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북한 이어 베트남 방문…죽지 않는 양국의 오랜 우정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토 람 베트남 국가주석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20일(현지시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토 람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났다
    • 기자, 조나단 헤드
    • 기자, BBC 동남아시아 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베트남을 방문한 가운데 베트남과 러시아 정상은 양국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토 람 베트남 국가주석은 푸틴 대통령의 최근 재선 성공을 크게 축하했으며, 이에 화답하듯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야말로 러시아의 최우선 사항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화려한 환대를 받은 북한에 이은 푸틴 대통령의 이번 베트남 방문은 러시아가 여전히 이 지역에서 외교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을 환영하며 맞이한 람 주석은 “최근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우리 동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 이는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뢰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방문에 대해 미국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고취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며 비난했다.

최근 들어 유럽·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베트남이긴 하나, 여전히 러시아와의 역사적 관계 또한 소중히 여긴다.

하노이의 정치 중심지 바 딘 지역의 작은 공원에는 영웅처럼 서 있는 5m짜리 레닌 동상이 있다. 러시아가 소련이었던 시절 선물로 준 동상이다. 아직도 매년 이 러시아 혁명가의 생일이 되면 베트남 고위 관료들은 이곳을 참배하며 꽃을 놓는다.

베트남과 러시아의 가까운 관계는 1950년대 소련이 북베트남의 신생 공산주의 국가에 제공한 중요한 군사, 경제, 외교적 지원 등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은 양국의 관계가 “충실함과 감사로 가득하다”고 표현한다. 지난 1978년, 베트남은 잔혹한 크메르루주 정권을 몰아내고자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서방 및 중국에서 고립됐다. 그리고 소련에 크게 의존했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공산당 총비서를 비롯한 수많은 현 베트남 고위층들은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러시아어를 배웠다.

물론 오늘날 베트남의 경제는 세계 시장에 통합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베트남의 대러 무역 규모는 중국, 아시아, 미국,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작다.

그러나 베트남은 여전히 러시아산 군사 장비를 주로 애용하고 있으며, 남중국해 석유 탐사에서 러시아 석유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의존하고 있다.

레닌 동상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하노이 중심가에 세워진 레닌 동상

베트남 외교 당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골칫거리가 있긴 하나, 그래도 지금껏 베트남은 잘 해내고 있다.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는 UN의 결의안 투표에서 여러 번 기권을 택한 베트남이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베트남과 우크라이나는 소련 시절의 유산을 공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크라이나를 다녀간 베트남 출신 유학생, 노동자는 수천 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는 모두 베트남이 오랫동안 지켜온 외교정책 원칙의 일환이다. 모두와 친구로 지내되 공식적인 동맹은 맺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베트남공산당 지도부는 이를 ‘대나무 외교’라고 부른다. 휘몰아치는 바람과도 같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며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트남은 심지어 과거에 길고 긴 파괴적인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재빨리 나서고 있다. 자국 물품을 수출할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하고, 거대한 이웃인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 또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푸틴을 고립시키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을 저해하는 행위라며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공식적인 베트남 방문에 대해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그리 놀랍지도 않다. 러시아와의 특별한 역사적 관계를 제외하고 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베트남 여론의 감정은 유럽 내 여론보다 더 양면적이다.

서방에 맞서는 강한 인물로서 푸틴을 우러러보는 시선도 있으며, 미국과 유럽이 국제법을 준수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론은 소셜미디어 댓글을 통해 일부 확산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저 멀리서 벌어진 위기로 보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자, 냉전 시기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던 태국 내 여론 또한 베트남만큼이나 양면적이다.

태국 국민들은 자국 왕실과 혁명 이전 러시아 차르 왕실 간 오래된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태국 정부 또한 러시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얼마나 자국 관광 산업에 기여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이 푸틴과 얼마나 오랫동안 동지애를 이어 나갈진 불분명하다. 이미 베트남은 군사 장비를 공급받을 대체 국가를 찾아 나섰지만, 러시아에 대한 현 의존도를 완전히 끝내기까지는 몇 년 이상 걸릴 것이다.

최근 베트남공산당 내에선 들리는 고위 인사들의 연이은 사임 소식은 차세대 지도자 자리, 더 나아가 앞으로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둔 치열한 내부 경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모두의 친구이지만 그 누구의 적도 되지 않겠다는 대나무 외교의 야망을 꺾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