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속옷 보여달라'… 코로나 장기화에 아동 '온라인 그루밍' 심각

전 세계 아동보호 단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과 괴롭힘 사례가 급증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아동구조서비스에 따르면 6세에서 17세 사이 아동과 청소년 25%가 누군가로부터 신체 노출 사진을 요청받거나 몸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일을 겪은 일로나는 당시 겨우 12세였고 몹시 불안해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끼니를 거르고 가족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의 어머니 옥사나는 일로나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혹은 지나치게 흥분해서 거의 히스테릭하게 웃으며 항상 저를 안아주곤 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본 기사에선 모녀의 가명을 사용했다.

옥사나는 딸이 SNS에서 6개월간 겪은 그루밍과 괴롭힘 가해자 측을 신원 미상의 개인 혹은 무리로 추정됐다.
이들의 괴롭힘은 우크라이나에서 코로나19 1차 확산이 일어나기 직전에 시작됐다.
"사춘기 때 독립적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아이에게 방을 내줬습니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성실했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려 했고 솔직했습니다. 딸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그는 명랑하고 다정한 일로나에게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아이가 휴대전화에 중독돼 가는 것을 감지하면서 시작됐다.
옥사나가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줄이자고 할 때마다, 일로나는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아이는 전화를 강박적으로 확인했고 아이가 누군가에게 밤에도 계속 문자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뒤 아무 전조 증상 없이 일로나의 정신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가고 싶지 않다며 방에만 처박혔다. 엄마에게 몸이 안 좋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아픈 건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봉쇄령이 시작된 시점에 모든 것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남편과 저는 직업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딸에겐 덜 관심을 가졌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일로나가 절박하게 울면서 다가왔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다쳤냐고. 그러자 아이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했어요."
옥사나가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일로나는 인스타그램에서 15살 소년과 친구가 됐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소년의 프로필 사진은 그렇게 믿게 했다.
소년은 잘생겼고 매력적이었으며 일로나에게 자주 칭찬을 해줬다. 일로나에게 쉽게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자주 했다. 몇 주 동안 둘은 동영상 링크와 음악을 공유하며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서로 너무 많은 공통점이 있어 그에겐 뭐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일로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년이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둘의 따뜻한 관계가 그리워 일로나는 문자를 보내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다.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정말 사랑한다면, 내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것 같아. 사랑을 증명할 준비가 됐니?"

