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중 할아버지의 손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사랑을 키워나간 필자의 조부모님의 연애 과정이 이 편지들 속에 모두 담겨있다
사진 설명, 2차 세계대전 중 사랑을 키워나간 필자의 조부모님의 연애 과정이 이 편지들 속에 모두 담겨있다
    • 기자, 멜리사 베니건
    • 기자, BBC Travel

손 편지가 암울한 소식들, 무서운 통계치, 그리고 가짜 뉴스들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새 살을 돋게 하는 연고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자기야 아침 식사 전에 집으로 돌아갈게요 사랑해요 진"

2차 세계대전 중 생이별을 해야 했던 수많은 연인들처럼, 미국인인 나의 조부모도 처음 연애를 시작한 1944년 초부터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워나갔다.

할머니가 보낸 편지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할머니는 2005년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편지들을 간직하고 계셨다. 그 편지들을 상속받은 내 사촌 브룩이 거의 10년 동안 그 편지들을 박스 안에 보관해왔는데, 2014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엄마 편에 그 편지들이 브루클린에 있는 나에게 전달되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편지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거쳐 바다 건너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집안의 가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처음 이 편지들을 읽었을 때 나는 울어버렸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병마와 사고로 친구들과 가족들을 잃었고, 나 역시 폐렴과 패혈증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는 일을 겪었다. 이후 요양 생활을 하던 중에 나는 이 편지들을 찬찬히 읽어보게 됐다. 전쟁의 먹구름이 짓게 내려앉은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두툼한 편지들은 유머러스한 일화들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편지의 내용들은 내 상처 입은 영혼의 연고가 되어주었고, 그의 아름다운 손글씨를 보고 있자니 그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편지를 처음 읽어본 지 5년, 난 다시 집에 묶여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통제를 위한 자택 격리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격리 첫 주, 나는 뉴스와 소셜 미디어 피드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는 이 바이러스가 "고속 열차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경고했고, 몇몇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산소 호흡기에 의존 중이라거나 또는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친 현실과 무시무시한 수치들 그리고 가짜 뉴스들의 끝없는 맹공에 곧 지쳤버렸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치솟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꺼내들었다.

"소셜 미디어는 '양날의 검'입니다" 심리 치료사인 로베르타 보든 윌슨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깥세상과의 연결 고리인 한편 아주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포스트들을 걸러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부정적인 소식들은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내보내어 혈압을 상승시키고, 불안과 우울감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약물 남용이나 중독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메리와 유진(진) 베니건 부부는 1945년 8월 29일 결혼식을 올렸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사진 출처, Melissa Banigan

사진 설명, 메리와 유진(진) 베니건 부부는 1945년 8월 29일 결혼식을 올렸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우리가 가장 건강하고 강해야 할 때, 이런 스트레스들은 우리의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쳐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게 만듭니다"라고 보든 윌슨은 경고했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할 때는 혈압이 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자니 불안함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1945년 프랑스 조이니에서 22살이던 할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이 구절은 세상을 녹일 만큼 달달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메리야. 침상에 누워 창밖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와 그 평야를 가로지르는 강과 수로들을 바라보고 있어. 바로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들이 치러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기 그지없어. 들판은 푸르고 이곳을 둘러싼 숲의 나무들은 높고 단단해. 노을이 질 때가 되면 청명한 푸른 하늘을 해가 붉게 물들여. 수로 가의 이 작은 오솔길은 연인들을 위해 만들어졌어, 너와 나 같은 사람들 말이야"

나는 보든 윌슨에게 내가 할아버지의 글들을 읽어나갈 때 느낀 평안함에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정말로 소셜 미디어 포스트를 쓰는 것과 편지를 읽고 쓰는 것에 어떤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집안의 가보가 된 이 편지들에는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사진 출처, Melissa Banigan

사진 설명, 집안의 가보가 된 이 편지들에는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할아버지는 미군 소속 낙하산 부대 병장이었다. 부대원들은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 전역으로 전출되어 나갔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다시 첫사랑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그가 보낸 편지들에는 젊은이의 풋풋한 이상과 사랑에 빠진 사람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흘러넘친다: "너에 대한 사람으로 난 어쩔 줄을 모르겠어. 너와 미래를 그리고 싶어. 내 꿈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너에게 내 아내가 되어달라고 말할 거야"

이런 전쟁 중 편지들은 2차대전 중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나는 1차 세계대전 끝자락,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베르됭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관련된 유품과 자료를 전시하는 있는 베르됭 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다. 한때 전쟁터였던 한적한 시골의 기념관에는 당시 총들과, 군복, 그리고 야전포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나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병사들이 가슴 부근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던 소지품들과 참호 안에서도 잊히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들이었다.

