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을 위한 일자리 플랫폼’은 과연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아줄 수 있을까?

직장에 출근하는 여성과 등교하는 자녀의 모습

사진 출처, Alamy

    • 기자, 레베카 M 나이트
    • 기자, BBC Worklife

베키 화이트는 자신이 시간제 일자리 때문에 마케팅 임원직을 내려놓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화이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여성이었다.

그러던 2년 전, 화이트는 둘째 아기를 출산했다. 화이트는 아마 자신의 마지막 자녀가 될 어린 아들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

결혼 전 따로 자녀가 있던 남편과 결혼해 총 4명의 자녀를 데리고 미국에 사는 화이트는 업무에 들이는 시간은 줄이고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화이트는 “(바쁜 직장 생활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기 망설여졌다”면서 “자발적으로 노동 인력에서 물러난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망설였다.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삶의 궤도를 유지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맘 프로젝트’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다. 유연한 근무 시간이 가능한 정규직 혹은 시간제 일자리를 여성들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화이트는 이러한 일자리를 얻으면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계속 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빠르게 지원한 화이트는 어느 스킨케어 업체의 시간제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 자리를 얻게 됐으며, 이후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른 기업들로부터 여러 계약직 자리도 맡게 됐다.

실제로 화이트의 근무 시간은 유연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한 누구도 화이트가 언제, 어디서 일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40대 초반인 화이트는 다시 정규직으로 복귀하기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한 기술 기업에서 마케팅 이사로 재택근무 중이다.

화이트는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시간제 업무를 한 덕에 경력 단절 없이 일할 수 있었고, 다시 직장에 돌아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업무 형태의 이점 덕에 쉽게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녀를 둔 여성 혹은 케어기버(집에 돌봐야 할 사람이 있는 사람들)들이 점점 더 직업과 가족 간 올바른 균형을 추구하게 되면서 미국 노동자들은 유연한 근무 시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맘 프로젝트’, ‘세컨드 시프트’와 같은 일자리 플랫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 존재했던 플랫폼도 있으나, 이러한 플랫폼은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케어기버들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면서 최근 들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영국, 호주 등 다른 여러 국가에도 비슷한 플랫폼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어나고 있는 더 큰 변화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고, 개인의 필요와 목표, 삶의 단계에 맞는 커리어를 꾸려나가고자 한다.

베키 화이트와 네 자녀

사진 출처, Courtesy of Becky White

사진 설명, 화이트는 ‘맘 프로젝트’ 플랫폼을 통해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도 일을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력 단절 없이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케어기버로서의 역할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던 전문 인력을 위해 중간 경력의 인턴십 자리를 마련해주는 비영리 단체 ‘패스 포워드’의 설립자 태미 포만은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전체론적인 입장에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전진해야 할 시기가 필요하거나 그러길 자신이 원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성들이 그럴 수 있게 도와줄 사회 문화적 발판이 마땅치 않죠.”

“그래서 여성이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 인력으로 남아있을 수 있고,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는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은 다시 돌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평생 벌어들일 수입 측면에서도 손실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장한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여성들은 이러한 현실에 도전하고, 재진입에 필요한 장벽을 없앨 잠재적인 기회를 얻고 있다.

즉 여성과 케어기버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등지지 않고도 계속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플랫폼이 오히려 많은 고용주들이 진정으로 유연한 일터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더 돋보이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플랫폼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더 깊은 사회 문제를 잠시 덮어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일까.

월급과 사회적 정체성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코로나19는 가혹했다. 실제로 수많은 워킹맘들이 직장을 그만뒀다. 케어기버로서의 역할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선 특히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졌다.

한편, 교육, 간호, 서비스직 등 전통적으로 여성 노동자가 훨씬 많은 산업 분야에선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및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등으로 인해 일자리 수가 크게 줄었다.

물론 현재는 나아진 모습이다. 여성 노동자 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의 수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5세 미만의 자녀를 둔 워킹맘은 68.9%였으나, 현재 그 비율은 70% 이상을 기록 중이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끌어냈을까. 우선 재택근무, 특히 지식 기반 업무를 중심으로 반드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가 늘어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워킹맘과 케어기버들은 단순히 재택근무 형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시간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들은 대낮에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오거나, 다른 가족 관련 행사에 참석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9시부터 5시까지 줄곧 일하는 대신 중간중간 다른 볼일을 보면서도 근무할 수 있는 비선형적인 업무 조건을 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식이 늘어나면서 워킹맘과 케어기버들을 위한 플랫폼이 더욱 성장하게 됐다. 일례로 ‘맘 프로젝트’는 올해만 신규 가입자 40만 명을 확보했으며, 전체 사용자 수는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줄리 테닌바움과 자녀

사진 출처, Courtesy of Julie Teninbaum

사진 설명, 줄리 테닌바움은 자녀들이 각각 4살, 2살이었던 지난 2016년 ‘세컨드 시프트’ 플랫폼을 통해 첫 프리랜서 업무 기회를 얻게 됐다.