처음에 그는 일로나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해달라고 말했다.
"생일 때 받은 새 잠옷 좀 보여줄래?"
"운동 전 준비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줄 수 있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구의 수위가 높아졌다. 일로나에게 속옷 차림의 사진을 부탁했고 나중엔 속옷 없이 찍은 사진도 달라고 했다. 이후엔 일로나에게 온라인 생중계로 몸을 만지거나 샤워하는 모습을 보내라고 부탁했다.
일로나가 이를 거절하자 대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는 일로나가 이미 공유한 사진을 SNS에 올리고 부모에게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일로나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불법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 뒤 일로나는 여러 SNS 계정에서 협박성 문자를 받기 시작했다. 이 문자들엔 일로나가 사는 곳과 다니는 학교를 알고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옥사나는 개인이 아닌 단체가 이 메시지를 보낸 걸로 추정했다.
마침내 그는 일로나에게 이런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그녀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가 바로 일로나가 사실을 털어놓은 순간이었다고 옥사나는 회상한다. "신에게 감사드려요. 아이가 그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어떻게 하면 됐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완벽한 폭풍'
일로나의 경험은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의 전형이다. 가해자들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피해대상을 성희롱하거나 괴롭히기 전에 감언이설로 이들과의 신뢰 관계를 SNS에서 구축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라이크, 틱톡과 같은 SNS는 사용자의 나이, 성별, 위치 및 관심사에 따라 친구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알고리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알고리즘은 가해자들이 어린 피해 대상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공유한 관심사와 취미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유혹할 수 있는 프로필을 조작한다. 이들은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어 많은 양의 상대방 개인 정보를 빠르게 수집한다.
아동보호 단체들은 SNS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감정을 묻는 말들이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의 "지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가해자는 정서적으로 취약한 피해자를 빠르게 걸러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기간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보냈다. 이들은 가상수업을 받고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원격으로 소통했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온라인 아동학대와 괴롭힘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가 됐다고 국제 NGO 인터넷 감시 기구는 전한다.
국제 사이버 범죄 경찰은 코로나19 사태가 이른바 '완벽한 폭풍'을 야기했다고 봤다. 집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된 많은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아동보호 단체는 어린이들에 대한 온라인 위협 실태 조사에서 6세와 17세사이 아동과 청소년 7000여 명을 인터뷰했다.
팬데믹 기간에 몸에 대해 친밀한 질문을 받았거나 노출 사진을 찍도록 요청받은 응답자가 4명 중 1명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석 연구원인 올레나 카프랄스카 박사는 10세에서 17세 사이에서 가장 심각한 학대 사례가 발견됐다며 이를 "참혹하다"고 평가했다.
화상에서 자신을 만지도록 요청받았고, 실제로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록 요청받은 경우도 있었다.
카프랄스카 박사는 "이런 일을 겪은 아이의 절반은 너무 창피하다고 여겨 침묵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은 부모와 보호자, 교육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했다. "어린이들은 종종 위험한 상황을 인식할 수 없고, 그러한 온라인 위험이 실제 생활에서 성적 학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줌 테러'
봉쇄령 기간에 거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이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됐다.
우크라이나 사이버 경찰대의 책임 수사관 로만 소흐카 대위는 "줌 폭발 사건이라고 불릴 만한 일들이 쇄도하고 있다"면서도 "이런 사건들은 스크린샷이나 추가 증거 없이는 조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키예프의 로고스 중등학교 5학년인 마리아 씨의 아들은 지난 한 달 동안 화상 수업 시간에 12번 이상의 '줌 폭발 사건'을 겪었다.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줌에 나타나 폭언을 쏟아붓는 것을 '줌 폭발'이라고 한다.
마리아 씨의 아들은 이일을 처음 겪었을 땐 낯선 사람 3명이 갑자기 줌에 나타나 학생들의 이름을 대며 욕을 했고 소리도 쳤다고 말했다. 이때 교사는 너무 충격을 받아 실수로 아이들을 침입자와 남겨둔 채 줌 미팅을 떠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리아 씨의 아들은 화상 수업 때 갑자기 포르노 비디오가 화면에 나타났고 나체 남성이 자위하는 모습까지 줌에 떴다고 전했다.
안드레이 다스프루타스 교장은 학생 중 한 명이 가해자들과 화상 교실의 비밀번호를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화상 수업 시간에 이런 일이 매우 흔해졌다며 총 15건 정도로 집계했다. 교장은 이중 몇 건을 사이버 경찰에 보고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터져도 학부모 중 일부는 경찰 조사에 관여하지 않고 싶어한다고 마리아는 덧붙였다.
더 안전한 인터넷 공간을 위해
마리아 씨의 아들과 그의 급우들은 매우 심각한 범죄 행위인 '외설 노출'을 겪었다. 하지만 이 사례는 형사 사건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앞에서 서술한 일로나의 사례도 법적 처벌의 길은 묘연해졌다.
온라인에서 아동 포르노 영상을 보고 이를 배포하기 위해 아동을 '그루밍' 하는 행위는 올해 2월에나 불법이 됐다. 즉 일로나가 이 일을 겪은 당시엔 관련 법이 없어 엄밀히 말해 형사상 범죄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게 일로나 어머니의 설명이다.
"아이의 전화번호를 바꾸고 모든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외출하거나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죠. 이런 일이 아이의 미래 인간관계와 사람들과의 신뢰 형성에 영향을 줄까 걱정입니다."
온라인 매체의 특성상 학대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무한정 유통될 수 있다. 그 결과 피해자는 심각한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고 아동 치료사 올레나 굴라나 박사는 지적한다.
"피해자들은 수면 장애, 공황 발작,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책임 소재는 어디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와 같은 주요 SNS 회사들은 미성년자들이 앱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악성 콘텐츠나 이를 생산 및 유통하는 사용자를 찾아내 계정을 삭제하는 검색 장치를 구축했다.
하지만 아동보호 단체들은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악성 자료가 업로드되고 공유되는 것을 초반부터 막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가장 큰 논쟁은 나이 검증에 관한 것이다. 대다수 SNS의 가입 연령은 13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법적으로 13세 이하의 사용자에 대한 개인정보 수집 및 배포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어린이구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6세에서 11세 사이 어린이 중 3분의 1이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계정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가입 시 가짜 출생연도를 기입하거나 어른에게 계정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아이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으로 관측된다.
온라인은 아이들이 친구와 소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 활동과 관련한 불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도 곁에 있어야 한다.
보호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소셜 미디어에서 어떤 게임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물어 관심을 표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떤 사진을 보고 공유했는지를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호자가 청소년들의 온라인 활동에 가지는 진정한 관심과 신뢰만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열쇠가 될 것 이다.
삽화: 올레스야 볼코바/게티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