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민간인 처형장으로 변해버린 부차의 어린이 캠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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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라 레인스포드
    • 기자, BBC News, 부차

지난 3월 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물러난 이후, 키이우 인근 지역 부차에서는 민간인 시신이 1000구 이상 발견됐다. 대부분 얕게 파인 임시 무덤 속에 매장돼 있었다.

BBC 사라 레인스포드 특파원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벌인 곳으로 추정되는, 부차의 한 어린이 여름 캠프장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했다.

이 기사에는 살해 묘사 등 보기 다소 불편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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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든 곳에선 언뜻 살인 현장을 놓치기 쉽다.

그러나 부차 내 숲의 가장자리, 한 건물의 춥고 축축한 지하실에선 우크라이나 남성 5명이 강제로 무릎을 꿇은 채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쟁 전 시민들의 휴가지로 사랑받던 숲이다.

지하실 입구 오른쪽에는 검붉게 변한 피로 덮인 돌들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에는 한쪽엔 총알이 관통한 흔적이 있는, 가장자리가 피에 젖은 푸른색 모직 모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벽에는 총알구멍 적어도 12개가 나 있다.

지하실을 조사한 법의학팀이 남긴 증거 표식
사진 설명, 지하실을 조사한 법의학팀이 남긴 증거 표식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빈 소고기죽 캔과 빈 크래커 한 봉지 등 러시아군에 배급된 전투 식량 팩이 발견됐다.

벽에 남겨진 그림과 글자만이 이곳이 원래는 어린이 캠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지난 3월 수도 근처 부차로 진격하면서 이곳 '래디언트 어린이 캠프장'은 처형장으로 변해버렸다.

여름 캠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듣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을 주지만 세부 사항을 알고 나면 더욱 그렇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한 달간 부차 지역에서만 민간인 1000여 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파편이나 포격으로 사망한 게 아니었다. 650명이 넘는 민간인은 러시아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리고 이제 우크라이나 당국은 살인자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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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보이첸코(34)는 부차와 도로 하나를 마주하고 있는 인근 마을 호스토멜에 살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러시아군이 처음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착륙해 점령했던 공항이 위치한 지역이다.

보이첸코의 누이 알료나 미키티우크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 함께 도망치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군인도 아니었던 보이첸코는 남아서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러시아군이 끊임없이 퍼붓는 포격과 공습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아이들 등 이웃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식량과 물을 구하기 위해 며칠간 호스토멜을 돌아다녔다.

수다 떨기를 좋아하며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던 보이첸코는 자주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

누이 미키티우크는 늘 그의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보이첸코가 전화 신호를 잡기 위해선 지대가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며, 포격이 심해지는 날에는 방공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자가 떨어지자 미키티우크는 보이첸코에게 탈출하라고 애원했지만, 이미 그때는 도로가 모두 막힌 상태였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녔던 보이첸코

사진 출처, Boichenko family

사진 설명,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녔던 보이첸코

그리고 지난 3월 8일을 끝으로 보이첸코에게선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보이첸코는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연락이 끊긴 그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누이를 위로했다고 한다.

미키티우크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이첸코가 '정말 사랑한다'라고 하는데 가슴이 찢어졌다.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나흘 후 보이첸코는 인근 프로메니스티의 래디언트 캠프장에서 이웃들에게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됐다.

3월 키이우 주변 지역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혼란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부차의 작은 마을이 있었다.

4월 초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퇴각하며 남긴 흔적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총살당한 주민들이 길거리에 시신으로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당국은 이러한 모습은 모두 조작된 것이며, 자신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주장은 모두 명백한 허위이며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수사 당국은 책임자를 찾기 위해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한 때 러시아 손에 넘어갔으나 다시 탈환한 지역에서 벌어진 범죄 사실을 확실히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안드리 네비토프 키이우 지방경찰서장은 "푸틴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푸틴이 폭탄을 투하해 모든 증거를 파괴할 상황에 대비해 가능한 한 신속히 일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수집한 증거 중에는 총탄 구멍이 빼곡한 민간인들의 차량으로 가득 찬 도로도 있었다. 현재 이러한 차량은 부차 외곽 지역으로 옮겨졌다.

