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무장대원이 일가족을 살해한 현장
- 기자, 제레미 보웬
- 기자, International editor, 이스라엘 남부
주의: 이 기사는 일부 보기 다소 불편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크파르 아자의 키부츠(이스라엘 생활 공동체)는 이스라엘-하마스 전투 초반부의 압축판이자 향후 전개의 예고편이다. 가자지구와 접경한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는 오늘 아침까지도 전투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7일(현지시간) 아침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국경 철조망을 뚫고 침입해 살해했던 이스라엘 주민들의 시신을 이제야 수습하게 됐다.
하루 종일 폐허에서 민간인 시신을 수습한 군인들은 학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하마스의 공격 시작 직후 몇 시간 동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숙련된 낙하산부대 71부대의 다비디 벤 시온 부사령관은 이스라엘군이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부모와 아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서 신께 감사드린다"며 "안타깝게도 일부는 화염병에 화상을 입었다. 그들은 마치 짐승처럼 매우 공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벤 시온은 아기를 포함해 일가족을 살해한 하마스 무장세력은 "무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저 아침을 먹으려 했던 평범한 시민들을 모두 죽여버린 지하드 기계일 뿐"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희생자 중 일부가 목이 잘렸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Oren Rosenfeld
"하마스는 사람들을 죽이고 참수했습니다. 눈 뜨고 보기 끔찍한 일이죠. 우리는 누가 적이고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옳은 편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제 사회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장교는 피투성이가 된 보라색 침낭을 가리켰다. 부어오른 발가락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침낭 아래의 여성이 집 앞마당에서 살해당해 목이 잘렸다고 말했다.
기자는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침낭을 옮겨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몇 야드 떨어진 곳에는 죽은 하마스 무장대원의 시신이 시커멓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하마스의 전쟁 범죄 증거가 쌓여가는 가운데, 크파르 아자의 키부츠에서도 상당한 증거가 추가됐다.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크파르 아자 키부츠 사람들도 충격에 빠졌다.


사진 출처, Oren Rosenfeld
크파르 아자 키부츠의 첫 번째 방어선은 키부츠 경비대였다. 이들은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주민들로 구성됐고 마을 주변을 순찰했다. 경비대는 공격을 받고 싸우다 살해당했다.
키부츠 중앙에 있던 시신은 오늘 아침에야 옮겨졌다. 다른 이스라엘 사망자와 마찬가지로 검은 비닐에 싸여 들것에 실리고 주차장으로 향한 뒤 수습을 기다리는 다른 시신들 옆에 놓였다.
이스라엘 국경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2007년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뒤 주기적인 로켓 공격을 예상했다.
이들은 초기 시오니스트 정착촌의 개척자 정신이 남아 있는 긴밀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대가로 큰 위험을 감수했다.
크파르 아자 주민들과 가자지구 철조망을 따라 형성된 다른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크파르 아자 키부츠의 집과 잔디밭, 공터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콘크리트 대피소가 있었다.
모든 집에는 튼튼한 대피실이 있었고 야외 테라스, 바비큐 시설, 어린이용 그네, 신선한 공기도 있었다.
그러나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방어선을 뚫고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크파르 아자는 물론 이스라엘 어디에도 없었다.
이스라엘인의 공포와 분노는 국가와 군대가 시민 보호의 기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충격적 불신과 뒤섞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 무장대원의 시신들은 크파르 아자 키부츠의 덤불과 도랑, 넓은 잔디밭에서 햇볕에 부패한 채 방치돼 있다.
시신 근처에는 이들이 국경 철조망을 뚫고 키부츠로 돌진할 때 사용했던 오토바이가 놓여 있다. 이스라엘 방어선 상공을 비행하던 패러글라이더 잔해도 함께 있었는데, 길에서 화단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사진 출처, Oren Rosenfeld
다른 접경 정착촌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크파르 아자를 탈환하기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오늘 아침 크파르 아자 키부츠 입구에 접근했을 때, 이스라엘 전투병 수백 명이 여전히 그 주변에 배치돼 있었다. 그들의 무전이 들려왔다.
한 지휘관이 가자지구 쪽 건물에 발포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거의 즉시 자동무기에서 포격이 시작됐고, 국경 너머 가자지구로 향했다.
우리가 크파르 아자에 있는 동안, 가자지구에서 공습의 굉음이 계속 울려 퍼졌다.
지난 7일 수많은 동포들이 살해된 뒤 이스라엘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도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하고 있다. 국제인도법에서는 모든 전투원이 민간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마스 공격대원이 민간인 수백 명을 살해한 것은 심각한 전쟁법 위반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주민들은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과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사망을 비교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크파르 아자 키부츠 탈환전을 이끌었고 곧 퇴역을 앞둔 이타이 베루브 소장은 이스라엘이 전쟁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위해 싸웁니다. 우리는 매우 공격적이고 매우 강하지만, 도덕적 가치는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인이고 유대인입니다."
그는 전쟁법 준수에 소홀했다는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할수록 이스라엘도 더욱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 자명하다.

크파르 아자에서 이번 전쟁의 향후 전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익명을 원한 한 군인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다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병사도 전쟁 초기 며칠 동안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전투에 대한 결의를 굳혔다.
그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방이 아수라장이었고, 테러리스트들이 도처에 있었다"고 말했다.
전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묻자 "상상도 못 할 것"이라고 답했다.
군인으로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묻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답했다.
다음 계획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지시를 받을 뿐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자로 들어가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맞다. 하지만 각오가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 출처, Oren Rosenfeld
병사들은 대부분 예비군 출신이었다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는 자칫 분열될 수 있는 국가를 통합하는 중요한 국가 기반으로 여겨져 왔다.
크파르 아자 키부츠의 첫 공식 파병에 참여해 하마스가 남긴 대학살을 목격한 다비디 벤 시온 부사령관은 이스라엘인의 정치적 분열이 깊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공격을 받고 있는 지금은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중해의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시신을 수습하는 군인들은 부비트랩이 설치됐을지도 모를 불발탄을 조심하며 폐허가 된 집 사이를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정원에는 수류탄이 놓여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하마스의 로켓포 발사 경보가 울려 엄폐하는 순간도 있었다.
기자가 크파르 아자를 떠난 이후에도 경보는 끊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