또 다른 플랫폼 ‘세컨드 시프트’ 또한 지난 3년간 사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세컨드 시프트’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 혹은 부모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정신 및 감정적 피해, 무급 가사노동 등의 문제를 다루고자 회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후 SNS,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등의 콘텐츠 플랫폼에서 이를 이어가고 있다.

로라 M 리틀 미 조지아대학 경영학 교수는 이러한 플랫폼에 관심을 두게 된 워킹맘과 케어기버들은 단순히 재정적 상황뿐만 아니라 노동 인력으로 남아있겠다는 커리어 야망 때문이라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월급이 필요하기도 하고, 어머니라는 정체성 외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리틀 교수는 워킹맘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 이러한 흐름에서 특히 단기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고용주들은 이전에는 간과했을 수도 있는,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인적 자원을 다양화할 수 있다.

워킹맘 근로자의 경우 자신들의 업무 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며, “풀타임으로 일할 필요 없이 자신이 언제 일을 하고, 하지 않을지 통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보스턴에 거주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X세대 워킹맘인 줄리 테닌바움은 자녀들이 각각 4살, 2살이었던 지난 2016년, ‘세컨드 시프트’를 통해 처음 프리랜서 기회를 얻었다. 대형 IT 기업을 위한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는 해당 프로젝트의 보수는 2만달러(약 2600만원)였다.

해당 업무를 맡으며 프리랜서로서의 테닌바움의 커리어는 큰 변화를 겪게 됐다고 한다.

“제 삶이 혼란스러워도,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낮잠을 재우는 시간 중간중간에도 제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녀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서 테닌바움의 근무 시간도 학교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수입도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입과 대략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테닌바움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난 몇 년간 ‘세컨드 시프트’ 를 통해 찾은 고객들을 포함해, 자신만의 고객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고객들이 힘이 됩니다. 고객들이 절 챙겨주고, 제가 계속 일거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입니다.”

‘고용주 또한 역할이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플랫폼들이 커리어와 엄마로서의 역할 간 균형을 추구하는 많은 여성에게 '게임 체인저'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칠 수도 있는 효과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대체로 현재 직장 구조에 내제한 편견에서 기인한다. 시간제 혹은 유연 근무를 원하는 여성들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여성들에 비해 월급이 더 낮거나 승진이 제한될 수도 있다.

재택근무하는 모습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워킹맘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은 무척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포용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고용주들이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 퍼듀대 경영대학원 소속 엘렌 에른스트 코색 경영학 교수는 실제로 유연근무제를 택한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코색 교수에 따르면 일명 ‘유연성 낙인’가 실제로 존재 혹은 인지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즉 어떤 상사들은 유연근무제를 택한 근로자들은 전통적인 근무 시간을 따르는 근로자에 비해 헌신도도 생산성도 낮다는 편견을 지니며 이러한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워킹맘들을 위한 이러한 플랫폼은 유연한 근무 시간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기업이 회사를 좀 더 가족 친화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도 조명한다.

코색 교수는 “많은 기업이 제도 및 물질적 지원의 부족과 높은 육아 비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엄마들은 그저 잡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가정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저 또한 이러한 플랫폼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낮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근무의 유연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이들의 책임으로부터) 너무 쉽게 벗어납니다. 이러한 플랫폼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은 더 큰 해결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금융 서비스 기업 ‘싱크로니’엔 여성 근로자의 비율이 훨씬 높다. 이곳의 최고인사책임자 DJ 카스토는 “과거엔 직원 대부분이 사무실에 나와 근무했으며, 재택근무가 가능한지 토론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만 해도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2020년에 싱크로니는 ‘맘 프로젝트’에 15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해당 플랫폼을 통해 여러 직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카스토는 코로나19 기간 ‘맘 프로젝트’와의 협력은 매우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고 언급했다. 이후 싱크로니사는 다양한 유연근무제 옵션을 도입해 직원들에게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회사가 실생활에 가장 필요한 혜택을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수시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실시한다.

“기업을 차별화하고, 다양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싶다면, 특히 여성과 케어기버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근로를 바라보는 오래된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패스 포워드’의 포먼은 기업과 상사들의 시선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워킹맘과 케어기버들을 지원하는 플랫폼과 단체는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먼은 “직장을 그만두면 재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면서 여성들이 자녀를 돌보면서도 일할 수 있는, 일과 가정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 이들을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화이트는 ‘맘 프로젝트’를 통해 커리어를 이어가면서도 어린 자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균형 맞추기가 결국 핵심이었다”는 화이트는 “일을 하며 내 사회적 정체성도 유지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자녀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는 엄마도 되고 싶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