차를 운전해 떠나려고 했던 가족 단위의 민간인들에게 총탄이 쏟아진 것이다. 한 차량의 창문에는 여전히 흰색 천이 나부끼고 있었다. 자신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민간인들이 내건 표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음습한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민간인들이 자신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내건 흰색 천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사진 설명, 민간인들이 자신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내건 흰색 천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지난 4월 4일 래디언트 캠프장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신 중에는 보이첸코도 있었다. 미키티우크는 몇 주간 지역 병원과 시신안치소에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다.

신원 확인용 사진을 받던 날, 사진이 채 다운로드되기도 전에 이미 보이첸코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미키티우크는 울면서 가족을 살해한 범인에 대해 "세포 하나하나의 힘을 다해 그들을 증오한다"라고 외쳤다.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선 안 되지만,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시신에는 구타당한 듯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보이첸코의 누이 미키티우크와 사촌 일로나
사진 설명, 보이첸코의 누이 미키티우크와 사촌 일로나

이들 5명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상태로 발견됐다.

네비토프 경찰서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고문당했다"라면서 "러시아 군인들은 선을 넘었다. 군인과 싸우지 않고 민간인을 납치하고 고문했다"라고 일갈했다.

우크라이나 검찰 및 보안국(SBU) 모두 현재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지만, 일부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제대로 감추지 않은 덕에 추적할 만한 단서가 상당수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은 러시아군이 주둔하던 지역에서 군인 명단을 발견하기도 했다. 쓰레기 처리 당번표로 보이는 문서도 있었으며, 군인들의 여권 및 휴대전화 번호 정보가 담긴 자료도 있었다.

안드리 네비토프 경찰서장은 증거 수집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사진 설명, 안드리 네비토프 경찰서장은 증거 수집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등록된 잠재적 전쟁 범죄 건수가 11000건 이상에 이를 만큼 자료가 방대해지자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은 민간인 디지털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중 한 명으로, 전쟁 전 우크라이나 사법기관의 부패를 폭로하는 일을 했던 드미트로 래플리안추크 기자는 "의무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제 그는 검사와 합심해 전범 용의자를 잡기 위한 추가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이 작업이 매우 힘들며 해결되지 않을 사건도 많으리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이 몇 주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는 게 중요하다"라는 게 래플리안추크의 설명이다.

취재진은 래디언트 캠프장에 버려진 쓰레기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잠재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크슈카'라는 이름의 여성이 한 러시아 군인에게 보낸 소포의 포장지로, 이 러시아 군인의 이름과 부대명이 명백히 표시돼있었다.

러시아 6720 부대는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룹촙스크에 기반을 둔 부대로, 이전에도 해당 부대 소속 군인들이 부차의 민간인들로부터 약탈한 물품으로 가득 채운 거대한 택배 꾸러미를 자기 가족들에게 부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된 바 있다.

러시아 군인에게 보낸 소포의 포장지
사진 설명, 러시아 군인에게 보낸 소포의 포장지

아직 룹촙스크 출신의 해당 군인들이 이곳 어린이 캠프에 주둔했는지, 민간인들이 살해당했던 당시 현장에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우선 사망 추정 시간을 더 정확히 좁힐 필요가 있다.

네비토프 경찰서장은 "사망 추정 시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라면서 "그러나 해당 캠프장은 본부로 사용됐기에 사령관이 있었을 것이다. 사령관 몰래 군인들이 누군가를 처형하진 못한다. 그래서 우두머리를 먼저 찾은 다음 실제 총살을 실행한 범인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캠프장 길 건너편의, 파편으로 얼룩진 교회 뒤편 한 귀퉁이에선 다시 삶을 일구어 가는 시민들의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들판 옆으로는 끝없는 포격으로 망가진 창문에 나무판자를 고정하는 남성이 보였다. 또한 다시 장사를 시작한 작은 가게도 보였다. 다른 상점들도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려는 모습이었다.

