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4시간 재난보도에 현장중계까지...북한의 선전 방식은 왜 변하고 있나

지난 10월 10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심야 열병식을 거행했다

사진 출처, AFP Contributor

사진 설명, 지난 10월 10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심야 열병식을 거행했다
    • 기자, 이윤녕
    • 기자, BBC 코리아

최근 북한 방송에서 예전에 없던 모습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과거 경직된 분위기의 보도 방식에서 현장성과 실용성을 강화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에도 선전 선동의 내용 자체에는 변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전과는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 10월 10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심야 열병식을 거행했다. 전례 없는 야간 열병식에서 북한은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의 매스 게임을 진행했고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도 내보냈다.

이날 열병식 상황을 녹화 중계한 북한의 조선중앙TV에는 다소 이례적인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밤거리에 나와 열병식에 환호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도하며, 기자들이 현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구간별 상황을 중계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방송 기자들의 현장 중계가 익숙하지만 북한 방송, 특히 열병식 보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현장성을 강화한 이례적인 모습은 최근 북한을 강타한 태풍으로 인한 재난 보도에서도 목격됐다. 실제 태풍 현장 곳곳에 파견된 방송원들은 시간대별로 상황을 전달했고 이 장면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우비를 쓴 채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마이크를 들고 재난 상황을 전하는 방송원들의 모습은 북한 방송 보도에서 이례적이다.

한국의 아나운서 격인 북한 방송원 출신 탈북민 이연아 씨도 최근 북한 방송 보도에서 예전과는 다른 변화가 보인다고 말했다.

"제가 2011년에 탈북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재난 보도는 없었어요. 북한 방송은 항상 주민들에게 북한의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재난도 없고 무병장수가 많은, 세상에 부러움 없는 나라임을 덮어놓고 과시하려고만 했거든요."

그는 북한 방송에도 현장 중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재난 보도 등에서 나타난 보도 형식은 기존과는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북한 방송이 현장 중계를 하는 건 건설 현장 같은 것이었어요. 아니면 농촌 지원이나 농촌 현장 중계 같은 것도요. 물론 농사는 잘 된 지역만 가서 취재하고 안 된 지역은 안 내보냈죠. 근데 이런 것도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고 아주 제한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실황 중계만 있었어요."

현장성을 강화한 방송원들의 모습과 더불어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북한이 이례적으로 24시간 태풍 특보를 편성하고 정규 방송을 중단하면서까지 태풍관련 속보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시간대별 특보는 물론, 재난 상황 속보를 전하며 비바람에 무너진 건축물과 지역별 피해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점도 철저히 통제됐던 북한의 과거 재난 보도와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의 북한 정보통신 전문 매체 '노스코리아테크'를 운영하는 마틴 윌리엄스는 BBC 코리아에 이번 재난 보도에서 나타난 북한 방송의 변화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새해가 아니면 자정까지 방송하는 건 없어요. 항상 밤 10시 반에서 11시가 되면 방송은 끝납니다. 이렇게 24시간 방송이 돌아가는 건 제가 알기로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공영방송 모습처럼 방송 중간에 프로그램을 끊고 재난보도를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죠."

조선중앙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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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배경은?

우선 북한이 재난 특보를 24시간 방송하고 거의 실시간 중계로 속보를 내보낸 것은 그만큼 지난 재해에 대한 북한 당국의 긴장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마틴 윌리엄스는 "처음 태풍이 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긴급회의에서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김 위원장이 재난 방송의 방향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변화의 배경은 어쨌든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북한 주민들이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침이 상부에서 내려왔고, 그 영향의 하나로 방송 보도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난방송이나 열병식 중계에서 나타난 현장성을 살린 뉴스 보도는 방송을 보다 현대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분석이다. 북한 방송이 예전보다 더욱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점도 이러한 변화의 배경 중 하나이다.

윌리엄스는 북한 내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식적인 경쟁은 아니지만 북한 땅으로 여러 외국 콘텐츠들이 들어오다 보니까 경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프로파간다 방송을 하는 북한 매체 입장에서는 중앙방송을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많은 북한 주민들이 다른 콘텐츠 말고 중앙방송을 보게끔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북한 방송이 주민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콘텐츠, 그 내용에 있는 것이지 형식에 있는 게 아니라고 꼬집었다.

탈북민 이연아 씨도 최근 변화의 움직임과 관련해 ,북한 당국이 강경한 대중 매체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이 공포정치를 해야 했던 상황이라는 건 본인들도 잘 알고 있어요. 가뜩이나 이런 상황에서 대중 매체에서까지 딱딱하고 강압적인, 억지로 포장된 모습만 보여주면 북한 주민들이나 고위층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내외적으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척,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조선중앙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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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선동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생생한 태풍 속보를 전하고 24시간 특보까지 편성했던 북한 방송이지만 태풍이 지나간 직후, 관련 보도는 사라졌다. 뉴스 어디에서도 태풍으로 입은 피해 상황 같은 보도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북한 정보통신 관련 전문가 마틴 윌리엄스는 태풍이 지나감과 동시에 더 이상 '태풍 대비'는 공동의 목표가 아니게 된 것이라며 그 이유를 분석했다.

"초기의 태풍 피해가 수습되고 태풍이 지나가면 바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재난 위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김정은이 현장에 가서 주민들 지원하는 소식, 노동당이 주민들 돕는 소식 등 프로파간다 방송으로 즉각 복귀하는 겁니다."

최근 몇 년간 북한 방송에서 나타난 변화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뉴스에 처음으로 인포그래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한동안 매일 같이 뉴스에 등장하다 최근 들어 그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3-4년 전부터는 고화질 화면을 쓰기 시작했고, 방송 진행에도 1인 앵커 대신 2인 앵커가 나와서 진행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방송의 '현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깔려 있다.

북한의 프로파간다 방송과 관련해 윌리엄스는 지난해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본 사례를 소개했다.

"조선중앙방송이 해외 스포츠 방송을 틀어줬어요. 원래 메인 TV에서 주말 방송 후에 5-10분 정도 하는 스포츠 단신 뉴스가 있긴 했는데 작년에는 해외 축구 경기를 그대로 틀어주는 거예요.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 등이 오후에 방송됐는데 일부 편집을 하긴 했지만 거의 1시간 풀 영상을 틀었어요."

"이건 프로파간다성이 전혀 없는 방송이었어요. 메시지가 없는, 순수한 엔터테인먼트 방송이었던 셈이죠. 북한 메인 방송에서 이런 프로파간다 성격이 없는 순수 흥미를 위한 방송이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왜냐하면 북한 방송에서 나가는 모든 방송, 심지어는 가끔 틀어주는 해외 영화에도 메시지가 있거든요. 가장 최근에 본 게 30-40편짜리 중국 드라마였는데 중국 공산당 설립에 관한 드라마였어요."

즉, 북한 방송에서 보이는 다양한 시도들은 채널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서 많은 북한 주민들이 보도록 만들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방송을 통한 선전 선동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눈에 띄는 보도 양식의 변화에도 북한 방송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은 그대로라고 강조했다.

탈북민 이연아 씨도 북한 당국이 가장 솔직하게 보여줘야 할 부분은 여전히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된 매체 모습은 여러 가지를 목표로 하는 것 같아요. 국제 사회에서 솔직하게 요구하는 부분은 정작 가리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솔직하게 보이는 듯하면서도 일종의 심리전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