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벗다: '내 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입는 것'

리벨은 이란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현재 튀르키예에서 타투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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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리벨은 이란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현재 튀르키예에서 타투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일부 무슬림 여성들에겐 히잡 또는 머리에 쓰는 스카프 착용을 중단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같은 선택을 하면, 가족들의 반발을 사거나 소속 집단 내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법률이 이러한 압박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이란 의회는 엄격한 복장 규정을 위반한 성인 및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처벌 기간과 벌금을 대폭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켜 논란을 빚었다.

이 법안이 실제 효력을 가진 법이 되려면 헌법 감시기구인 헌법수호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법안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히잡을 벗는 시위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여성들의 시위는 1년 전 도덕 경찰에 체포됐던 마사 아미니의 사망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아미니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전 세계에 있는 약 10억 명의 무슬림 여성 중 상당수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을 가린 천을 벗고 싶은 사람들이 압박감을 이겨내고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마사 아미니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혐의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사진 출처, MAHSA AMINI FAMILY

사진 설명, 마사 아미니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혐의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사망했다

리벨(가명)은 "나는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여성들만 거리에 나와 원하는 옷차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날을 꿈꿨었다"고 말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에 살던 그녀는 9살 때부터 차도르를 입어야 했다. 차도르는 히잡 중 가장 보수적인 유형에 속하는 전신 망토로, 안쪽에 머리를 가리는 작은 스카프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6살 때부터 옷으로 신체를 가리는 것을 준비하게 했다.

그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내가 히잡을 써야 하고, 그것이 신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가르쳤다"며 "내가 거부하면 죽은 후 영원히 벌을 받을 것이고 부모를 분노하게 하고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는 게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23살인 리벨은 테헤란을 떠나 튀르키예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타투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부모의 말에 겁을 먹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끼며 살아왔다"며 "그 죄책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랐지만 항상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역사회에서 보다 덜 보수적인 히잡을 쓰는 다른 여자아이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리벨의 부모는 리벨이 9살 때부터 가장 보수적인 히잡에 속하는 차도르를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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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리벨의 부모는 리벨이 9살 때부터 가장 보수적인 히잡에 속하는 차도르를 쓰게 했다

이란의 공공장소에서는 9세 이상의 여아 및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다. 하지만 보통 집이나 사적인 모임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는다. 리벨의 가족은 매우 종교적이고 보수적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는 죄를 짓게 할 수 있으니 10대인 남자 형제들 앞에서도 맨팔이나 맨다리를 보여주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리벨이 17살이 되자, 부모는 그녀를 이슬람 여성 신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녀는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학교가 싫었고 커리큘럼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깨달았다. 히잡에 대한 그녀의 믿음도 무너졌다.

결국 리벨은 이란을 떠나 튀르키예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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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결국 리벨은 이란을 떠나 튀르키예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날, 그녀는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코트에 느슨한 스카프를 두르고 갓 염색한 새빨간 머리칼을 뽐냈다.

리벨은 신학교 교장이 그녀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매춘부"같은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게 두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할머니는 전화로 부모에게 "(리벨의) 다리를 부러뜨려 집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리벨은 어머니가 "'신이 네 목숨을 빼앗아 우리 가족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말했다.

학대가 계속되자, 리벨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 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는 침대 곁에서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이란을 떠나 튀르키예로 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튀르키예는 히잡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아, 히잡 없이도 공공 장소를 다닐 수 있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리벨의 이야기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그녀만 이러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나 엘타하위는 여성의 신체적 자율성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온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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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모나 엘타하위는 여성의 신체적 자율성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온 작가다

이집트계 미국인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작가인 모나 엘타하위의 집안은 리벨만큼 엄격하진 않았다. 하지만 히잡을 벗는 것은 그녀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16살 때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한 후 9년간 히잡을 썼으며, "그 중 8년은 히잡을 벗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했다.

히잡을 벗는 게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족들의 반대였다.

모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히잡을 머리 반 정도만 걸친 채 집(당시 이집트)을 나섰다"며 "완전히 벗을 수는 없었다"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동안 그녀는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없이 지내는 게 편치 않았다.

그녀는 "히잡을 쓰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사람들에게 과거에 히잡을 썼었다고 말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고 했다.

모나는 9년간 히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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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에 관한 책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와 처녀막'을 저술한 모나는 이란의 시위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시위에서 여성들은 히잡을 벗고 불태우거나 공중에 휘두르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다.

모나는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변화에 대한 요구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국가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억압하고 있지만 거리와 국가, 가정이 모두 여성과 성적 소수자를 억압하고 있다"며 "이란 여성들의 히잡 의무에 대한 반대 투쟁은 이 세 가지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이란 내 여러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최근 시위 이후 히잡을 벗는 선택에 대해 가족들이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벨라는 거의 평생 히잡을 쓰고 살았지만 이란에서 여성 주도의 시위가 벌어진 후 히잡을 벗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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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벨라는 거의 평생 히잡을 쓰고 살았지만 이란에서 여성 주도의 시위가 벌어진 후 히잡을 벗기로 결심했다

BBC 월드 서비스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벨라 하산은 이란 시위에서 영감을 얻은 무슬림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평생 히잡을 쓰고 살았다.

이란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2022년 1년간 런던에서 생활한 후, 그녀는 히잡을 벗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란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을 통해 여성들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를 얻기 위해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며 "그것이 내게 진정한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가 더 이상 모가디슈에 있지 않고 런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죠."

모가디슈에 있는 그녀의 가족들은 히잡을 쓰지 않기로 한 그녀의 결정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벨라가 히잡을 쓰지 않은 첫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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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벨라가 히잡을 쓰지 않은 첫날 사진을 찍었다

BBC 기자로서 벨라는 소말리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히잡을 벗기로 한 결정은 반발을 불러왔고, 그녀는 더 기다렸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그녀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속했던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며,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잡을 벗은 후 남성들로부터 살해와 강간 협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들이 저를 비난하고 욕설을 퍼부었죠."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에 대해 특별히 정해진 처벌은 없습니다. 쿠란에는 신이 그들을 처리할 것이라고 나와 있지만, 우리나라 무슬림 남성들은 신을 대신해 저를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벨라는 히잡은 소말리아에서 매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히잡을 원치 않는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우리나라 여성들도 다른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말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갖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