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6명

사진 출처, Getty Images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한국시간 8일 오후 6시에 발표될 예정이다. 과거에도 수 차례 그랬듯이, 이번 수상도 논란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의 과학자, 사업가, 자선가였던 알프레드 노벨이 제정한 6개 부문의 노벨상에 속하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영예로운 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은 그 정치적 특성 때문에 나머지 5개 상보다 더욱 자주 논란에 휩싸여 왔다. 논란에 휩싸인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주목할 만한 탈락자 한 명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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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200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당시 오바마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은 수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오바마는 2020년에 출판한 회고록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왜?"라는 의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오바마는 취임한 지 9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이 결정이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 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 지명 제출 시한은 오바마가 취임한 지 겨우 12일 후였다.
2015년, 노벨위원회 전 위원장 게이르 룬데스타드는 상을 결정한 위원회가 오바마의 수상 결정을 후회했다고 BBC에 말했다.
오바마의 두 번의 임기 동안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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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초대 수반으로 2004년 사망했다. 그는 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의 희망으로 여겨진 오슬로 평화협정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 당시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아라파트는 무장단체 요원으로 대이스라엘 테러 활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 결정은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들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아라파트의 수상 지명은 노벨위원회 내부에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벨위원이자 노르웨이 정치가인 카레 크리스티안센은 아라파트의 수상에 항의하는 뜻으로 위원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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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군사 통치를 반대하는 비폭력투쟁을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버마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년 이상이 지난 후 수치는 미얀마 내 무슬림 로힝야족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와 대량 학살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아 강도 높게 비판받았다. 유엔은 로힝야족 탄압을 '제노사이드(인종학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일각에선 수치의 노벨 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했지만, 노벨상 규정에 따르면 기존의 수상내역은 번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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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아흐메드 알리
2020년 12월, 아비 아흐메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는 인접국 에리트레아와 오랜 국경 분쟁을 해결하려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상 후 1년이 조금 지나자 그의 수상이 옳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국제사회는 아비 아흐메드가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 군대를 배치한 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티그라이에서 벌어진 전투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엔은 이를 '가슴 아픈 파괴'로 묘사했다.
왕가리 마타이
2011년 사망한 된 케냐 활동가 왕가리 마타이는 2004년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이다.
그러나 마타이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그의 수상은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가 HIV가 흑인들을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물학적 무기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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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1973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수상에 반대했는데, 그가 1970년대 미군의 캄보디아 비밀 폭격작전과 남미의 군부 정권을 지지하는 등 미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논란이 된 일부 사건들에 연관됐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베트남전을 휴전하는 파리 평화협정을 주도한 공로로 당시 북베트남 지도자 레둑토와 노벨 평화상에 공동 지명됐고, 레둑토는 "조국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은 키신저의 수상에 항의하며 위원직을 사임했고, 뉴욕타임스는 이 상을 '노벨 전쟁상'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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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상하지 못한 마하트마 간디
노벨상은 일부 지명자들의 탈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노벨 평화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탈락자는 20세기 평화운동의 상징이자 인도 정치가인 마하트마 간디일 것이다.
간디는 수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2006년 당시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위원회 위원장 게이르 룬데스타드는 간디의 업적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던 것은 노벨상 역대 최악의 누락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