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청소에 커피 심부름'... 직장 내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

벽에 기대 지친 여성 근로자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여성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승진이나 커리어와 상관없는 업무 지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기 때문에 동료들이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을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직장에서의 역할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아르헨티나의 30대 여성 마리아는 자신이 "때론 엄마나 쓸모없는 아내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가명을 사용해달라는 마리아는 10대부터 일을 시작했고,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정치인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구인 공고에는 "사무 관리, 일정 관리, 전화 응대 업무" 등을 한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커피 만들기, 음식을 데워서 상사에게 가져다주기, 다 쓴 컵과 접시 설거지하기 등을 하며 지금까지도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마리아의 설명이다.

직급은 올라갔지만 여전히 이러한 일과가 반복되는 것이다.

마리아는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심지어 상사가 아내 생일인데 너무 바쁘다면서 내게 꽃을 대신 사 와 달라고 부탁까지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마리아만 겪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마리아의 뒷 모습 사진
사진 설명, 마리아는 직장에서 커피 만들기, 음식 데워서 가져다주기, 다 쓴 컵과 접시 설거지 등을 한다

예를 들어 작가이자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대학 경제학 교수인 리즈 베스털런드에 따르면 미국의 여성들은 직장에서 승진이나 커리어 발전과 상관없는 업무를 하라는 지시를 들을 가능성이 남성보다 2배 더 크다고 한다.

또한 세계은행(WB)이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 세계 노동력의 약 39%가 여성이지만, 고위직까지 승진하는 여성의 수는 아주 적다고 한다. (포브스지 또한 작년 기준 전 세계 500대 기업의 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무실 집안일' 즉, 승진과 관련 없는 성차별적 업무 지시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여기 전 세계 다양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럴 순 없습니다' - 사무실 청소 거부하기

나이지리아 출신의 라파트 살라미

사진 출처, Rafat Salami

나이지리아 출신의 라파트 살라미는 이러한 업무가 여성들에게 모멸감과 굴욕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입 기자로 처음 입사했을 때, 전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먼지를 털고 청소하라는 업무를 먼저 주더군요."

살라미는 현재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국영 방송사 '보이스 오브 나이지리아'의 진행자로 근무한다.

정부 기관에서 일하기 전엔 여러 민영 방송사에서 근무했는데, 이곳에선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라고 지시받았다고 한다.

당시 살라미는 다른 동료 1명과 함께 사무실에서 가장 어린 여성 기자였다. 이들에겐 사무실을 깔끔히 정돈하라는 업무가 내려졌다.

"출근 전 집을 깨끗이 정돈하고 사무실에 나왔더니, 가장 먼저 주어진 업무가 뭐였는지 아세요? 바로 사무실을 정돈하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살라미는 상사에게 청소부를 고용하라고 맞받아쳤다.

"저는 '그럴 순 없어. 난 절대 사무실을 정돈하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라며 혼잣말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항했습니다. 상사는 제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살라미의 이러한 대답에 동료들도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살라미는 직장을 그만뒀다.

"여자가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거만하다면서 그래서 결혼을 못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살라미는 "집에서 여성은 남편과 자녀들을 돌본다. 그리고 출근했더니 남성 동료들을 돌보라는 요구도 받는다. 그러나 여성은 너무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이런 요구를 수용하고 만다"고 설명했다.

살라미는 어떤 사회에선 이렇게 "성별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일"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그렇기에 자신도 종종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이러한 요구를 들었을 때 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살라미의 설명이다. 그리고 실제로 살라미는 이를 실천하고 있다.

"저는 강한 성격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제 의견도 중요해요. 제 의견을 들어줘야 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커피 심부름

차를 타는 여성

사진 출처, BBC

사진 설명, 미국의 여성들은 직장에서 승진이나 커리어 발전과 상관없는 업무를 하라는 지시를 들을 가능성이 남성보다 2배 더 크다고 한다

일본에 사는 나나 와타라이는 살라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와타라이는 "어머니는 대형 식품 회사의 사무실에서 근무하셨다. 업무 시간 동안 남성 직원은 여성 직원에게 차나 커피를 타오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그게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사무실 내 직원들 모두 개인 머그잔이 있었고, 여성 직원들은 원래 업무 외에도 어떤 컵이 누구 것인지 기억해 이들에게 차나 커피를 내오는 일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와 다른 여직원들은 아침에 교대로 차와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일과를 이렇게 시작한 거죠."

