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역사적인 베트남 방문... 중국과의 냉전 관계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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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로라 비커
- 기자, BBC News, 하노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는 역사적인 협정을 체결한 가운데 미국이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저지하려 한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마지막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협정을 통해 과거의 적이었던 베트남과 그 어느때보다도 가까워질 협정에 서명하러 베트남을 방문한 것이다.
베트남과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형성은 미국 입장에선 주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년간 미국이 줄기차게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한 결과로, 미국은 베트남을 아시아 내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한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결코 미미한 성과가 아니다. 중국의 오래되고도 굳건한 우방국 중 하나인 베트남이 확장한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거나 고립시키려는 게 아니라, 국제 사회의 규칙에 따라 안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BBC의 질문에 “너무 냉전 논리로 바라보는 것 같다”면서 “냉전이 아닌, 경제적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싶지만, 규칙을 따르면서 성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미 베트남이 미국과 가까워지면서 중국은 불편한 기색이다. 중국은 이를 미국의 “냉전적 사고 방식”의 증거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ISEAS 유소프 이샥 동남아연구소’ 소속 르 홍 히엔 연구원은 베트남 측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미국과의 이번 협정은 “[일종의] 실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드림'
‘포괄적 전략 동반자’라는 타이틀이 상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양국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면서 교역 발전, 중국 의존도 감소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선 베트남은 높은 교육 수준이 뒷받침되는 청년 노동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창업 인력을 양성 중이다. 이는 미국 투자자들, 특히 생산 기지의 탈중국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겐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실제로 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여러 주요 기업이 최근 몇 년간 공급망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아울러 베트남이 무기와 군사장비 수입에 있어 러시아 의존도를 낮춰가면서 미국은 베트남을 유망한 무기 시장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베트남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베트남만의 전자장비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미국이 끊임없이 중국의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분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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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 미국과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맺었음에도 베트남은 자신들이 어느 한 편을 선택했다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의 경제가 둔화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진전은 실용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전기 이륜차 및 배터리팩 제조 스타트업 ‘셀렉스 모터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응우옌 후우 푸옥은 “나도 미국에서 7년간 살았고,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얻었다”면서 “그러나 나는 더 큰 꿈이 있다. 바로 베트남 드림”이라고 언급했다.
셀렉스사의 창고에서 만난 응우옌 CEO는 전기 이륜차 생산 라인을 가리켰다.
5년 전 창업한 응우옌 CEO는 현재 ‘그랩’, ‘라자다’ 등 주요 배달 업체들과도 계약을 맺은 상태다.
베트남 중부에 자리한, 전기 시설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응우옌 CEO는 자라면서 조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번영하고 지속 가능한 베트남으로의 여정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기회와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베트남은 과거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적기이며, (현 세대야말로) 이를 실현할 적합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응우옌 CEO가 취재진과 대화 하는 동안 중국의 택배업체 사장들이 협상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울러 BBC 취재진이 베트남을 방문하는 동안 함께 동행했던 베트남 외교부 관료들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 출처, BBC/ DANNY BULL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앞으로 인권과 자유 수호와 전략적 이익 추구 사이를 오가며 직면하게 될 도전을 보여주는 분명한 조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반정부 인사는 협박, 괴롭힘, 수감 등의 위협에 직면해있다. 아울러 베트남은 공산당이 언론을 장악하고, 국가가 모든 인쇄 및 방송 매체를 통제하는 국가다.
중국 뒷마당에서
그러나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은 미 정부 입장에선 많은 게 걸려 있는 일이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인권과 자유 문제에 대해선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다.
우선 가장 큰 성과는 이 파트너십 체결이 중국 뒷마당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껏 베트남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했다. 지난 2년간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고위 인사를 보내며 베트남에 구애했다. 아울러 미 항공모함 또한 베트남 항구에 머물렀다.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앞두고 열린 브리핑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커지는 우리의 파트너십 네트워크에서 앞으로 베트남이 맡을 주도적 역할을 반영한다”고 했다.
실제로 아시아 전역에 걸친 미국의 이 “파트너십 네트워크”는 지난 몇 달간 확실히 확장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필리핀으로부터 새로운 군사 기지 4곳 사용을 허가받았으며, 놀랍게도 동아시아 내 서로 경쟁 관계인 한국과 일본을 중재해 한미일 합의를 이끌어내는데도 성공했다. 일본과 한국은 한 때 정상 간 한 자리에 있기도 불가능한 관계였다.
아울러 미국은 솔로몬 제도 등이 속한 태평양 도서국들과 방위 협정도 체결했다.
하와이 소재 싱크탱크 ‘태평양 포럼’의 ‘인도-태평양 외교 및 안보 정책 프로그램’을 이끄는 존 헤밍스 수석 책임자는 미국의 이러한 외교 속도가 “중국을 놀라게 한 듯 하다”고 평가했다.
헤밍스 박사는 “아마도 중국 정부는 미국이 이러한 성공을 얼마나 빨리 활용할 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현재 자신들이 냉전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 혹은 주권이 위협받는 국가들에 호소하고 있다. 이렇듯 마치 양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듯한 미국의 접근 방식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베트남은 이번 일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자국의 영유권을 계속 침해하는 중국에 경고하고 싶은 의도일 수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 관영 매체는 지난주 중국 해안 경비정이 파라셸 제도 인근에서 자신들을 향해 물 대포를 발사했다는 자국 어민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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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트남이 미국과 친해지고자 중국과 갈라서진 않을 것이라는 게 르 홍 히엔 연구원의 전망이다.
르 홍 히엔 연구원은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계산했을 것”이라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곧 베트남을 방문할 수 있다는 보도 등도 이러한 점을 이미 보여주는 징후”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베트남 당국은 이번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중국이 반응하기 전 확실히 선수를 쳤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전 확실히 중국의 대응을 선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공산당 서기장은 중국과의 국경 지대를 방문해 중국 대사를 만나 양국 간 우정을 높이 평가했다.
하와이 소재 ‘아시아-태평양 안보 연구소’의 알렉산터 부빙 교수는 “그 어떠한 제3국도 거대한 패권 경쟁에서 편을 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지역 국가 대부분이 자국 번영 및 안보에 있어 중요한 여러 분야 내 국제적인 협력을 절실히 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 국가들의 이러한 요구를 활용하는 게 패권 경쟁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이 아시아에서 동맹국을 더 늘려가면서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론 조사 결과 미국은 베트남에서 매우 좋은 이미지로 평가됐다. 20세기 들어 가장 잔혹했던 전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트남 전쟁의 참상은 잊혀지지 않았으나, 199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간 상호 신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양국은 함께 협력해 베트남전 참전 미군 유해를 발굴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베트남 군인 유해 발굴을 돕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베트남 청년 수천 명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양국 화해의 길 모색을 돕고 있다.

사진 출처, BBC/ LINDLE MARKWELL
BBC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정부 관료들의 감시 아래 베트남 하노이과학기술대학(HUST) 학생들은 “우리는 HUST의 학생이다. 우리는 영민하고, 젊고, 힘이 있다”고 외쳤다.
한 켠에선 HUST에 재학 중인 한 청년이 기타를 잡고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가사다.
2학년인 루옹 홍 두옹은 “한국과 일본의 기술 기업들이 기술 센터 개발을 위해 베트남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이젠 미국이 왔다”고 말했다.
루홍 홍 두옹은 “앞으로 베트남은 미국의 또 다른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라면서” 모두가 이곳에 와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