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 지구 공격 … 민간인 노렸나

- 기자, 루시 윌리엄슨
- 기자, BBC News, 서안지구 알-슈하다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내 주민들이 이스라엘이 무장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이스라엘군에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겨냥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남성 7명 중 4명은 형제 관계였다. 이들은 제닌에서 10km 떨어진 알-슈하다 지역 내 어느 도로 옆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있다 숨졌다.
BBC는 당시 근처에 있던 목격자,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 및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 모두 숨진 남성들은 무장단체의 일원이 아니며, 당시 해당 지역에선 이스라엘군과 그 어떠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날 아침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 칼리드 알-아흐마드는 이 남성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소속의 알-아흐마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명은 심지어 슬리퍼에 잠옷 차림이었다”면서 “만약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제대로 된 신발이라도 신고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편 이스라엘방위군(IDF)은 해당 공습을 이로부터 사건 몇 시간 전 여군 한 명이 살해된 제닌 난민촌 내 군사 작전과 연관 지었다.

사건 이후 IDF는 “공군기가 해당 지역에서 작전 중인 군을 향해 폭발물을 던진 테러리스트 일당을 맞춘 것”이라는 성명문을 발표했으며, 이번에도 취재진에 해당 성명문의 내용을 들려줬다.
IDF가 촬영한 영상 및 인근 CCTV에 담긴 영상에선 알-슈하다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 현지 팔레스타인인들과 대치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알라, 하자, 아흐마드, 라미 다르웨시는 22~29세 사이 청년들로, 또다른 형제자매 5명과 어머니와 함께 몇 년 전 요르단에서 이곳 서안지구로 건너온 팔레스타인 이민자 가족이었다.
이들 형제는 이스라엘 출입 허가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매일 농사일을 위해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허가증은 쉽게 발급되지 않으며, 만약 이스라엘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 혹은 그러한 인물과 연관됐다고 판단할 경우 즉시 취소될 수 있다.
이들 형제 4명과 함께 사망한 남성 3명 또한 다르웨시가의 친척이었다.
BBC는 형제 2명에게 발급된 허가증을 확인했다. 2023년 9월에 발급됐으며, 몇 달간 유효하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에게 국경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제닌에서 20년간 구급대원으로 일한 알-아흐마드는 마치 일상적인 안전 점검처럼 무기 혹은 폭발물로 엉망이 된 현장을 둘러보고 수색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다.
알-아흐마드는 “만약 현장에 무기가 있었다면 그렇다고 말했다”면서 “솔직히 말해서 죽은 이들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총알도, 무기도, 이스라엘군의 존재도 없었다. 그곳에서 저항이 있었다는 그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들은 보통 이스라엘군에 의해 조직원이 사망하면 즉각 이에 대해 밝히곤 하지만, 이들 7명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어떠한 단체도 이들 남성이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위해 “순교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이들의 시신은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단체들의 깃발로 감싸져 있었다. 이스라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시신은 보통 가족이나 친구들이 지지하는 운동의 깃발로 감싸지곤 한다. 심지어 망자가 이러한 운동의 지지자가 아니었을 때도 그렇다.
사망한 다르웨시 형제의 친척과 이웃들은 이들이 무장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날 아침 이들의 시신을 받은 제닌 병원의 위삼 바크르 병원장도 이렇게 주장했다.

