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법원, 모스크바 공연장 총기 난사 용의자 4명 기소

동영상 설명, 모스크바 법정으로 끌려오는 용의자들
    • 기자, 그레이엄 베이커
    • 기자, BBC News

러시아 당국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최소 137명을 살해한 혐의로 용의자 4명을 기소했다.

24일 모스크바 법정엔 뒤로 손이 묶인 채 고개를 숙인 남성 3명과 휠체어에 탄 남성 1명이 끌려왔다. 이들 모두 테러 혐의로 기소됐다.

이슬람국가(IS)가 해당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서며 영상으로 된 증거도 제시한 가운데 러시아 관료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우크라이나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 당국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한편 러시아 당국이 밝힌 용의자 4명의 이름은 달레르존 미르조예프, 사다크라미 무로달리 라차발리조다, 샴시딘 파리두니, 무하마드수비르 파이조프다.

이들 중 3명이 복면을 쓴 경찰에 붙들려 모스크바 내 바스마니 지방법원으로 연행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달레르존 미르조예프(왼쪽), 사다크라미 무로달리 라차발리조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달레르존 미르조예프(왼쪽), 사다크라미 무로달리 라차발리조다로 확인된 남성들의 모습

용의자들은 모두 구타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잔혹한 심문 과정이 담긴 영상은 러시아 보안군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보이며, 용의자 중 적어도 1명이 전기 고문을 당했다는 의혹도 있다.

러시아 법원이 미르조예프와 라차발리조다로 신원을 확인한 남성들의 눈엔 모두 파란 멍이 든 상태였으며, 라차발리조다의 귀는 붕대에 감겨 있었다. 체포 과정에서 일부가 절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르조예프는 또한 찢어진 비닐봉지 같은 물체를 목에 감고 있었다.

파리두니로 확인된 남성은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었으며, 파이조프로 확인된 남성은 얇은 병원 가운을 차림으로 휠체어에 실려 법정으로 끌려갔는데,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파이조프는 한쪽 눈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용의자 4명 모두 유리로 된 부스 안으로 인도됐으며, 재판 내내 복면을 쓴 경찰이 이들을 감시했다.

텔레그램에 올라온 법원 성명서에 따르면 미르조예프는 “자신의 유죄를 전부 인정했다”고 하며, 라차발리조다 또한 “유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러시아 국영 언론사인 ‘타스 통신’이 용의자들에 대해 타지키스탄 출신이라고 보도한 가운데 러시아 법원은 이들 4명 모두 적어도 5월 22일까지는 구금된 상태로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샴시딘 파리두니(왼쪽), 무하마드수비르 파이조프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샴시딘 파리두니(왼쪽), 무하마드수비르 파이조프로 확인된 남성들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부 교외 크라스노고르스크 소재 크로커스 시청에선 무장 괴한 4명이 침입해 록 콘서트를 보러 온 시민 약 6000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후 이들은 불을 질렀고, 공연장 건물은 이내 불길에 휩싸이며 지붕까지 무너졌다.

러시아 당국은 이 사건으로 137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지난 24일 법정에 출두한 용의자들은 사건 발생 후 약 14시간 만에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브랸스크에서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IS는 아프가니스탄 코라산의 IS 지부로 알려진 ‘IS-K’가 이번 공격을 시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괴한들이 공연장의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끔찍한 모습이 담긴 영상도 공개했다. BBC는 해당 영상의 진위를 확인했다.

그러나 러시아 관료들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우크라이나의 도움을 받아 이뤄진 테러 공격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사건 후 용의자들이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영토로 도망갈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4일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은 범인들이 현재 러시아 군인 수십만 명이 머물고 있으며, 다량의 지뢰가 매설된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도피하려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일갈했다.

미국 ‘국가 안보위원회’의 애드리앤 왓슨 대변인은 “이번 공격의 책임은 전적으로 IS에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러시아에선 이번 공격을 도운 혐의로 또 다른 7명이 체포됐다

IS의 표적이 된 러시아

이달 초 미국은 이미 러시아 정부에 러시아 내에서 인파가 몰리는 곳에 공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한편, 러시아 내 자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크렘린궁 측은 미국의 선전선동이자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사건 직후 미국은 IS의 배후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IS와 그 동맹 세력이 러시아나 러시아를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IS는 2015년 이집트 상공에서 발생한 러시아 항공기 폭파 사건도 자신들의 짓이라 주장하고 있다. 당시 224명에 달하는 탑승객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었다. 또한 20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서 발생한 폭탄 공격 또한 자신들이 배후라고 주장한다. 이 때 사건으로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 안보 전문가들은 IS가 러시아를 주요한 표적으로 삼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IS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 자신들의 세력 기반을 파괴하는 한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통치를 보장해줬다고 보고 있으며, 아울러 러시아가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체첸 지역에서 1994~2009년 2차례 잔혹한 전쟁을 일으킨 점, 구소련 시대 아프가니스탄 침공한 전력 등을 지적했다.

IS-K는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부로, 이 지역을 가리키는 옛 이름인 ‘호라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IS-K는 IS 분파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조직으로, 2021년 8월~9월 미군의 혼란스러운 철수 중 카불 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IS-K는 선전 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자주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