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자라면 관광객을 싫어하게 된다'… 하와이 산불 참사 후 갈등 고조

사진 출처, HOLLY HONDERICH/BBC
- 기자, 홀리 혼데리치, 맥스 마차(마우이)
- 기자, BBC News
미국의 유명 관광지인 하와이 마우이섬 일부 지역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이후 당국은 관광객에게 섬을 나가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수천 명은 권고를 무시했고, 화재 이후에도 섬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산불로 고통받는 주민들 사이에서 분노가 커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마우이섬 와일레아 해변 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고급 호텔들이 즐비한 해변 앞에는 투숙객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는 바다에 들어갔고, 일부는 해변의자에 호텔 로고가 수 놓인 흰색 수건을 깔고 파라솔 그늘을 즐겼다.
한 호텔로 들어가면 수영장이 나온다. 그 뒤로 2단 분수대, 유리로 된 앵무새 온실을 지나면 목조 뼈대를 두른 가림막이 있다. 가림막에는 리조트 직원을 위한 구호 기금 안내문이 걸렸다. 라하이나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첫 신호다. 산불로 전소된 해안 마을은 불과 48km 거리에 있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산불이 발생한 이후, 하와이 휴가를 포기하지 않은 관광객을 향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많은 마우이 사람들은 이번 산불로 인해 “하와이의 두 얼굴”이 부각됐다고 말한다. 하나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하와이이고, 다른 하나는 하와이 주민들에게 남겨진 더 가혹한 얼굴의 하와이다.
익명을 원한 21세의 마우이 원주민 호텔 직원은 "관광 산업에서는 나비와 무지개만 보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실제 모습은 꽤 오싹한 편"이라고 말했다.

산불 발생 다음 날인 지난 9일, 하와이 카운티 당국은 관광객에게 라하이나 지역 및 마우이섬에서 최대한 빨리 떠날 것을 요청했다.
당국은 피치 못할 상황을 제외하고는 마우이섬 모든 지역을 벗어나도록 촉구했다. 하와이 관광청은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은 우리의 모든 자원과 관심을 강제로 대피한 주민과 지역사회 복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관광객이 이 권고에 귀를 기울였다. 화재 직후 약 4만6000명이 실제로 섬을 떠났다. 공항과 주변 고속도로 사이의 잔디밭에는 갑자기 남아돌게 된 렌터카가 줄지어 있다.
하지만 섬에 남은 사람들도 수천 명이다. 즉시 마우이를 떠나라는 요청을 무시한 관광객과 화재가 발생한 후에도 비행기로 섬에 들어온 관광객을 향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우이 주민 척 에노모토는 “자기 고향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 관광객의 방문을 바라겠는지” 물으며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HOLLY HONDERICH/BBC
또 다른 마우이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3일 전 우리 사람들이 숨진 바로 그 바다"에서 관광객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며 11일에 진행된 스노클링 투어를 언급했다. 라하이나에서 불과 11마일(약 20km) 떨어진 곳이었다.
해당 스노클링 업체는 투어 진행에 대해 사과하면서 원래는 "일주일 내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보트를 제공했지만 보트 설계상 해당 작업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우이섬 경제가 관광 산업에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관광객에 대한 반대 또한 복잡한 상황이다. 마우이 경제개발위원회는 마우이섬의 "관광 산업"이 현지에서 창출되는 5달러 중 약 4달러를 차지한다고 추정하며, 이런 관광객이 마우이의 "경제 엔진"이라고 불렀다.
앞서 언급된 익명의 호텔 직원은 "여기서 자라면 관광객을 싫어하게 되지만, 섬의 유일한 일자리는 관광 관련 서비스업 아니면 건설업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HOLLY HONDERICH/BBC
일부 사업주는 관광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마우이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와일루쿠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다니엘 칼라히키는 "사람들이 계속 '마우이는 문을 닫았다', '마우이에 오지 말라'라는 글을 보면 그나마 남아있던 손님도 사라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화재 이후 매출이 이미 50% 감소했다며 "그렇게 되면 마우이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 이후 며칠이 지나는 동안 극심한 피해로 휘청거리는 마우이 주민과 관광객이 몰리는 인기 휴양지 사이의 격차가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하와이의 한쪽 단면을 보면, 주민들이 심각한 주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많은 주민들이 ‘칼루이’나 ‘키헤이’ 같은 동네의 허름한 단층집에 산다. 일부는 다세대 주택에서 커튼이나 얇은 합판 가벽으로 집을 구분해 살고 있다.
현지인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물가 상승을 따라잡기 위해 일을 여러 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젠 알칸타라는 마우이 병원의 고위 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도 캐나다 항공사에서 일한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여긴 하와이잖아요."
하와이 이쪽 단면에서는 화재의 영향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대피한 사람들은 상점과 식료품점에서 생필품을 찾으며 손에 쥔 돈으로 잃어버린 세간을 갖추기 위해 애쓴다. 식당에서는 직원들이 주방과 바 뒤에서 눈물을 참으며 구호 지원과 관련해 통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쪽 하와이의 경우, 거의 모든 곳에서 생존자를 위해 모금과 기부가 진행되고 있었다. 카훌루이 지역의 한 고급 카페에서는 기부된 모유를 냉장 보관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푸드트럭 주인들도 최전선에서 자원봉사에 나섰고, 농부들은 바나나 다발을 대피소로 옮겼다.

하지만 또 다른 하와이는 딴 세상이다.
섬의 도심에서 마우이의 고급 휴양지와 리조트가 있는 와일레아까지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갑자기 지면 상태가 바뀐다. 메마른 갈색 풀 대신 물을 머금은 짙은 초록 잔디가 펼쳐지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호텔 직원은 ‘암묵적인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와일레아에는 골프 코스와 접한 ‘게이티드 커뮤니티’(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고급 주택 단지)가 있고 그 너머에는 고급 호텔들이 이어진다. 호텔에서는 직원이 서핑을 강습하고 수영장 바로 옆에서 식음료를 제공하는데, 햄버거 하나에 29달러(약 3만8800원)가량이다.
직원들은 많은 투숙객이 마우이섬 서쪽 지역의 위기를 안타까워한다고 BBC에 전했다. 하지만 포시즌스 직원 브리트니 파운더(34)는 승마, 짚라인 등 라하이나에서 예정된 액티비티가 취소된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다음 날, 캘리포니아에서 방문한 어떤 손님은 지금도 레스토랑 ‘라하이나 그릴’에 저녁 식사 예약이 가능한지 물었다. 이곳은 라하이나에서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 위치했다. 파운더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답했다.
재건된 라하이나가 이 하와이의 두 번째 얼굴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유한 외지인들은 이미 집값을 폭등시켰다. 많은 원주민은 집을 살 여력이 없지만, 외지인들은 토지와 부동산을 사들였다. 유명한 억만장자 피터 틸과 제프 베조스도 마우이에 저택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마우이섬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라하이나에서 하와이 부동산 소유주에게 접근해 거래를 제안한다는 소문도 퍼졌다.
몇몇 현지인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라하이나가 호놀룰루의 호화로운 와이키키 해변처럼 고층 빌딩과 명품 쇼핑가로 뒤덮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척 에노모토는 "우리는 또 다른 와이키키를 원하지 않지만, 변화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HOLLY HONDERICH/B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