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슨 멀린스: 호주 성폭행법을 바꿔나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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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티파니 턴불
- 기자, BBC News, 시드니
호주에 사는 색슨 멀린스(27)는 한때 자신의 '첫 경험'은 어떨지에 대해 로맨틱한 꿈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13년 18세였던 그는 시드니의 어느 골목길에서 불과 몇 분 전에 만난 남자 때문에 두려움에 질려 온몸이 굳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멀린스는 항상 이 사건을 강간이라고 주장해왔다.
긴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호주 법원은 결국 이 남성이 멀린스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멀린스는 호주의 성폭행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멀린스가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법정을 빠져나온 지 5년이 흘러 지난주, 호주 당국은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5년 전 통과됐다면 멀린스의 주장이 인정돼 남성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법이었다.
이 법안에 대해 멀린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을 위한 약간의 정의"라고 말했다.
"이는 인정입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좋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우리는 변하고 있다'는 인정이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가 새롭게 제정한 '적극적인 동의'법은 상대방의 구두 또는 행동적 동의가 반드시 있을 때만 합의된 성관계로 본다.
이전에 비슷한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동의 의사 표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당시 이들이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합리적으로 믿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제정된 법안에 따라 합의된 성관계란 '상대방의 거부 표현이 없었다'를 넘어 '상대가 성관계에 대한 동의 의사를 표현했다'로 바뀌게 된다.
5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의 악몽
5년 전 당시 법정에서 멀린스는 자신이 성관계를 거절했다거나 그 남성에게 그만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꼈다.
멀린스는 배심원단에 자신이 친구가 있는 클럽 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자 이 남성이 "불만스러워"하며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진술했다.
그러자 멀린스는 얼어붙었다. 이는 성폭력 발생 시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멀린스는 재판에서 "그냥 무서웠던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가 말한 대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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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배심원단은 남성에게 유죄를 판결해 5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멀린스는 놀라움, 안도감, 죄책감 같은 "끔찍한" 감정의 조합을 느꼈다. 자신이 마치 이 남성의 인생을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남성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배심원단 없이 판사가 판단했다.
그리고 결과는 무죄였다. 멀린스는 더 끔찍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 남성과 의자 3개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던 멀린스는 이 남성이 안도하며 모친과 포옹했을 때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멀린스는 "정말 나 자신에 대한 일로 느껴졌다. '우리가 이 문턱을 넘지 못했구나'가 아니라 정말 나를 믿지 못했구나'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후 검찰은 항고했으나, 법원은 재심은 피고인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3번째 재판이 될 것인데 이미 이 남성은 10개월간 복역했으며, 문제의 밤 이후 5년이나 지났다는 이유였다.
이 재판 과정에 정의가 상실됐다고 느낀 멀린스는 자신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꼈다.
"그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손을 더럽혀야만 했다"는 게 멀린스의 말이다.
"그리고 이미 제 손은 더러웠기에 제가 계속해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018년, 멀린스는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호주 ABC방송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포 코너스'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멀린스의 이야기는 호주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개정안은 '혁명적'입니다
호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기도 한 뉴사우스웨일스주(NSW)는 작년 11월 '적극적인 동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후 수도 특별구(수도준주)도 주법을 개정했으며, 빅토리아주도 개정을 약속했다. 태즈메이니아주는 거의 20년 전에 이미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니키타 화이트 국제앰네스티 대변인은 호주의 강간 관련 법률은 이미 "앞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프랑스, 일본, 미국 뉴욕주와 같은 지역에서 강간은 여전히 폭력 또는 폭력에 대한 위협으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대변인은 호주와 같은 '적극적인 동의' 법을 제정한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정말 혁명적"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호주 주변 지역에서라도 이 개정안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분명 호주의 이번 일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우려의 목소리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법은 성관계에 대한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으며, 한 성행위에 동의는 또 다른 성행위에 대한 동의로 볼 수 없다고 명시한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변호사협회는 이번 개정안이 "문제없는 친밀 행위, 특히 상호 존중하는 관계에서의 행위"를 범죄화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이 전 파트너에게 앙심을 품으며 복수를 꿈꾸는 이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과 이미 경직된 형사 사법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저명한 변호사인 마가렛 쿠닌은 이 법이 소위 "가치 있는 실제 법률 사건"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주의 럭비 스타 제러드 헤인의 성폭행 재판에서 헤인 측 변호를 맡은 쿠닌은 재판을 앞두고 "[이 법안은] 진짜 피해자들에겐 매우 부당할 것이며, 무고하게 기소된 사람들은 자신의 오명을 씻기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비판에 대해 멀린스는 변호사들이 "이제 조금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상한 것"이라고 묘사했다.
멀린스는 이러한 비판 대부분이 "터무니없다"면서 "태즈메니아주에선 이러한 법이 이미 오랫동안 시행됐다. 왜냐하면 이 법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합의된 성행위라면 말 그대로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법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멀린스는 어떤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보다 더 오래 법정 재판을 거칠 자격이 없다는 암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인 일"이라면서, 거짓 강간 주장은 전체 성폭행 신고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호주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여성 6명 중 1명, 남성 25명 중 1명이 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며, 신고된 건수 중 약 10%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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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스는 "거짓 강간 주장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강간 생존자로서 직접 형사 사법 제도를 경험해봤다면, (피해자들이) 정말 꼭 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재판을 겪지 않아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크 스피크먼 뉴사우스웨일스주 법무장관은 표준 절차에 따라 이번 개정안은 3년 후 재검토될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사이기도 한 스피크먼 장관은 이번 개정안은 "상식"으로 "간단"한 것이라며 비판을 일축해 왔다.
"이 개정안은 몇몇 변호사들의 우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품격에 관한 것"이라는 게 스피크먼 장관의 설명이다.
'법 개정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생존자 및 전문가들과 함께 오랫동안 법 개정을 위해 투쟁해온 멀린스는 마침내 지난주 법이 발효되는 것을 바라보며 매우 감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멀린스는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가치가 있다.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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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멀린스는 이 과정에서 여러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진전되다가도 실망하기도 했으며, 칭찬도 있었지만 악의적인 욕설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멀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시 들려줬다. 때론 당시로 되돌아간 느낌이기도 했다.
멀린스는 "가끔은 내가 이 일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충분하다고 느끼면서 말이다"면서 "그렇지만 나는 내가 손을 떼지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멀린스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적극적 동의" 법을 호주 전역으로 확대해나가야 하며, 사법 제도의 피해자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고, 충격적인 호주 내 만연한 성폭력을 줄이는 등의 일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생존자들을 위대하지만, 이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멀린스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막으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