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전 세계를 휩쓴 고유가 항의 시위

사진 출처, Getty Images
- 기자, 에프렘 게브레브, 토마스 나아디, 랑가 사일랄, 베키 데일
- 기자, BBC News
전 세계적으로 생활비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거리로 나와 항의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작년 1월 이후 고유가 관련 시위가 발생한 장소를 지도에 표시한 결과 올해 특히 시위가 많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에너지 가격은 여행, 물품 운송, 전기 및 난방 등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연료비 인하 등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그런데 평화로운 시위는 결국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시위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
연료를 둘러싼 갈등
아프리카 북서부 시에라리온에 살던 16살 소녀 카디자 바는 어느 날 집 현관에 서 있다 총에 맞았다.
카디자의 집은 수도 프리타운 동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선 항의 시위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8월 10일 시위는 결국 폭력 사태로 번졌다. 그렇게 무장 경찰이 시위대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총알이 카디자에게 날아들었다.
카디자는 그대로 쓰러진 뒤 거의 바로 사망했다.
어머니 마리아 세세이는 여전히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카디자의 꿈은 간호사였다.

마리아는 "너무 슬프다"면서 "딸을 잘 키우려고 지금껏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딸은 죽고 없다. 고통이 너무 크다"고 털어놓았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시에라리온에선 이 같은 폭력 사태가 좀처럼 드물었다. 그러나 연료 가격이 기록적으로 치솟으면서 폭력 사태에 불을 붙였다.
지난 8월 프리타운에서 발생한 이 유혈 충돌로 경찰관 5명을 포함해 총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올해 3월 이후 시에라리온에선 연료 가격이 리터당 1만2000리온(약 1100원)에서 7월 리터당 2만2000리온으로 거의 2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달 7월 시에라리온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으로 곤두박질친 자국 통화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화폐 디노미네이션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신 1리온은 구 1000리온의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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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국이 도시 전역에 통행금지령을 선포하면서 폭력 사태는 진정됐다. 또 다른 집회를 조직하는 등 시위대의 소통을 막기 위해 인터넷 사용도 통제됐다.
한편 이번 시위에 대해 줄리어스 마다 워니 비오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행정부를 전복하려는 폭력적인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치솟는 식량 및 연료 가격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한편 이렇듯 물가 상승 및 이로 인한 시위로 혼란스러운 건 시에라리온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유가 위기
BBC는 '무력 분쟁 위치 및 사건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Acled)'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 세계 시위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올해 1~9월 기준으로 무려 90여 개 국에서 연료 가격인상과 연료 부족에 항의한 시위가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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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작년엔 연료 가격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국가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일례로 스페인에선 작년에 관련 시위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올해 3월에 일어난 시위만 335건이었다.
이렇듯 남극을 제외하면 지난 9개월간 모든 대륙에서 고유가 관련 시위가 발생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작년 기준 19건에 불과했던 고유가 항의 시위가 올해 현재까지 600여 건 발생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작년 단 2건에 불과했던 시위가 올해 8월을 기준으로 200건이 넘었으며, 에콰도르에선 올해 6월에만 무려 시위가 1000건 이상 발생했다.
이에 대해 안보 및 정보 기관인 '드래곤플라이'의 헨리 윌킨슨 최고 정보 책임자(CIO)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보통 시위가 잘 조직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는 윌킨슨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각 국가에 끼친 영향은 매우 상이하다. 이 전쟁이 해결된다면 글로벌 위기 해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유가 사태의 원인
한편 단순히 우크라이나 전쟁만을 전 세계적인 고유가 사태의 원인으로 볼 순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많은 기업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에너지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팬데믹 초기 원유 가격은 하락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뉴노멀'로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에너지 수요는 다시 증가했고, 공급자들은 수요의 회복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물가가 올랐다.
현재 미국 달러는 영국 파운드, 유럽연합(EU)의 유로,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와 같은 다른 주요 통화보다도 훨씬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원유 시장에선 미국 달러가 사용된다. 따라서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한 지역에선 연료를 비싸게 들여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러-우 전쟁으로 많은 국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면서 다른 생산국의 석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즉 석윳값이 더 치솟게 된 것이다.
경제적 붕괴에서 정치적 붕괴로
고유가로 인한 시위로 어지러웠던 92개국 중 대표적으로 스리랑카는 올해 초 전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확산하는 시위를 이기지 못한 행정부가 항복하며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축출됐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스리랑카에서는 연료, 식량, 의약품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면서 국민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수도 콜롬보에서도 상류층이 모여 사는 교외 지역인 탈라와투고다에서 채소 노점을 운영하는 위말라 디시나야카(48)는 요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든 물건이 매우 비싸졌다"는 디시나야카는 "생활비가 치솟고 있지만 수입은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자녀가 셋인데 버스 요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아이 하나가 학교에 가는데 100스리랑카루피(약 390원)이나 듭니다. 세 자녀가 매일 등□하교 하는데만 600루피가 드는 셈이죠."
또한 디시나야카는 보통 소형 트럭을 몰고 시장에 가서 내다 팔 채소를 구입하는데, 이 트럭에 휘발유를 가득 채울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다른 업자들과 함께 차량을 공유해서 다닌다고 했다.
"(채소) 가격도 너무 올라서 고객들이 그렇게 많이 사 가지 않습니다. 보통 500g이나 1kg 정도 사가던 손님들도 이젠 100g이나 250g만 달라고 합니다. 게다가 자가용 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손님들도 이젠 걸어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보이지 않는 고통의 끝
전 세계 정부가 자국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
BBC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개월간 고유가 항의 시위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80여 명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시에라리온뿐만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기니, 아이티, 카자흐스탄, 파나마, 페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편 프리타운의 거리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시위로 문을 닫았던 가게들도 다시 정상적으로 영업 중이다.
그러나 카디자 가족의 삶은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카디자의 아버지인 압둘은 "딸은 정말 장래가 밝던 아이였다"면서 "이제 그 딸은 죽고 없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