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첫 세계 최대 원전 재가동

    • 기자, 코 웨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때 모든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이 세계 최대 규모 원자력발전소(원전) 가동을 재개했다.

도쿄 북서쪽에 위치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6호기 재가동 결정은 지역 주민들의 안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려졌다.

가동 일정은 경보 장치 오작동으로 인해 하루 연기됐으며, 상업 운전은 다음 달 시작될 예정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원자력을 일찍부터 도입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관측 사상 최강의 지진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노심 용융 사고를 일으키면서, 일본 내 원자로 54기 모두 가동이 중단됐다. 이는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번 재가동은 일본 원자력 발전 재개 계획의 일환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7호기는 2030년 이전에는 재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5기는 폐로 될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가동이 재개되더라도 과거에 7기 전부가 가동됐을 때의 발전 용량인 8.2GW(기가와트)에는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1년,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후쿠시마 다이이치(제1원전) 원전 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대피해야 했고, 정부가 안전하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주민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비판론자들은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이 사고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고,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대응 역시 체계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독립 정부 보고서는 이 사고를 "인재"라고 규정하며 도쿄전력의 책임을 물었지만, 이후 법원은 도쿄전력 전직 임원 3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불신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여론의 반대로 이어졌고, 일본은 모든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

오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세운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원전 재가동을 추진해 왔다.

2015년 이후 일본은 가동 가능한 원자로 33기 중 15기를 재가동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은 도쿄전력이 소유한 원전 충 처음으로 재가동됐다.

2011년 이전 원자력 발전은 일본 전체 전력의 약 30%를 차지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2030년까지 50%로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발표된 에너지 기본계획에서는 목표가 대폭 낮아져, 2040년까지 원자력이 전력의 20%를 담당하도록 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달성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뜨거운 돌 위에 떨어진 물방울'

국제적으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2050년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일본은 2023년 기준 원자력이 전체 전력의 8.5%를 차지했다.

지난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제조 확대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역대 일본 총리들과 에너지 기업들은 오랫동안 원자력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적이며, 산악 지형이 많은 일본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재생에너지 투자와 탄소 감축을 저해했다고 지적한다.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용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새로운 안전 기준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원전 운영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독일 뮌헨공대(TUM) 선임연구원인 플로렌틴 코펜보르크 박사는 "원자력 발전은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싸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비용을 보조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법이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저렴한 에너지'라는 원자력의 장점을 강조해 온 일본 정치권으로서는 모두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일본에서 많은 사람이 물가 상승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요금이 오를 경우 정부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코펜보르크 박사는 일본 정부가 "원자력의 주요 장점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실상 원자력 분야에 재정 지원을 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 재개는) 뜨거운 돌 위에 떨어진 물방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내 원자력 쇠퇴라는 큰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대형 사고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일련의 스캔들이 일본 국민의 신뢰를 흔들었다.

특히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은 여러 건의 사건에 휘말렸다. 2023년에는 한 직원이 차량 위에 문서를 올려놓은 채 운전해 문서를 분실했다. 11월에는 또 다른 직원이 기밀문서를 부적절하게 취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쿄전력 대변인은 해당 사건들을 원자력규제위원회(NRA)에 보고했으며, 보안 관리 체계를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코펜보르크 박사는 이러한 사건이 공개된 것은 투명성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라면서도 "도쿄전력이 안전 관리를 비롯해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방식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NRA는 일본 중부에 위치한 주부전력의 하마오카 원전 원자로 재가동 심사를 중단했다. 주부전력이 몇 번의 시험에서 지진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회사는 "NRA의 지침 및 지도에 계속해서 최대한으로 성실히 응하겠다"며 사과했다.

전직 원자력 안전 당국 고위 관료인 히사노리 네이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오카 원전 스캔들에 "놀랐다"라면서도, 회사에 강력한 처벌이 내려진다면 다른 기업들의 유사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력 회사들은 그렇게 (데이터 조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당국이 규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서는 "(승인을) 거부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후쿠시마를 견딜 수 있을까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일은 그동안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여겨져 왔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수천 명의 주민들은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해, 방사선 노출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되는 재산 피해, 정신적 고통, 건강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2011년 3월 사고 직후 몇 주 동안 일본인의 44%는 원자력 발전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2012년에는 70%까지 급증했다. 다만 2022년 일본 경제지 닛케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안전이 보장된다면 원자력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0%를 넘어섰다.

그러나 공포와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23년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에서 처리된 오염수가 방류되자,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불안과 분노가 확산했다.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이 위치한 니가타현 의회 앞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여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로이터통신에 "만약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를 떠안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도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재가동을 앞두고, 도쿄전력 본사 앞에 소규모 시위대가 다시 모여 항의에 나섰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의 원자력 안전 기준은 대폭 강화됐다. 2012년 설립된 내각 산하 NRA가 현재 전국 원전의 재가동을 감독하고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에는 대형 쓰나미에 대비해 높이 15미터의 방파제가 설치됐으며, 핵심 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수밀문(방수문)도 마련됐다.

네이 씨는 "새로운 안전 기준에 따르면 (일본 원전들은) 2011년과 같은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펜보르크 박사는 "과거에 경험했던 최악의 상황에는 대비하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위험에는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나, 일본이 오랫동안 우려해 온 100년 만의 대지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코펜보르크 박사는 "과거가 반복된다면 일본은 매우 잘 준비돼 있다"면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대형 쓰나미가 발생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