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현대판 노예' 이슈에 주목하는 이유

2020년 4월 캘리포니아주의 수감자들이 방역 마스크를 만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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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2020년 4월 캘리포니아주의 수감자들이 방역 마스크를 만들고 있는 모습
    • 기자, 맥스 맷자
    • 기자, BBC News, 시애틀

미국 헌법이 노예제, 즉 한 인간을 다른 사람의 법적 재산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금지한 지 157년이 지났지만, 예외로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다.

미국 대부분 주에선 유죄판결 받은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선고되는 강제노역은 노예제 금지 조항에서 예외로 적용된다.

그러나 오는 8일 중간선거에서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오리건, 테네시, 버몬트 등 5개 주는 이러한 재소자 대상 강제노역 형벌 폐지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시행할 예정이다. 만약 폐지 의견이 더 높을 경우 해당 주에서 노예제는 그 어떠한 예외 없이 전면 폐지되는 셈이다.

투표 결과에 따라 재소자는 강제 노동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턱없이 적은 임금 혹은 무급으로 노동하는 재소자의 수는 약 80만 명에 이른다. 실제로 미국 내 7개 주에선 대부분 노동 활동에 대해 수감자에게 아예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변화를 지지하는 측에선 재소자 강제노동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착취라며 반드시 이러한 관행은 끝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를 폐지하면 주 정부가 치러야 할 비용이 감당불가능한 수준이며, 형사 사법제도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25년간 일했지만 남은 건 124달러뿐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남아있는 이러한 재소자 강제 노동의 뿌리는 수 세기에 걸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노예화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인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선 노예제가 불법으로 규정된 이후로도 몇 년간 특히 흑인을 억압하고 흑인 죄수는 강제 노동이 포함된 교도소로 보낼 수 있다는 법규가 버젓이 통과됐다.

먼 옛날 이들의 조상이 쇠사슬에 묶인 채 남부의 대규모 농장에서 면화를 수확했던 것처럼 현재 일부 흑인 재소자들도 똑같이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남부 루이지애나주에서 25년 넘게 노역하다 지난 2019년 풀려난 커티스 레이 데이비스 2세는 "미국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성문화된 노예제가 없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비스는 악명높은 '루이지애나주 주립 교도소'에서 여러 일을 했다. 해당 교도소는 '앙골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과거 앙골라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가 많이 일했던 지역이 루이지애나주였기 때문이다.

"25년 동안 일했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수중엔 124달러(약 17만원)밖에 없었다"는 데이비스는 교도소에서 시간당 20센트(약 260원) 이상 받은 적이 없으며, 이는 "내 의지에 반하는, 위협받는 상태에서" 강요된 노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국의 인권단체 '이노센스 프로젝트'에 따르면 '루이지애나주 주립 교도소' 내 수감자의 약 75%가 흑인이다.

이렇듯 '앙골라' 교도소는 본질적으로 미국에서 노예제가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곳이라는 게 '이노센스 프로젝트'의 주장이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남부 루이지애나주 교도소에서 25년 넘게 노동하다 풀려난 데이비스는 경험을 담아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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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남부 루이지애나주 교도소에서 25년 넘게 노동하다 풀려난 데이비스는 경험을 담아 책을 집필했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우는 '노예제 국가 네트워크 폐지'의 사바나 엘드리지는 "비록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개인 소유의 노예제가 국가가 승인한 노예제의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예제 국가 네트워크 폐지' 단체는 더 많은 주가 재소자 강제 노동 등의 예외 없이 노예제를 전면 금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미 의회에서 관련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실제로 콜로라도, 네브래스카, 유타주에선 2018년부터 모든 형태의 노예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엘드리지는 단체의 적극적인 활동 덕에 초당적인 지지를 끌어내 공화당이 우세한 유타와 네브래스카주에서도 노예제 예외 조항이 폐지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엘드리지는 내년엔 18개 주에서 노예제 전면 금지 법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 경고

한편 노예제를 전면 폐지하려는 주의 노력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이 크다기보단 재소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면 주가 치러야 할 부담이 너무 커진다거나, 재소자는 그러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재소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주에선 올여름 재소자 노동은 노예제 폐지의 예외로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자는 투표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앞서 주지사를 포함한 민주당원들이 재소자에게 주가 정한 최저 시급인 15달러(약 2만1000원)를 지급하게 되면 주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15억달러 이상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리건주 보안관 협회'는 법조항 폐지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킬 것이며, 교도소 내 도서관, 주방, 세탁실 등에서 이뤄지는 저임금 업무와 같은 "교화 프로그램"에 피해를 끼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오리건주 보안관 협회'는 이러한 교도소 내 노동 기회를 통해 재소자들은 무엇이든 활동할 기회를 얻으며 이들이 "올바른 행동을 할 인센티브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가석방 청문회에서도 영향을 끼친다.

즉 우선 이러한 법 조항은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적용이 되기에, 재판 전 구금상태인 사람들은 배제된다는 문제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 조항을 무턱대고 폐지하면 법원의 구체적인 허가를 받지 않은 교도소 내 프로그램이 모두 전면 중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 협회는 투표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보낸 팸플릿에서 "오리건주의 보안관은 어떤 형태의 노예제 및/또는 비자발적 예속상태를 묵인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법 조항이 폐지되면 "모든 교화 프로그램이 사라지며, 지역 교도소 운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1909년 촬영된 재소자 노동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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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재소자들의 노동은 여러 방면에서 공급망과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데,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많다.

재소자들은 안경에서부터 자동차 번호판, 공원의 벤치까지 정말 모든 제품 제작을 의뢰받는다. 쇠고기, 우유, 치즈를 가공하기도 하고, 정부 기관이나 주요 기업을 위한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재소자들의 노동은 보통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지기에 어떤 사업체가 재소자 노동 인력을 이용했는지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청업체가 재소자들이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재소자가 투입됐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타주에서 교도소 노동의 혜택을 본 기업만 해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애플', '펩시코', '페덱스' 등이 있다.

또한 자연재해 등에 대비한 긴급 작전 계획에 재소자 인력을 포함한 주가 적어도 30곳에 이른다. 예를 들어 ACLU의 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14개 주에서 산불 진압에 재소자를 투입한다고 한다.

매년 여름 산불 진압에 재소자들이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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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매년 여름 산불 진압에 재소자들이 투입된다

한편 5개 주에서 투표로 재소자 노동이 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재소자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이번 투표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선 필요하지만 충분하진 않다"는 게 ACLU의 인권 연구원인 제니퍼 터너의 설명이다.

이후로도 재소자는 어떤 권리를 지닐 수 있는지, 재소자도 병가와 같이 일반적인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선 법원의 해석과 판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재소자 노동을 폐지한 주에서도 그 결과는 서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콜로라도주에선 어느 재소자가 재소자 노동을 금지한 법규를 위반했다며 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법원은 모든 교도소 노동을 폐지하는 의도는 아니라고 해석하며 사건을 기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네브래스카주의 어느 교도소에선 재소자 노동이 철폐된 후 수감자에게 주급으로 20~30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재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보호를 계속 요구하면서 더 많은 법적 분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루이지애나주에서 억울하게 감옥살이한 데이비스는 재소자 헐값 노동을 폐지해야 비로소 주가 시민들을 감금하려는 "인센티브"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데이비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양심이 있다면, 재산법을 이해한다면 그 어떠한 인간도 다른 이의 소유물이어서는 안된다는 개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재소자가 루이지애나주의 소유물이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