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예술가가 내 아파트 옆에 벽화를 그린 날

런던 핀즈베리 파크에 그려진 뱅크시의 벽화와 카를로스 세라노

사진 출처, Laura García

사진 설명, 내가 사는 런던 소재 아파트 옆 흰 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벽화
    • 기자, 카를로스 세라노
    • 기자, BBC 월드 서비스, 런던

웃고 있는 런던 시민들을 이토록 많이 본 날이 있을까.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예술가인 뱅크시는 내가 사는 이곳 런던 소재 아파트 옆 흰 벽을 훌륭한 캔버스로 본 듯하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벽화가 나타난 이후 이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정원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돼요?’라고 묻는 듯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작품이 내 작품인 양 마음껏 사진을 찍으라고 답한다.

사실 난 런던 시민들이 이토록 말이 많은지도 몰랐다.

지하철에서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눈 마주치길 꺼리거나, 비를 피하고자 일부러 고개를 숙이며 거리를 다니는 런던 시민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갑자기 낯선 이들이 몰려와 질문을 퍼붓고 있다.

“뱅크시 봤어요? 당신만의 뱅크시 작품을 갖게 된 기분은 어때요? 이 벽화의 의미는 뭔가요? 저희가 여기 있으면 당신한테 방해가 될까요? 그쪽 아파트 월세가 오를까요?”

어떤 이들은 더욱 대담해서 내게 직접적으로 “당신이 뱅크시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그렇다고 답하지도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고 있다.

뱅크시 벽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뱅크시 벽화를 찍고자 몰려든 사람들

친절함과 어색함이 섞인 표정으로 자녀들에게 5달러를 건네 내게 달려가 좋은 추억을 만들게 해줘서 고맙다며 인사하게 하는 이들도 있다.

이 뱅크시의 작품으로 인해 아파트 월세가 껑충 뛰어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긴 하지만, 이내 양심껏 아파트 옆 가게에서 사탕을 사 먹으라며 현금을 거절한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누군가는 내게 “뱅크시의 작품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아파트”라며 ‘에어비앤비’ 웹사이트에 아파트를 올리라며 제안하기도 했다.

런던 핀즈베리 파크의 뱅크시 벽화와 카를로스 세라노

사진 출처, Laura García

사진 설명, 지역 당국이 벽화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하면서 난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이 작품에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됐다

벚나무에서 떨어진 사과

아니, 난 뱅크시를 보지 못했다. 사실 그가 이 벽화를 그릴 때 난 집에 없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사실 집에 있었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 삼는다.

당일 정오가 지난 시간 집에 와보니 이미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을 늘어놓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 녹색 벽화가 녹색으로 대표되는 ‘성 파트리치오 축일’(3월 17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나무 밑에 떨어진 초록 사과
사진 설명, 뱅크시 팬들이 나무 아래 두고 간 초록색 사과

또한 해당 벽화가 자리한 런던 북부 이슬링턴의 공공 주택에 사용된 것과 같은 녹색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8일,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 몇 장을 게시하며, 실제 자신의 작품임을 인증했다. 그러나 그 외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의문의 예술가 뱅크시는 이곳에서 소화기를 사용해 금이 간 흰 벽에 페인트를 뿌린 것으로 보인다.

이곳 아파트 정원에 자리한 진짜 나무는 벚나무로, 상태가 좋지 않아 죽은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뱅크시가 페인트로 잎사귀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뱅크시 벽화가 담긴 풍경을 멀리서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는 남성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나무의 잎사귀를 표현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 왼쪽 아래에 그려진 여자아이(남자아이일 수도 있다)의 존재는 무엇일까. 소독용 스프레이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

한편 이 벽화는 진화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무 밑에 사과 몇 개를 두고 간다. 뱅크시는 사과를 맺는 유일한 벚나무를 창조한 셈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벽화에 그려진 단서와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한다면 해석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한편 지난 20일엔 벽화 위에 흩뿌려진 흰색 페인트를 발견했다. 일부러 누군가 망가뜨리고 간 것일까?

초록색으로 칠해진 벽화 위로 흩뿌려진 흰색 페인트

사진 출처, Carlos Serrano

사진 설명, 벽화 일부엔 흰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벽화를 가리키는 카를로스 세라노

사진 출처, Laura García

사진 설명, 내 아파트 안에서 뱅크시의 작품을 바라보며 내 의견을 말하곤 한다

15분간의 유명세

내 아파트는 이제 관광지가 됐다.

이 기사를 쓰는 동안 잠시 쉬려고 하니 사람들이 이내 다가와 휴대전화를 건네주며 사진을 찍어달라 말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영국, 일본, 독일인들 및 언론인부터 학생들까지 다양한 이들과 인터뷰를 했다.

한 호주 남성은 내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선물했으며, 틱톡 라이브 중인 어느 멕시코 10대 소녀의 팔로워들과도 소통했다. 한 콜롬비아 여성은 만약 자신이라면 이미 패스트푸드와 맥주를 갖다 놓고 팔고 있었으리라 했다. 원래 런던에 8시간만 머무를 예정이었던 어느 노르웨이 여성은 이 벽화를 보러 오는 일정을 최우선으로 잡았다고 했다.

2023년 3월 촬영된 아파트와 벽

사진 출처, Google

사진 설명, 2023년 3월 촬영된 아파트와 벽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아파트에 산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어제 처음 이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소말리아 출신의 이 남성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생활이 걱정된다고 했다. 벽화 덕분에 이웃과 처음 알게 됐다.

현재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마치 내가 기여한 게 있는 듯 축하를 받고, 미인대회 우승자처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생각엔…”이라며 벽화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한다.

뱅크시 벽화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실 지금은 괜찮지만, 주말마다 빅벤과 버킹엄궁 다음 관광 코스가 내 아파트가 돼도 괜찮을진 모르겠다.

이 벽화는 겨울의 끝자락에 나타났다. 런던 도시가 다시 색깔로 물들고, 사람들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 시점이다.

그래서 내게 이 벽화는 봄을 시작하는 상쾌한 출발점이다. 베일에 싸인 한 천재 덕에 죽어가는 나무와 무너져가던 벽,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그리고 나는 비록 이민자이지만 내가 이 나무 공동체에 진정으로 속해있는 기분을 느낀다.

이런 게 바로 예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