나는 베르됭 기념관의 교육 자료 관리자인 니콜라스 주바크에게서 이 편지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출신 배경과 지역을 떠나서 "모든 장병들과 그 가족들은 똑같이 전쟁의 참상을 마주해야 했지만 낙천성,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유머가 이 글들에 담겨있다"라고 주바크는 말했다.

편지는 병사들이 자신들의 손이 "사람을 죽이는"것 말고 다른 것에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었고, 그게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다. 주바크의 말을 빌리자면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주바크는 전쟁 중에 쓰인 이 서신들이 우리에게 인내에 대한 교훈을 주고 최악의 상황들을 견뎌내는데 필요한 자신감과 희망을 전해준다고 믿는다. 주바크는 이어"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협을 마주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1,2차 세계대전 중 겪은 시련들을 염두에 두고 현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고 말했다.

1976년 아기였던 필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부모님 (출처: 멜리사 베니건)

사진 출처, Melissa Banigan

사진 설명, 1976년 아기였던 필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부모님 (출처: 멜리사 베니건)

주바크는 편지를 쓰는 행위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을 다듬어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한 걸음 떨어져서 현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죠, 순간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가짜 뉴스나 공포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죠"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다시 읽으면서, 소셜 미디어로 충족될 수 없었던 것들이 분명해졌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남아있지만, 그의 편지들에는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너그러운 사람인지가 드러나 있다. 그는 최고가 되려고 하기보단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작가들이 글을 잘 쓰는 비법으로 언급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줄 것"을 잘 지켰다.

할아버지는 미래의 부인에게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을 전해주었다. 그가 본 노을을, 수로의 풍경을, 드넓은 들판을, 푸른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을 할머니도 그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가 묘사한 풍경들은 마치 손에 잡힐 듯, 이제 막 터질 듯한 꽃봉오리와 같은 생동감으로 할머니의 눈앞에 펼쳐졌다.

미군 보병이었던 역사학자 폴 퍼셀은 2차 대전 중 쓰인 편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편지들은 엄청난 위안을 주었어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만약 편지가 없었다면 우린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대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였으니까요. 언제 어디서든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은 즐거움 그 자체였어요"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읽고 나도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의 편지들처럼 내 편지에도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내 지식을 뽐내는 내용 같은 건 일절 넣지 않았다. 단순히 전 인류가 함께 겪고 있는 이 어두운 시기에 내 가족들, 친구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수단, 또 디지털 소통 방식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편지 쓰기는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 안에서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사진 출처, Picasa

사진 설명, 편지 쓰기는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 안에서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출처: 멜리사 베니건)

이러한 어려운 시기들로부터 미래 세대가 배웠으면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부 의사와 정치인들은 이 사태를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 비유하고 있다. 나는 조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번 보건 위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생각했다.

조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인지, 그분들이었다면 아마도 이제 막 싹을 틔운 사랑에 대해 서로 속삭이고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사랑이 주는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것에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나는 미래 세대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남 탓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서로를 지탱하고 북돋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내 손 편지들은 질병과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야기들, 저녁 찬거리와 창밖에 보이는 눈부신 세상에 대한 묘사들로 채워졌다. 나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는 날, 전쟁 끝자락에 우리 할아버지가 보낸 전보처럼 "자기야, 아침 식사 전에 집에 돌아와"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 아침 엄마와 새아빠에게 쓴 편지로 만족할 수밖에: "엄마, 알렌, 창문 밖 내로스 해협을 가로질러 스태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베라짜노 다리를 봤어요. 이 편지도 마치 엄마가 있는 로드아일랜드의 거실과 내 작은 아파트 사이의 공간을 연결해 주는 다리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