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관심 없는데' 왜 공조2, 헌트 등 북한 소재 영화는 흥행할까?

동영상 설명, 북한 소재 영화, 흥행 비결은?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지난 2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이 공개한 박스오피스 1위는 '공조2: 인터내셔날'이다. 2위는 육사오(6/45), 3위는 헌트.

이 세 영화의 현재 매출점유율은 무려 84.2%에 달한다.

#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베를린(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연평해전(2015), 인천상륙작전(2016), 공조(2017), 백두산(2019) 등.

이 영화들은 모두 관객수 500만 명을 넘긴 흥행작이다. 천만 영화도 두 작품이나 있다.

영화 '공조2: 인터내셔널'이 20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CJ ENM

사진 설명, 영화 '공조2: 인터내셔널'이 20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북한'을 소비하고 있다. 가깝고도 먼 그 곳, 상상력을 자극하는 '북한'은 영화계에서 꽤 오랫동안 각광받아온 소재임에 틀림없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BBC에 "북한 관련 소재가 기본적으로 흥행요소를 갖고 있다"면서 "남북한 분단 속에 화해, 통일 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대중들은 남북 관계 콘텐츠가 나왔을 때 그것을 통해 판타지를 소비하려는 욕망이 생긴다"고 평가했다.

특히 "'쉬리'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기반으로, 북한 소재가 한국 영화계의 굉장히 중요한 흥행 코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간 계속해서 남북 간 화해모드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등장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스파이'는 '허구'가 아니다

한국은 휴전 중인 분단 국가다. 따라서 한국 영화 속 '스파이'는 허구가 아닌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등장한다.

실제 '헌트',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실미도' 모두 스파이, 즉 간첩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중간첩', '공작', '강철비' 등 스파이물의 끊임없는 등장 역시 분단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다.

미소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이러한 상황 설정은 어쩌면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냉전 체제가 무너진 이후 미국 헐리우드에서는 악한 집단으로 무슬림, 중동 테러리스트들을 주로 다뤄왔고 그런 역할로 북한이 미드에도 자주 등장한다"며 "상업적 대중 영화계에서 악한 국가나 체제는 항상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 결이 좀 다르지만, 민주화 이후 전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정치적 측면에서 점차 사회적으로 확장된 것이 사실이죠."

예컨대, '공동경비구역 JSA'가 정치적 분단을 다뤘다면 이후 배우 유오성이 나온 '간첩 리철진'에서는 북한 경제난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그 자체로 상당히 기념비적"이라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영화평론가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자신의 책 '스크린으로 만나는 한반도: 한국 영화 속 분단이야기'를 통해 "분단영화는 분단의 현실과 그로 인해 분열되고 파편화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과 밀접한 장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영화 '육사오'의 배경은 군사분계선으로, 실제 한국 국민들이 거주하는 파주시 통일촌에서 군사분계선까지 거리는 4.5km에 불과하다.

미지의 영역… '좋은 포장지'

전문가들은 북한 소재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남북 간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 다양한 분야로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베를린'이라는 활극에 '민족'이라는 양념이 쳐졌고 '공조' 역시 액션에 코미디가 입혀졌으며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 '인간애'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이우영 교수는 "미지의 영역으로서 쓸모가 많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상업적이면서도 민족, 화해 문제 등을 담을 수 있는, 의식 있어 보이는 '좋은 포장지'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 속 북한 이슈 자체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통일∙북한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 사회에 이러한 이슈들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중의 취향에 좀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웃으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여기에 어떤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칫 될 일도 안 될 수 있는 만큼 대중적 소비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면 천천히 두고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잘생긴 배우에 감동적이기까지'

물론 북한 요소가 흥행에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지적도 분명 있다.

김석향 교수는 "단순히 북한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시너지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조2' 현빈과 다니엘 헤니, '헌트' 이정재와 정우성, 최근 재개봉한 '모가디슈' 조인성 등 잘생기고 멋진, 믿고 보는 배우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실 지금까지 남북관계 위기 상황 속에서 휴머니즘이 빛나는 사건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이제 영화 제작자들이 잘 포착해서 만들어내는 거죠. 이미 토양은 있었고 거기에 조인성이 등장하니 그 영화 나 같아도 보겠는데요? (웃음)"

2021년 최고의 흥행작 '모가디슈' 주역들배우 조인성, 김윤석(오른쪽)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2021년 최고의 흥행작 '모가디슈' 주역들인 배우 조인성, 김윤석(오른쪽)이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제42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MZ 세대들은 사실상 북한이나 평화보다는 일단 멋진 배우가 등장하니 해당 영화를 봤을 가능성이 더 크다"며 "근데 그렇게 본 그 영화가 너무나 눈물나게 감동적이었다는 개연성이 더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영 교수 역시 "영화 '용의자'에 공유, '공조'에 현빈 등 한국 사람 같은 북한 사람이 나오는 게 포인트"라며 "상업주의가 밑바탕에 깔려있지만 기존에 갖고 있던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념∙체제 아닌 캐릭터로 승부

영화 속 북한을 다루는 방식은 시대에 편승해 변화를 거듭해왔다.

정덕현 평론가는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북한을 다룬다면 액션에 무조건 반공을 소비했지만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을 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남북관계 분위기가 영화의 성공을 좌우한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다.

그는 "JSA가 2000년 9월 개봉했는데 그 직전 6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다"며 "영화 제작 당시 박찬욱 감독이 개봉을 걱정할 정도였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이 펼쳐지면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로 넘어오면 북한 소재 영화들이 좀 더 상업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장르적으로 해석된 남북관계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 것.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는 '김수현'이라는 꽃미남 간첩이 '바보'로 등장한다. 남파간첩을 심각하게 인지했던 과거 세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게다가 아예 선악 구도가 불분명하다. '공조' 속 북한 요원인 '현빈'은 절대 악당이 아니다.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메시지가 아닌 캐릭터 자체에 개연성을 부여한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최근 북한 소재 영화에 리얼리티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담겨있고 그런 것들이 주는 판타지와 안도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며 "분단돼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따라서 북한 소재는 계속 스테디셀러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공개한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사진 출처, KCNA

사진 설명, 북한이 공개한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

한편 영화 속 북한이 '소재'로만 활용된다는 것은 실제 한국인들의 대북 인식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KBS가 실시한 '2022 국민 통일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 가량이 '북한 정권에 반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호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다.

아무리 김수현이, 현빈이 북한 인물을 연기한다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얘기다.

해외에서는 한국 사회가 아예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11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산하 한미연구소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인 응답자 1200명 가운데 10% 미만이 북한에 관심을 가졌을 뿐, 대부분 북한에 무관심했다"고 밝혔다.

38노스는 당시 "향후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북한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