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시베리아의 '전환 치료' 센터로 끌려갔습니다'

에이다
사진 설명, 수년간 사회에서 압박을 느끼던 에이다는 지난해 결국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러시아를 떠났다
    • 기자, 아나스타샤 골루베바 & 제니 노튼
    • 기자, BBC 러시아어 뉴스

시베리아의 한 외딴 농장에서 한 남자가 에이다에게 칼을 건넸다. 이들 앞엔 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남성은 “잘라내라”라면서 “그 수술을 진정으로 받고 싶다면, 거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23살의 트렌스젠더였던 에이다는 가족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으나, 가족들은 에이다를 속여 이곳 시베리아의 전환 치료 센터에 오게 했다.

때는 2021년 여름, 에이다는 친척 어른으로부터 큰 심장 수술을 받게 돼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까지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엔 한 남성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차를 운전하던 이 남성은 갑자기 멈춰 섰다. 친척 어른이 뛰어내렸고, 운전자는 에이다를 향해 스마트워치와 휴대전화를 넘기라면서 “우리는 여기서 너의 변태성을 치료할 것”이라고 잔인하게 말했다.

“2주 뒤 방한복 한 꾸러미가 도착했을 때야 비로소 제가 그곳에서 2주 혹은 1달 정도 머무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는 에이다는 강제로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해야 했으며, 강제로 기도하고, 나무를 자르는 등의 육체노동도 해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돼지를 거세하라는 명령에 에이다는 공황 발작을 일으켰고, 남성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이후 에이다는 누군가가 놔둔 휴대전화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9개월 만에 탈출할 수 있었다. 전환 치료 센터에 도착한 경찰관들은 에이다가 의지에 반해 구금된 상태이기에 나갈 수 있다고 봤다.

BBC는 해당 센터에 연락했으나, 담당자는 전환 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부인했다. 아울러 에이다를 꾀어낸 친척에게도 연락했으나, 답은 없었다.

에이다
사진 설명, 에이다는 9개월 만에 시베리아의 외딴 농장에서 탈출했다

처음엔 가족에, 그다음엔 더 넓은 사회에, 그리고 지금은 점점 더 가혹해진 러시아의 LGBT(성소수자) 관련 법에 맞서온 에이다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UN의 독립 전문가인 그레이엄 리드에 따르면 취약한 소수 계층을 노리는 러시아 정부의 정치적 전략에 의해 러시아 내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점점 더 후퇴하고 있다.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트랜스젠더들은 “법적 정체성을 지니고,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해당 법안에 따라 러시아인들은 더 이상 서류상 기재된 개인 정보를 수정할 수 없다. 에이다는 2023년 7월 해당 법이 시행되기 전 공식적으로 이름을 변경한 마지막 사람 중 하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서방 세계와 성소수자 권리 운동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목이다.

지난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 문화 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트랜스젠더들을 ‘트랜스포머 또는 트랜스-어쩌고’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러시아 법무부는 또 다른 규정을 발표해 ‘국제 LGBT 인권 운동’을 극단주의 조직으로 규정했다.

대법원 밖에서 있는 에이다와 다른 청년들의 모습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러시아 대법원이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며 ‘국제 LGBT 인권 운동’을 극단주의로 규정했을 당시 에이다는 법원 밖에 있었다

극단주의 조직의 존재 여부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다. LGBT 인권 운동을 지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극단주의 활동’을 벌인 것으로 간주돼 징역 최대 12년 형에 처해질 수 있다. 성소수자를 나타내는 무지개 깃발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벌금형에 처해지며, 재범 시엔 징역 4년 형을 받을 수 있다.

해당 법이 새롭게 통과된 이후 지난 3월 첫 기소가 이뤄졌고, 오렌부르크시에선 겁에 질린 표정의 두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법정에 출두했다. 성소수자들이 자주 찾는 바를 운영했다는 죄명이었다. 이들의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한편 에이다는 시베리아의 센터에서 탈출한 뒤 모스크바의 작은 아파트에 살며 또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며 살았다.

그러나 새롭게 통과된 법은 최후의 결정타와도 같았다. 현재 유럽으로 건너온 에이다는 “더 이상 러시아에 지낼 수 없었다 … 떠나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2018년 러시아를 떠난 프란시스에게 이 새로운 법은 자신이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새로운 법이 도입되기 전부터 고향 예카테린부르크 당국으로부터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사진 설명, 프란시스가 유방 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하자 러시아 지역 당국은 그가 입양한 자녀들을 데려갔다

프란시스는 “언제나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2017년 잭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2명을 더 입양했다.

“전 남편에게 ‘내가 틀린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트랜스젠더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프란시스는 의사와 상담하게 됐다.

“의사가 제게 ‘당신은 100% 트랜스젠더입니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모든 게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그는 트랜스젠더로서 절차에 들어갔으나, 얼마지 않아 지역 당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입양된 두 자녀를 데려가더니, 프란시스에게 친자녀도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프란시스의 가족은 러시아를 떠나 현재까지도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

소녀처럼 차려입은 프란시스의 어린 시절 사진

사진 출처, BBC / Francis's family archive

사진 설명, 프란시스가 보여준 어린 시절 사진

한편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로, 자신을 ‘그’나 ‘그녀’ 대신 ‘그들’로 지칭해달라는 앨리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러시아를 떠났다.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과는 무관한 정치적 판단에 의한 탈출이긴 했으나, 이러한 사회적 압박 또한 앨리를 괴롭힌 요소 중 하나였다.

앨리가 14살이었을 때, 누군가 “넌 여자애니, 남자애니”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제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겉모습만으로는 성별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게 좋았습니다.”

몇 년 후 ‘그들’은 친구에게 “내 생각에 난 여자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친구는 절 쳐다보더니 ‘그래? 오케이’라고 하더니 먹던 수프를 계속 먹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죠.”

현재 앨리는 조지아에 살고 있으며, 지난해엔 유방 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가까운 가족들조차 모른다.

“부모님께 그냥 ‘엄마 아빠, 저 레즈비언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엄마 아빠, 저 유방도 절제했고요, 절 ‘그들’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쉽겠죠.”

앨리
사진 설명, 앨리는 “러시아에선 우리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당국의 미움을 받는다. 해외에선 사람들이 우리가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앨리는 성전환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이 통과되기 이전 의학적 진단을 받았기에, 성 중립적인 새 이름으로 개명할 수 있었으나, 이젠 더 이상 여권이나 다른 중요한 문서상 개인 정보를 수정할 수 없다.

프란시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모든 서류에 과거의 이름이 적혀 있어 어딜 가든 신분증을 내야 하거나, 혼란을 겪곤 한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심지어 좋아하는 섬유 공장에서 일자리도 얻었다.

앨리와 마찬가지로 프란시스 또한 새로운 법으로 인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프란시스는 “어머니는 더 이상 나와 말하지 않는다”면서 “어머닌 내가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며, 이웃들과 눈 마주치기조차 부끄러워하신다. 마치 내가 괴물이나 도둑, 살인자인 것처럼 말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앨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해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으로서 더욱 삶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선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당국과 보수적인 이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해외에선 사람들이 우리가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에이다는 결국 모든 성소수자들이 원하는 건 “원하는 대로 입고, 괴롭힘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회”라면서 “… 그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