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 전쟁: 징병을 피해 강을 헤엄치고 질병을 위조한 우크라 남성들

음악가 에릭(26)은 몰도바로 탈출하기 위해 강을 헤엄쳤다고 말한다
사진 설명, 음악가 에릭(26)은 몰도바로 탈출하기 위해 강을 헤엄쳤다고 말한다
    • 기자, 오아나 마로시코, 켈빈 브라운
    • 기자, BBC Eye Investigations

BBC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2만 명의 남성이 징병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 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 가운데는 위험한 강을 헤엄쳐 우크라이나를 떠난 이들도 있고, 단순히 어둠을 틈타 걸어 나간 경우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남성 2만1113명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당국에서 신병을 확보했다고 확인했다.

러시아 침공 이후 18~60세 남성 대부분은 출국이 금지됐다. 그러나 BBC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매일 수십 명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BBC는 해외에서 가족과 합류하거나, 공부하거나, 단순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몇몇 남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예브게니는 "[우크라이나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모든 사람이 전사는 아니잖아요... 국민을 전부 가둬둘 필요는 없습니다. 러시아처럼 모든 사람을 한데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BBC는 우크라이나와 이웃한 루마니아·몰도바·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에 불법 월경 통계를 요청해 2022년 2월부터 2023년 8월 31일까지 남성 1만9740명이 불법 이주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남성들의 탈출 방식은 알 수 없으나, 당국에 적발된 나머지 2만1113명이 시도한 방법은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당국 발표에 따르면, 대다수(1만4313명)는 걷거나 헤엄쳐 월경을 시도했으며, 나머지 6800명은 질병 등 면제 사유를 위조한 허위 서류를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확보했다.

징병 제외 대상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 남성, 돌봄 책임이 있는 남성, 세 명 이상의 자녀를 둔 아버지 등이다.

많은 사람이 예측을 불허하는 티사 강을 헤엄쳐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려다 숨졌다
사진 설명, 많은 사람이 예측을 불허하는 티사 강을 헤엄쳐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려다 숨졌다

지난 8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군 의료위원회의 "부패한 결정"으로 2022년 2월 이후 면제자가 10배 증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징병을 담당한 지역 간부를 모두 해임했고 30명 이상을 형사 고발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최고평의회의 페디르 베니슬라브스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정부가 이 현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부패는 근절이 어렵다"며 우크라이나는 "부패 사건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니슬라브스키는 나라를 떠났거나 떠나려고 시도한 인원이 전쟁 수행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독립·주권·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회복력과 준비는 95~99% 수준이라고 확신한다"고 BBC에 전했다.

"동원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1~5% 정도입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선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베니슬라브스키는 동원 대상자를 급격히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했거나 탈출을 시도한 남성은 4만 명 이상으로, 우크라이나의 병력 보충에 필요한 인원 중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지난 8월 미국 관리들은 우크라이나 군 사망자를 최대 7만 명으로 추산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또한, 군대 규모에 대한 공식 수치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신임 국방부 장관은 9월 '얄타 유럽 전략'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군 규모가 80만 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일부 탈출은 극적인 모습으로 이뤄졌다.

어떤 영상에는 한 남성이 몰도바를 향해 드니스테르 강을 헤엄쳐 건너는 모습과 함께 몰도바 국경수비대가 더 안전한 곳으로 건너도록 재촉하는 모습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는 치명적 결과가 짐작되는 상황이 담겼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의 티사 강을 건너려다 익사한 남성의 시신이 해변으로 떠내려 온 것이다.

그러나 몰도바 이민 센터에서 만난 키이우 출신의 건설 노동자 예브게니는 그냥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BBC 조사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탈출 경로다. 전쟁터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이후 망명 신청은 비교적 간단하다.

예브게니는 우크라이나에서 갇혀버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젊은 남성과 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징집됐다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이 전쟁 중심이었기 때문에"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던 한편, "전기·연료 등 모든 물가는 더 비싸졌다"고 말했다.

예브게니는 몰도바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망명을 신청했다. 범죄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입국 후 24시간 이내에 망명을 신청해야 한다.

같은 망명·이주 센터에서 하르키우 출신의 음악가 에릭(26)을 만났다. 에릭은 몰도바의 분리 독립국인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평원을 걷고 강을 헤엄쳐 몰도바로 건너왔다고 말했다.

위조 면제증을 구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한편, 에릭의 경험에 따르면 오히려 진짜 서류를 구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에릭은 어린 시절 복막염으로 까다로운 복부 수술을 받았고 특별한 식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 복무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병역 면제 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담당자들이 계속 따른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검사를 받았지만 반년 뒤에 부적합 증명서가 나왔어요. 결국 인내심이 바닥났죠."

에릭은 마침내 미국에 도착해 아내, 네 살배기 딸과 재회했다.

에릭은 마침내 미국에 도착해 아내, 네 살배기 딸과 재회했다.

사진 출처, Supplied

사진 설명, 에릭은 마침내 미국에 도착해 아내, 네 살배기 딸과 재회했다.

미국에서 딸과 재회한 에릭

또 다른 남성 블라드(가명)는 적법한 면제 서류를 받았지만 국경수비대가 이를 무시했다고 말한다.

그는 외국 대학에 합격하고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있다는 학생 허가증을 받아 기뻐했지만, 곧 이 허가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심사가 까다로워 진행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다른 심사소, 또 다른 심사소로 향했지만, 비웃음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죠. 이 종이, 이 '허가'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국경 공무원은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그래서 블라드는 티사 강 건너 루마니아로 헤엄쳐 나라를 떠났다.

예브게니는 우크라이나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사진 설명, 예브게니는 우크라이나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블라드는 친구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에 도착했지만, 다닐로(가명)는 티사 강을 건너게 해주는 텔레그램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한다.

BBC 조사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밀입국 업자들이 광고에 가장 널리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잠입 기자 안드레이(가명)는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를 떠나고 싶어 하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위장해 밀입국 업자와 연락을 취했다.

그는 최소 6개의 텔레그램 그룹을 발견했고, 회원 수는 100명에서 수천 명에 달했다.

안드레이는 텔레그램 그룹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서비스는 가족에 가상의 자녀를 추가하는 것부터, 가장 비싼 옵션인 의료 면제 증명서 "화이트 티켓" 발급까지 다양했는데, 이 증명서를 이용하면 원할 때 언제든지 우크라이나를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는 티켓 마련에 최대 일주일이 걸리고 약 4300달러(약 556만원)이 든다고 들었는데, 이 비용에는 티켓 발급 공무원에게 주는 뇌물도 포함돼 있었다.

우크라이나 최고평의회의 페디르 베니슬라브스키는 위조 서류가 문제를 일으키고 국경수비대에서 인정하는 적격 서류를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새로운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향후 1~2년 내에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모두 출국에 성공했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에 적발되면 92~230달러(약 12~30만원)의 벌금과 최대 8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도피 후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소급해 처벌을 받을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베니슬라브스키는 소급 처벌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닐로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삶의 목적은 각자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토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업을 하고, 사업을 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하길 원합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터에는 제 역할이 없다고 믿습니다."

다닐로는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당국이 떠난 사람들을 처벌하기보다 귀국을 장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이 없으면, 특히 돈을 잘 벌고 국고를 채우는 똑똑한 사람이 없으면 국가의 존립도 어렵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안 보이는 가운데, 이 문제가 언제 다시 불거질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전쟁은 소모전으로 변하고, 우크라이나는 최대한 많은 군인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