부차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매장지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사진 설명, 부차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매장지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한편 이웃 주민들은 길을 건너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러시아 탱크가 마을에 밀고 들어왔다. 러시아 군인들은 길거리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총을 쐈으며, 술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거나 가정집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던 이들도 있었다.

또한 맞은편 어린이 캠프장에서 아파트로 탈출한 한 남성을 기억한다고 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주민들은 이 남성을 숨겨줬다.

빅터 시트니츠키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사건 이전에는 래디언트 캠프장을 몰랐지만 시트니츠키가 말한 모든 세부 사항은 사실과 일치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서부에 머물고 있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속상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 차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트니츠키가 거리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붙잡힌 것은 3월 초였다. 군인들은 그의 손을 묶고 모자를 눈 위까지 끌어내려버린 다음, 지하실로 끌고 갔다. 시트니츠키는 그 지하실이 어린이 캠프 내라고 확신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담은 래디언트 캠프장의 모자이크 벽면 장식. 이제는 전쟁 범죄 현장이 돼버린 곳이다
사진 설명, 아이들이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담은 래디언트 캠프장의 모자이크 벽면 장식. 이제는 전쟁 범죄 현장이 돼버린 곳이다

그곳에서 러시아인들은 그의 다리에 물을 부었다. 다리가 얼어버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후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고 한다.

시트니츠키는 "러시아 군인들이 계속 '파시스트들은 어디 있나. 군부대는 어디 있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디 있나'라고 물었다. 그중 한 명이 푸틴을 언급하자 내가 반감을 표했다. 그러자 나를 구타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시트니츠키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겁에 질려 있었다. 과거에 시베리아 출신 사람들과 모스크바에서 함께 일한 적도 있는 자신을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잔인하게 대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러시아 병사 중 한 명이 시베리아 출신임을 밝히자 더욱 소름 돋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트니츠키가 그 시베리아 출신 병사에게 "일이 이렇게 돼 슬프다"라고 말하자, "우리 할아버지들은 나치에 맞서 함께 싸웠는데 이제 당신들은 파시스트가 됐다는 사실이 슬프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병사는 시트니츠키에게 "아침까지 당신이 본 것을 기억해라. 그렇지 않으면 총살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시트니츠키는 운이 좋았다. 포격이 쏟아지던 날 밤, 군인들이 더 이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시트니츠키는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지하실에 계속 있는 것보다 포격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가는 게 더 생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제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으니까요. 계속 머물렀다면 아마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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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캠프장 밑에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묻혀있던 보이첸코의 시신은 이제 부차의 오래된 공동묘지에 안치됐다. 벚나무 곁이다.

장례식 후 미키티우크는 꿈속에서 보이첸코를 만났는데, 마치 누이를 위로하는 듯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보이첸코의 시신은 이제 부차의 오래된 공동묘지에 제대로 안치됐다.

하지만 미키티우크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았다. 보이첸코의 십자가 비석에는 출생일자만 표시돼있다. 가족들은 정확히 언제 그가 죽었는지 알 수 없기에 사망일자를 적을 수 없었다.

래디언트 캠프장을 점령한 러시아군 사령관을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차의 모든 시민들처럼, 보이첸코의 유가족들은 민간인들이 단순히 이 전쟁에 '휘말린' 것이 아니라 '표적이 됐다'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전쟁의 규칙을 모르거나, 알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서 말이다.

별도 표기가 없는 사진 출처: 사라 레인스포드 BBC 기자

추가 보도: 다리아 시피그나, 마리아나 매트베이초크, 토니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