을 구하는 글도 있었다. 기간트는 러시아 기업인 '리소스'의 씨유 추출 공장이 있는 지역이다.

또 다른 모집 광고엔 '로스토프-온-돈 루고바야 9가'가 목적지로 적혀 있었는데, 해당 주소는 러시아 최대 농업 기업 중 하나인 '사우스 오브 러시아'가 자리한 곳이다.

BBC는 해당 기업들에 연락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추출된 해바라기유도 밀수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마트비옌코 회장은 점령당한 멜리토폴 내 씨유 추출 공장에서 현재 해바라기씨유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렇게 생산된 씨유는 크림반도를 통해 러시아 본토로 운송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지 농민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정은 진행 중이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멀리 3km 떨어진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향"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멜리토폴 내 러시아 점령지에 있는 어느 여성도 공장 안팎으로 장비가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에 BBC는 멜리토폴 내 추출 공장을 소유한 세르히 젤레프 공장주에게 문의했으나, 젤레프는 공장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가 씨유 추출 공장을 점거해 운영하고 있다는 현지 농민들의 제보가 있었다고 말하자, 젤레프는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