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동반자를 찾아주는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은 로맨스와는 다른 형태의 관계가 가진 가치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은 로맨스와는 다른 형태의 관계가 가진 가치를 보여준다
    • 기자, 제시카 클레인
    • 기자, BBC 워크라이프

디나 릴리그렌은 자녀를 둔 40대 여성이다.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 매기 브라운과 함께 몇 년째 미국 켄터키주에서 살고 있다. 그 사이 브라운에겐 연인이 생겼고, 청혼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이들은 헤어지지 않고, 셋이서 돈을 모아 함께 살 집을 마련했다.

릴리그렌의 말에 따르면, 브라운은 청혼을 받았을 때 "나는 릴리그렌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갖는 기대, 즉 결혼은 친구를 놓아주는 시기라는 기대를 청혼자가 갖지 않고 있다는 걸 브라운이 확인하고 싶어한 거죠."

브라운과 릴리그렌의 관계는 일반적인 우정을 넘어선다. 릴리그렌은 이를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라고 부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동반자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보통 애정과 성적 관계는 물론 그 이외의 다양한 관계의 중심인 배우자나 연인을 지칭하지만,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과거에는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싱가포르 출신의 20대 여성인 에이프릴 리와 르네 웡이 틱톡에서 이를 소개하며, 이 말이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2021년 9월 웡이 리와 함께 살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

리는 '리파이너리29(미국의 패션, 라이프스타일 디지털 미디어)'에 실린 글에서 자신들을 가장 친한 친구일 뿐 아니라, "서로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파트너"이며, 각자의 인생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게끔 돕고, 룸메이트인 동시에 오랫동안 함께하기를 원하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화제가 된 이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잇따라 언론에 소개됐다. 그 중에는 남성들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역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8세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동성애의 다른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리와 웡의 관계와 비슷한 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당시엔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은 로맨스와는 다른 형태의 관계가 가진 가치를 보여준다. 릴리그렌은 "우리 사회는 결혼에 비해 우정을 낮게 평가한다"며 "우정은 친구가 결혼하면 부차적인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된 친구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 사례는 18세기 후반 '랑골렌의 두 귀족 여인들'이다

사진 출처, British Museum

사진 설명,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 사례는 18세기 후반 '랑골렌의 두 귀족 여인들'이다

'보스턴 결혼'

일라이 핀켈 노스웨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식민지 시대부터 1850년 무렵까지의 결혼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했다. 그는 "이 시대의 결혼은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는 결혼이 생존의 열쇠였다.

하지만 1800년대 후반,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LGBTQ 역사학자 릴리안 파더만은 중산층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며 사회 진출의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의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진 여성들 중에서 남편 대신 다른 여성과 동거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파더만은 이 무렵 "두 여성이 오랜 기간 헌신적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사는 것"을 표현하는 '보스턴 결혼'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용어의 유래가 확실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용어가 두 여성의 로맨틱한 관계를 보여주는 헨리 제임스의 1866년작 '보스턴 사람들'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녀는 "이 용어가 여성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었는지 등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여성들 간의 성적 관계에 대해 공공연히 말하지 않고,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죠."

여성 간의 헌신적 관계에 대한 옛 기록으로는 '랑골렌의 두 귀족 여인들'로 알려진 엘리너 버틀러의 이야기가 있다. 버틀러는 1700년대 후반 아일랜드의 가족을 떠나 다른 귀족 여성과 여생을 함께 했다. 그녀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동거인인 사라 폰슨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일상을 일기장에 자세히 적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성적인 관계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이들이 맺었던 관계의 자세한 사정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역사가들은 당시에는 성적인 관계가 아닌 "로맨틱한 우정"이 흔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를 오늘날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의 전조로 볼 수 있다.

'분리할 수 없을 것 같다'

핀켈은 180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결혼이 "실용"을 떠나 "사랑"에 기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생존보다는 사랑과 정당성을 근거로 인생의 동반자를 찾은 것이다. 핀켈에 따르면, 산업화로 도시에 온 젊은이들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첫 세대"였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이들은 삶의 여정에서 "감정적 성취"를 중시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르자, 서구에서 삶의 동반자를 찾는 방식이 또 달라졌다. 핀켈은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늘날처럼 결혼이 "진정성과 개인의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결혼 및 인생의 동반자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수준이 됐다. 성적 파트너이자 동거인, 아이를 함께 키우는 부모, 정서적 지원자, 재정적 동반자 등 여러 가지를 한 사람에게 기대하게 된 것이다. 핀켈은 한 사람에게 많은 것이 요구되는 "부담감으로 관계가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라토닉 동반자에겐 성적 욕구와 애정 욕구의 충족을 기대하지 않는다. 또한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 있으면, 정서적 지원을 연인에게만 요구하지 않는다.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에는 경제력을 통합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릴리그렌과 브라운의 경우 경제력을 통합하지 않았다. 릴리그렌은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집안 살림을 함께하며 살아왔고 이제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은 결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 관계를 맺는 이들 중에는 결혼을 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의 법적 권리를 누리거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서로에 대한 진실한 약속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맺는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맺는다

어떤 이들은 두 사람이 성적 관계없이 친밀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플로리다에 사는 제이와 크리스틀은 매거진 '더 컷'에 실린 자신들의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 이야기가 틱톡을 통해 알려진 후에야, 비로소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전적으로 플라토닉 관계라는 것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릴리그렌의 경우에도 브라운과의 관계에 대해 쓴 글이 브라운 및 브라운의 남편 가족들에게 세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됐다.

릴리그렌은 "그 이후에 브라운 부부의 가족들도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물론 그 기사에는 비난섞인 반응도 있었다. "우리가 성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 부정적인 댓글을 많이 올렸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이 동성 연인과의 관계를 위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낮다. 퀴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애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당당히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 릴리그렌 역시 '허프포스트' 기사를 통해 자신이 만나고 있는 연인을 밝혔고, 브라운은 다른 남성과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플라토닉 라이프 파트너십을 이어갈 계획이다.

릴리그렌은 "매기와 떨어져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는 2년째 만나는 연인이 있어요. 그 사람과의 관계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매기와 함께 사는 게 행복합니다. 저는 이 상황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