바크르 병원장은 “이들은 무장하지도 않았고, 무장대원도 아니었다”면서 “보통 무장대원의 시신이 들어오면 티가 난다. 이 7명은 전혀 아니다. 확신한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어머니 입테삼 아수스는 병원에서 아들들의 시신을 처음 마주했다.
아수스는 “아들 넷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면서 “하나 정도가 순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4명이 모두 죽을진 몰랐다. 아들들이 살해당한 모습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BBC는 이스라엘 군에 왜 이 남성들이 표적이 됐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군 대변인은 자국 군인들이 “이스라엘 시민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면서, 해당 공습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군에 폭발물을 던져 위험에 빠뜨린 테러리스트 조직”을 목표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알-슈하다에서의 이 같은 공습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 경계선 지역에서 복무하던 여군 샤이 저마이(19)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닌 내 난민촌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과 충돌했는데, 저마이가 타고 있던 차량이 폭발물에 맞은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 육군 호송대는 알-슈하다를 통해 제닌에서 철수했다. 그 시각 다르웨시 형제 4명은 친척 3명과 함께 농민들과 근처 새벽 청과물 시장 손님들이 자주 찾는 24시간 카페 근처에 있었다.
IDF가 제공한 야간 시야 장치 드론 영상엔 차량들이 도로를 지나갈 때 폭발이 일어나며 작게 섬광이 번쩍거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열 패턴으로 봐 화염병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영상엔 촬영 날짜나 시간을 보여주는 스탬프가 없었다.
아울러 이스라엘 육군 또한 해당 지역에서의 공습 장면을 담은 비슷한 영상을 공개했으나, 해당 영상 2개는 잘리고 편집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두 영상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 차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취재진은 IDF에 두 사건의 시점을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청했으나, 더 이상의 언급이나 정보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제법상 이러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상황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에 정확한 시점은 중요한 요소다.
‘UN 인권 위원회’ 지난해 말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상황이 “걱정스러우며 긴급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위원회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이스라엘군이 법 집행 활동에서 점점 더 많은 군사 전술과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법 집행 행위는 생명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치명적인 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국제 인권법의 지배 아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수스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군이 동원하는 방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수스는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예전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군다”면서 “예전이라면 이스라엘군은 사람의 다리에 총을 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규모가 커졌다. 저들은 로켓포로 폭탄을 터뜨리고,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UN 통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492명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등 작년은 서안 지구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한 해였다. 사망자 중 300명이 10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숨졌다. 그리고 실탄으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28명으로,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이 중 3명은 10월 하마스 공격 이후 사망했으며, 그중에서도 2명은 군인이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인의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이번 주 초 발생한 공격으로 여성 1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다르웨시 형제들이 사망한 사건 당일 카페에 있던 목격자 2명은 취재진에게 이스라엘 군 호송대가 알-슈하다를 떠난 시간은 새벽 4시~4시 45분경이며, 이는 공습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며, 그전까지 현지인들과 충돌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목격자는 “이스라엘군이 4차례나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면서 “[차량이] 완전히 알-슈하다 지역을 벗어나자 저들은 폭격을 가했다. 몸을 따듯하게 하고자 불 주변에 모여있던 청년들이 이 로켓포에 맞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남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군이 알-슈하다 지역을 떠난 시점과 공습이 발생했던 새벽 5시간엔 1시간 차이가 있다면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있었는데 이 한 시간 사이 많은 이들이 카페를 떠났다고 말했다.

구급대원 알-아흐마드는 이스라엘군이 그날 새벽 제닌 난민촌에서 철수하고 있었다면서 공습이 끝난 뒤 알-슈하다 지역에 호출됐을 땐 “거의 새벽 5시”였다고 주장했다.
제닌 병원장 또한 새벽 5시 15분경 시신이 도착했다고 확인했다.
일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휴대전화에 담긴 영상 등 인근 CCTV 영상엔 공습 시작 30초 전, 차 한 대가 빈 도로를 무사히 지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영상에도 촬영 시간을 보여주는 스탬프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르웨시 형제와 친척들 무리가 모닥불 주변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공습이 이들을 덮친다.
어머니 아수스는 아들들은 일하러 가던 길이었으며, 하자는 제닌 병원에 투석 치료 일정이 있어 그곳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자는 군사 작전으로 길이 막히진 않을까 걱정했기에 이른 아침부터 일찍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병원 신장 투석팀 또한 하자 다르웨시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환자였으며, 그날 오전 7시에도 투석 치료 예약을 잡아뒀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병원 측이 보여준 일정표에서도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습 직후 형제들의 삼촌인 유세프 아수스가 촬영한 영상엔 시신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경험이 풍부한 알-아흐마드는 그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무척이나 절망했다고 회상했다.
유세프는 “조카들은 무기조차 지니고 있지 않던 청년이었다”면서 “만약 무기가 있었다면 내가 봤을 거다. 현장엔 그들이 앉아있던 의자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팔레스타인인이라면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장했다면 표적이 될 것이고, 민간인이어도 마찬가지인 거죠.”
취재진은 이번 기사에서 제기한 모든 혐의를 IDF 측 대변인에게 전달했다. 대변인은 더 이상 덧붙일 내용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편 아수스는 이번 주에 처음으로 아들들이 공격당한 현장을 찾았다. 다른 자녀들이 반대했지만, 아수스는 자신의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차량이 시끄럽게 다니는 와중에 아수스는 땅의 여러 지점을 가리키며 “이곳에 직접 와서 아들들이 어디에 앉아있었는지 상상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라가 저기 있었고, 아흐메드, 라미, 하자가 여기 있었겠죠. 제 아들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지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도움이 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