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제치고, 인도 작가 최초로 부커상 수상한 기탄잘리 슈리

기탄잘리 슈리는 저서 '모래의 무덤'을 "삶을 바꾸기 위해 우울증을 떨쳐내고 점차 날아오르는 한 나이 든 여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기탄잘리 슈리는 저서 '모래의 무덤'을 "삶을 바꾸기 위해 우울증을 떨쳐내고 점차 날아오르는 한 나이 든 여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인도 작가 기탄잘리 슈리(64)가 '모래의 무덤'(Tomb of sand)' 작품으로 세계 유명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인도인으로서는 최초다.

한국의 정보라 작가가 쓴 '저주토끼'는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하지 못했다.

725페이지에 이르는 소설 '모래의 무덤'은 '인도 분할'(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자치령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된 사건)의 그림자 아래 인도의 가족이 겪는 서사를 다루고 있으며, 주인공인 80세 여성은 남편의 죽음을 겪은 뒤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비영어권 작가의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은 상금 5만파운드(약 8000만원)가 주어지며, '모래의 무덤'은 힌디어로는 처음으로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슈리는 "부커상을 꿈꿔본 적 없다. 수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면서 "정말 큰 영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영광이고 겸손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도 현지 언론 '프레스 트러스트 오브 인디아'가 인용한 슈리의 수상 소감에 따르면 부커상을 수상한 첫 힌디어책이라는 데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슈리는 "저와 제 작품 말고도 힌디어 등 여러 남아시아 언어로 된 풍부한 문학 전통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언어권의 몇몇 훌륭한 작가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세계 문학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크 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단이 이 소설이 지닌 "힘과 시련을 얘기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는 모습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윈 위원장은 "인도 분할 당시를 다루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열정과 강렬한 연민은 청년, 노인, 남성, 여성, 가족, 국가를 마치 만화경에 비친 모습처럼 아름답게 엮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본 적 없던 작품이며, 소설의 "열정"과 "넘쳐흐르는 에너지" 덕에 "세계가 당장 읽어야 할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수상 상금은 작가 슈리와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미국 번역가 데이지 록웰에 분배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돼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출판되는 비영어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슈리 말고도 한국의 정보라, 일본의 가와카미 미에코, 노르웨이의 욘 포세, 아르헨티나의 클라우디아 피네이로, 전 수상자인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축 등 작가 6명의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라 경쟁을 벌였다.

부커상 시상식에서의 작가 슈리와 번역가 데이지 록웰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부커상 시상식에서의 작가 슈리와 번역가 데이지 록웰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마인푸리에서 태어난 슈리는 소설 3편과 여러 이야기 모음집을 집필했으며, 영국에서 출판된 작품은 '모래의 무덤'이 처음이다.

지난 2018년 힌디어로 처음 출간된 소설 '모래의 무덤'(원제 'Ret Samadhi')은 남편이 죽은 뒤 우울증에 빠진 여성 '마'의 다양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소설의 주인공 '마'는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10대 시절 인도 분할을 겪으며 살아남았지만 이후 줄곧 응어리진 채 남아있던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한 것이다.

슈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이 소설은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노래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많은 이야기가 모여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우울함에서 점차 날아오르는 한 나이 든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게 슈리의 설명이다.

'모래의 무덤'은 슈리의 고국 인도에서도 극찬받은 작품으로, 인도 언론 '더힌두'는 "이 소설은 절대 끝나지 않을 굉장히 강력한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인류의 역사, 문학, 예술, 사상, 정치 등 모든 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얽혀있다. 작가 슈리가 언어유희를 위해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 결말 부분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제멋대로이거나 주제와 관련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번역가 록웰은 작가 슈리의 문체가 "실험적"이며, 작가의 언어가 "독특하기에" '모래의 무덤'은 번역하기 가장 까다로운 작품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번역이 "정말 즐거웠으며 자유로움을 안겨줬다"고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