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세기의 '마피아 재판'서 200여 명에게 2200년 형 선고

판결문을 읽는 판사 3명

사진 출처, AP

사진 설명, 이번 마피아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 기자, 다비드 기글리오네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로마

이탈리아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마피아 재판에서 피고인 200여 명에게 도합 2200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법원은 지난 3년간 이어진 심리 끝에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 관련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마약 밀매, 갈취 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이번에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 중엔 이탈리아 상원의원 출신 인사도 포함돼있다.

피고인들에겐 아직 항소의 기회가 남아 있는 상태다.

한편 ‘은드랑게타’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조직 중 하나로, 이번 사건은 이들이 이탈리아 남부 정치계와 사회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보여줬다.

전문가들 또한 입을 모아 지방 공무원, 사업가, 정치인 등 화이트칼라 인사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 사회 및 기관에 널리 뻗어 있는 마피아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유죄 선고를 받은 인물 중에서도 지안카를로 피텔리 전 상원의원이 단연 눈에 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 이탈리아’당 소속이었으며,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피텔리 전 의원은 이번에 마피아 조직과 공모한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공무원, 여러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 고위급 관료들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에겐 은드랑게타가 합법적인 경제 분야와 국가 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일조했다는 혐의가 인정됐다.

그 외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혐의로는 살인, 갈취, 마약 밀매, 고리대금업, 권력남용, 돈세탁 등이 있다.

한편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도 100명이 넘는다.

비교적 낙후된 지역인 칼라브리아주에서 시작한 은드랑게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 조직 중 하나로 손꼽히며, 유럽의 코카인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약 600억달러(약 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또한 이번 형사재판은 칼라브리아주 라메지아 테르메 지역 외각의 어느 개조된 콜센터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피고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철창뿐만 아니라 변호사 600여 명과 증인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 등이 마련되는 등 보안 강화 과정을 거쳤다.

지난 3년간의 심리를 통해 이 마피아 조직이 어떻게 대륙을 넘어 결국 저 멀리 남미와 호주까지 세력을 넓혔는지 드러났다. 게다가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은 공공 경쟁 입찰 과정을 조작하거나, 지역 관료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등 지역 경제, 공공기관, 심지어 보건 시스템에도 잠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마피아 재판이라 손꼽히는 이번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수천 시간에 걸친 증언을 검토했다. 증인으로 나선 이들 중엔 전직 마피아 조직원들도 있는데, 이들은 사법 제도의 협력자로 변신해 칼라브리아주 비보 발렌티아 지역을 장악한 만쿠소 가문과 그 조력자들에 대해 털어놨다.

칼라브리아주 림바디 지역 출신의 만쿠소 가문은 은드랑게타에서도 가장 강력한 150개 가문 중 하나다.

영국 엑세터 대학의 안나 세르지 범죄학 교수는 “이번 재판은 전형적인 마피아 재판”이라면서 “갈취, 마약 밀매 등 고전적으로 마피아와 연관된 범죄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세르지 교수는 “그러나 화이트칼라 인사들 등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전체가 여러 마피아 가문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 대부분은 지난 2019년 12월 기소됐다. 당시 이탈리아에선 2016년부터 전국의 최소 11개 지역에 걸친 광범위한 마피아 수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때 은드랑게타의 만쿠소 가문이 주로 지배하는 비보 발렌티아 지역에서 실시된 기습 작전에 투입된 경찰관만 해도 약 2500명이다.

한편 이 과정에서 전직 마피아 조직원 50여 명이 재판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는데, 이 중엔 루이지 만쿠소의 조카 에마누엘레도 포함돼 있다.

이들의 증언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이 벌인 일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재판 과정에서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이 묘지 예배당에 무기를 은닉하고 있었으며, 구급차를 마약 수송에 이용하고, 마리화나 재배를 위해 공용 수도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범죄 조직에 반대하고 협조하지 않는 이들에겐 집 앞에 강아지 사체나 염소 머리가 발견되거나, 차 혹은 가게 창문이 불타거나 박살 나는 등의 보복이 뒤따랐다.

작가이자 조직범죄 전문가인 안토니오 니카소는 “이번 1차 선고는 은드랑게타의 정치, 경제적 연줄로 인해 이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