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합훈련 하루 연장, 북한 반발… '9.19 군사합의 이미 사문화'

역대 최대규모의 한미 연합공중훈련 참가를 위해 한국으로 전개된 미국의 F-35B 스텔스 전투기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역대 최대규모의 한미 연합공중훈련 참가를 위해 한국으로 전개된 미국의 F-35B 스텔스 전투기

4일 종료 예정이던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이 하루 연장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으로, 초유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가 계속되면서 미국을 방문 중인 이종섭 한국 국방부 장관이 미국 측에 전격 제안해 이뤄졌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3일 심야 포격을 감행했다.

4일 한국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3일 오후 11시 28분부터 강원도 금강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포병 사격 80여 발을 가했다.

탄착 지점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해상 완충구역 내부 수역으로 전해졌다.

한국 군 당국은 즉각 북측에 군사합의 위반임을 알리고 도발 중단을 촉구하는 경고 통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보다 2시간가량 전인 오후 9시 35분부터 14분간 황해북도 곡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3발도 발사했다.

이날 오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과 SRBM 2발을 쏜 뒤 또다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박정천 북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저녁 공개한 담화에서 '비질런트 스톰' 연장을 거론하며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과 남조선의 무책임한 결정은 연합군의 도발적 군사 행위로 초래된 현 상황을 통제불능의 국면에로 떠밀고 있다"며 "미국과 남조선은 자기들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탄도미사일 발사에 포격까지 감행했다. 훈련 연장 소식은 이날 오후 2시 무렵 전해졌다.

9.19 군사합의서 '사문화' 재확인

북한이 동해 완충구역 내로 포병 사격을 가한 것이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9.19 합의는 이미 사문화됐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재확인하는 것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는 BBC에 "합의서 자체는 이미 효력이 전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본 합의서, 비핵화 합의서 등이 이미 사문화돼 현재 남북관계에서 유효한 문서가 거의 없고 이제 정전협정 하나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엄격히 말해 남북한 모두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수년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해오는 것은 물론 한국 역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 개발 및 첨단무기 도입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임재천 고려대 외교통일학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호크' 같은 미국 첨단무기를 도입하는 것 역시 9.19 합의 위반"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 상황 자체가 군사합의를 지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라며 "이미 9.19 합의는 빛 바랜 지 오래"라고 부연했다.

앞서 북한이 지난 2일 발사한 탄도미사일 1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인 속초 앞바다에 떨어지면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SCM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 종말' 문구 담겨

북한이 심야포격을 감행할 무렵, 미국에서는 한미 국방장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개최된 것.

이번 SCM 공동성명에는 특히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가 담겨 눈길을 끌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022년 11월 3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방문했다. 뒤로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가 보인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022년 11월 3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방문했다. 뒤로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가 보인다

공동성명은 "오스틴 장관은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대한 비전략핵(전술핵)을 포함한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명시했다.

오스틴 장관은 또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주한미군의 현재 전력 수준을 지속해서 유지한다는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번 공동성명이 북한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그만큼 미국이 북한 핵 위협을 심각하게 판단한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북한의 도발수위가 비정상적이랄까,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한미 차원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메시지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를 원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필요에 따라 전개한다는 식의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한미 양국은 미 전략자산을 필요에 따라 적시에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내년에 연합연습과 연계해 대규모 연합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안보리, 한달 만에 다시 공개회의 소집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4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공개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지난달 5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이번 회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알바니아, 아일랜드, 노르웨이의 소집 요청에 따른 것을 전해졌다.

안보리 회의 요청은 북한의 무력 시위가 고도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제재 결의 위반이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국제 비확산 체제를 훼손하고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의 ICBM 시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이 즉각 불안정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안보리 내 분열이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 대북제재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추가 제재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물론 의장 성명 채택도 계속 무산시켜왔기 때문이다.

실제 4일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의 무력도발이 임계점을 넘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겠다"는 정 위원장의 말에 "서로 자극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