나나 와타라이(오른쪽)와 어머니

사진 출처, Nana Watarai

사진 설명, 나나 와타라이(오른쪽)는 이전 세대에 비해 직장 내 남녀 평등이 분명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선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머니의 경험을 들은 와타라이는 자신은 고위직으로 승진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그러나 약 30년 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와타라이는 여성 직원들은 "부수적인 역할"로 밀려나 있다고 느꼈다.

"세일즈, 경영, 마케팅 등 중요한 일은 모두 남성 직원 차지였습니다. 여성들은 사무 보조원 등 후선 지원 업무나 부차적인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이사나 임원 중 여성이 있는 기업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와타라이는 직장을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이벤트 코디네이터와 통역사로 일하게 된 와타라이는 커리어에 집중하기 위해 가정을 꾸리길 단념했다고 했다.

와타라이는 어머니 시대에 비해선 상황이 나아졌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여전히 개선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1986년 '평등 고용 기회법'이 통과되면서 직업훈련, 복리후생, 퇴직 및 해고에서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하지 못하게 됐다. 채용, 직무 배정, 승진에 있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와타라이는 일본의 직장 문화에 계속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다음 세대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꾸리기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남녀 간 격차를 줄이는 100년이상 걸릴 것'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번 7월 새롭게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현재 속도라면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까지 132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이번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인 물가 위기는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성 격차 해소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베스털런드 교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사무실 집안일'을 맡게 된다면 성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베스털런드 교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사무실 집안일'을 맡게 된다면 성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성평등 수준을 한 세대 뒤로 후퇴하게 했으며, 남아시아에서는 성 격차가 가장 심각해 약 2세기는 지나야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했다.

한편 베스털런드 교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사무실 집안일'을 맡게 된다면 성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스털런드 교수는 동료 3명과 함께 'No 라고 말하기: 여성에게만 장래성 없는 일이 주어지는 현실 끝내기(The No Club: Putting a Stop to Women's Dead-End Work)'라는 책을 썼다.

아울러 베스털런드 교수는 "이렇게 승진과 관련 없는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나 번아웃, 기진맥진함을 훨씬 더 많이 겪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닌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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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집안일'의 예

아래 여성들은 BBC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왔다.

이디스 / 멕시코

"부서장이 제게 면허 갱신 예약을 잡아달라고 하기에 인사팀에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3주 뒤 제게 돌아온 건 해고 통지였습니다. 회사는 저보고 상사의 권위를 존중하고 팀원으로서 일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브리엘라 / 아르헨티나

"많은 로펌의 비서들은 커피를 타오거나 점심을 사 오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회의실을 정리하는 등 행정 업무와는 크게 동떨어진 일을 턱없이 낮은 급여를 받으며 하고 있습니다."

실비아(가명) / 칠레

"저는 다국적 대형 음료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매니저가 나눠 먹으라고 케이크를 사 왔습니다. 당시 남녀 비율은 약 4:1 정도로 남성 직원이 훨씬 많았음에도 매니저가 제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케이크를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더군요. 저는 얼어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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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잘하는 방법

리즈 베스털런드 교수

사진 출처, Lise Vesterlund

사진 설명, '노! 라고 말하기: 여성에게만 장래성 없는 일이 주어지는 현실 끝내기'를 공동 집필한 리즈 베스털런드 교수

한편 마리아는 상사를 위해 너무나 많은 '사무실 집안일'을 떠맡고 있다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상사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지금은 마치 부녀 관계 같다. 정중하게 거절할 수도 있지만, 한 번도 거절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도 제가 지금 하는 일에 비해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 또한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고 종종 자문하거든요."

한편 베스털런드 교수 또한 '아니'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며 여성들에게 협상을 조언했다.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그냥 '알겠다'고 말하는 대신 '할게요. 하지만 이 일을 하게 되면 신제품 출시와 관련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거죠."

"비즈니스 자체와 관련된 일을 언급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결국 조직 자체에 해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거든요."

이렇듯 베스털런드 교수는 기업 관리자들이 이러한 추가 업무 지시가 실제 본연의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달아야만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박사 학위를 이수하고 있는 마리아는 곧 지금 하는 비서 일을 그만둘 계획이다. 또한 다음번에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부당한 업무 지시에 'No'라고 말할 것이라 맹세했다.

한편 살라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특정 사회에선 여성들에게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맞받아치고 'No'라고 말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면서 자기 경험을 예시로 들었다.

"저는 회의에서 유일한 여성이었고, 가장 경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보고 회의록을 작성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일을 할 비서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네, 비서를 채용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