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평양 최중화: 영국을 택한 탈북민의 좌충우돌 정착기

영국 뉴몰든의 한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중화 씨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영국 뉴몰든의 한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중화 씨
    • 기자, 리차드 김
    • 기자, BBC 코리아

2004년 10월, 암흑 같은 북한을 떠나려는 최중화 씨의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혈육과 친지들, 친구들 모두 북한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드시 떠야만 했다. 이미 아버지를 따라나선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의 목숨이 그의 선택에 달려 있었기에.

중국에서 타향살이 4년, 이후 제3국을 돌고 돌아 2007년 12월 영국 땅을 밟았다. 복지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선진국 영국으로 가려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최 씨는 이후 우여곡절 끝에 런던 남부에 위치한 뉴몰든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뉴몰든은 2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사는 곳이자 유럽에서 가장 많은 탈북자(약 800여 명)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영국 런던의 상당수 주택 건물에는 굴뚝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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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영국 런던의 상당수 주택 건물에는 굴뚝이 달려 있다

상상과 너무 달랐던 영국

영국을 처음 본 느낌은 어땠을까. 그는 "처음에 생각했던 영국은 굉장히 멋있고 세련된 것이었는데, 주택에 굴뚝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뉴몰든에 정착하기에 앞서 영국 뉴캐슬에서 약 1년을 살았던 최중화 씨. 그는 "뉴캐슬에서는 입에 맞는 음식도 구하기 힘들었고, 정보도 얻기 아주 어려웠다"며 "그래서 뉴몰든에 내려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10년. 낯선 유럽에 정착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최중화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리틀 평양'(Little Pyongyang, 감독 Roxy Rezvany)을 공개한 바 있다.

24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영국에서 사는 한 탈북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중화 씨는 2004년 10월 정든 고향을 떠나 제 3국을 통해 영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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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최중화 씨는 북한을 떠나 제3국을 통해 영국으로 왔다

최중화 씨는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착 과정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어려운 부분도 정말 많았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현재 뉴몰든의 한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외로움', '그리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최중화 씨의 발언이다.

"고향이 한없이 그리운데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도 이제 별로 없습니다. 힘이 들 때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친척도 없습니다."

물론 그의 곁에는 세 명의 자녀와 아내가 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느끼는 심적 부담감은 타향에 살고 있는 가장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저희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이 정도는 감수하면서 극복해야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 씨에게 뉴몰든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그는 "뉴몰든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한인타운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관련 사업장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게 가장 큰 이점이라는 얘기다.

최중화 씨가 바라보는 2차 북미정상회담

최 씨는 현재 영국에서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북한을 벗어난 탈북민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북한의 변화가 절박한 사람들은 바로 북한 주민들"이라며 "그들이 깨닫고 일어설 때 북한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추진 중인 최근의 상황도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그다. 하지만 최 씨는 "국제사회나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지금의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필요악이 돼 버린 것 같다"며 "미국 등은 고통받는 2300만 명의 북한 주민은 보지 않고, 북한을 정치적으로 너무 활용만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최 씨는 인터뷰 내내 고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곳이 좋다기보다는 추억이 있고 어린 시절 사심 없이 놀던 친구들이 있고 꿈을 키웠던 곳이니까 그리운 겁니다. 저희는 떠날 때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간다는 인사도 못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그리운 거죠. 그들에게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최중화 씨는 울먹이며 "북한에 남아있는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통일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