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송·출판물 허용 논의 재점화.. 북한 사이트 바로 접속할 수 있게 되나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허용에 대한 논의가 최근 몇달 간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쟁 종전 69주년 기념일을 5일 앞둔 지난 7월 22일, 통일부의 올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남북간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북한의 언론·출판·방송 등 소식을 전하는 사업의 단계적 개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간 논의 있었지만 큰 진전 없어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는 지난 1982년 전두환 정부에서 북한에 "쌍방 정규방송 자유 청취"를 제안한 이래 정치권에서 꾸준히 언급되어 온 문제다.
특히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9년, 통일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 위성TV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따라 통신사·방송사가 북한 위성TV 방송을 직접 수신하고 일반 국민도 제한 없이 시청할 수 있게 됐지만, 반 국가 투쟁 목적을 위해 시청할 경우 국가보안법상 처벌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일반인이 북한 방송·출판물에 접근하는 절차는 여전히 까다롭다.

사진 출처, News 1
위성 방송 수신을 위한 장비를 갖춘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을 통해 북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지상파TV의 경우 전파가 한국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위성TV의 경우에는 수신할 채널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중앙라디오나 북한의 대남라디오 방송은 한국 정부의 방해전파 송출로 청취가 어렵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다른 출판물들의 경우에는 한국 정부가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0월 1일,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 하태경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에게 "이제 (한국 국민들도) 북한 노동신문, 조선중앙TV 정도는 자유롭게 봐야 한다"고 발언했지만 이낙연 전총리는 이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다만)여러 고려사항이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관련 논의에 대한 진전은 없었다.
'북한 방송 허용 문제, 국민의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국 정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제6조(헌정질서 위반 등),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 찬양 등)' 등의 법률을 통해 북한 방송의 국내 유입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이러한 기존 정책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과 국민의 알권리, 그중에서도 정보접근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무법인 한민 소속 한명섭 변호사는 북한 방송·출판물 허용의 문제는 "정부의 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한 변호사는 5일 태영호 의원실에서 주최한 '북한방송통신 선제적 개방과 민간차원 대북방송 주파수 지원 입법적 고찰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 국민의 북한 방송 시청에 대한 문제를 법률적 차차원에 볼 때 "당연히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고, 국가보안법 상 처벌되는 범위 밖의 시청 행위에 대해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기본권 침해인데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없어 유지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북한 정보에 접근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방송 시청 규제는 시대에 뒤쳐져.. 이미 사문화된 법'
통일부 황선혜 사회문화교류정책과장은 한국 정부 역시 북한 방송·출판 허용 문제에 대해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1980년대나 1990년대의 제도나 환경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황 과장은 같은 날 토론회에서 "(북한 방송·출판 허용 문제에 대한 내용을) 국정과제로 발표한 이후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아직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더 발표할 수 있는 내용은 없지만 이번을 계기로 해당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진전시키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북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과 북한 매체에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는 언론 종사자들은 북한 방송·출판 허용 문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진작에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같은 날 토론회에 참석한 데일리NK & 통일미디어 이광백 대표는 1990년대 전세계 사회주의 나라들이 무너지고 남북한 사이 체제 대결에서 한국이 사실상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규제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접근 허용이 친북세력을 늘리고, 친북세력의 주장에 따라 기타 북한사회의 여러 담론들이 우리 사회를 혼란과 분열로 이끌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이른 바 종북세력은 현재도 우회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방송에 어렵지 않게 접근해 북한 콘텐츠를 자신들의 방송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우려하는 만큼 큰 문제는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가 유통되는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아닌 이데올로기적 내용으로 채워진 북한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들과 경쟁하게 된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출신 북한 학자 표도르 째르치지스키 국민대 책임연구원은 BBC 코리아에 "북한의 선전·선동 콘텐츠의 선전 수준과 방식은 과거 1960년대나 1970년대 소련에서 다른 이유로 인기가 있었다"며 "'장군님이 축지법을 쓰신다'는 내용의 노래처럼 지도자를 찬양하는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북한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보면 '웃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째르치지스키는 "한국에서 북한 방송·출판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 북한 선전물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 밈(meme)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째르치지스키는 또 북한 연구자로서 북한 자료에 접근하는 데 불필요한 절차들과 번거로움이 있다고 느낀다며 "로동신문과 같이 기밀이 아닌 자료를 기밀 자료로 취급하고 보안 절차를 적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한 정보 교류 기대, 하지만 북한의 호응이 변수
윤석열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 중 94번으로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 추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언론·출판 교류, 미디어 콘텐츠 분야 교류 등 다방면의 남북 상호 소통·교류 추진 및 인적 교류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남북간의 이러한 소통과 교류의 문제가 북한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해당 과제는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추진되었으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5일 토론회에 참석한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북한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보다도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문제"라면서 "체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를 유통한 사람을 찾아내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은 내부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외부 뉴스를 차단하는 가운데 지도자 우상화 작업을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며 "남한 정부가 방송을 개방했을 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하지만 남북한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개방은 분명히 필요하다"면서 "남북한 교류의 방법으로 북한과 남한에서 맛집인 식당을 찾아가거나 노래 경연을 하는 등의 TV 프로그램들을 남북한이 공동 제작해 남북한에 똑같이 유포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News 1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국내 북한방송의 선제적 개방 문제를 논의할 때 반드시 논의해 보아야 할 또 다른 문제가 민간차원 대북 방송 주파수 지원 문제"라고 말했다.
태 의원은 "지금까지 민간단체들이 대북 방송을 자체적으로 송출할 수 있게 주파수를 할당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역대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공론화되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