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선서 ‘네덜란드의 트럼프’ 헤이르트 빌더르스 승리...유럽에 강경우파 돌풍

헤이르트 빌더르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총선 개표 결과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당의 승리가 확실시됐다
    • 기자, 카티야 애들러
    • 기자, BBC 유럽 에디터

지난 22일(현지시간)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강경 우파 성향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당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유럽 전역의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앞다퉈 이 포퓰리즘 정치인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는 금발로 염색해 부풀린 듯한 머리 모양과 거침없는 발언 등으로 종종 ‘네덜란드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이슬람교와 이민을 테러와 연 관짓거나, 이슬람의 사원과 경전인 모스크와 쿠란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그의 발언은 너무나도 선동적이다. 지난 2004년 이후 줄곧 경찰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차별을 조장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무죄로 판결 났으며, 2009년 영국 입국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유럽 내 극우 세력은 이제 자신들의 견해가 더 주류에 가깝다고 믿는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빌더르스 대표의 승리에 대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기뻐했는데, 빌더르스 대표와 마찬가지로 오르반 총리는 유럽회의주의뿐만 아니라 반이민 정책의 지지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빌더르스 대표와 같은 승리를 꿈꾸고 있을, 벨기에 내 극우 성향으로 플란데런 민족주의 및 분리주의를 외치는 톰 판 흐리컨 대표는 “유럽 전역에서 우리 같은 정당이 대세”라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거리의 망명신청자들의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그로닝겐 남동쪽의 테라펠 지역에 모인 망명신청자들. 현재 네덜란드 지방자치단체들은 망명신청자들을 위한 주택 마련을 두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네덜란드의 총선 결과는 네덜란드를 넘어 전반적인 유럽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유럽의 지도자들이 현재 걱정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우선 빌더르스 대표의 승리는 정말 보이는 그대로 탄탄한 것일까.

사실 빌더르스 대표 본인조차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되리라 기대하지 않은 모양새다. SNS엔 22일 총선 예측 결과가 발표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기쁨의 춤을 추는 빌더르스 대표의 모습이 올라와 있다.

빌더르스 측은 총선 불과 3일 전 본부로 사용할 공간을 급히 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빌더르스의 자유당의 인기가 높아진 건 지극히 최근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네덜란드 유권자들을 끌어들였을까.

  • 빌더르스 대표는 이민을 제한하고, 네덜란드의 주택 위기를 타개하고, 보건 서비스를 개선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반이슬람적 언행을 줄이기 시작했다
  • 빌더르스 대표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TV 토론에서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
  • 이번에 다른 주류 정당들 또한 이민을 이번 공약의 핵심으로 내세웠는데, 이 때문에 많은 유권자들이 그럴 바엔 차라리 ‘오리지널(원본)’에 투표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빌더르스 대표는 네덜란드 정치계에서 이민에 대해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시끄럽게 말해온 인물이다

아울러 경쟁자 또한 본의 아니게 빌더르스 대표의 승리를 도왔다.

중도우파 성향의 딜란 예실괴즈-제헤리위스 ‘자유민주당(VVD)’을 대표가 빌더르스 대표와의 연립정부 구성에 동의하며 그 포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빌더르스 대표의 자유당은 기존의 극단주의 이미지를 희석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 주류 정치계는 빌더르스 대표가 내세운 정책의 성향으로 인해 연정 가능성을 배제해왔다.

빌더르스의 선거 포스터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총선 결과가 나온 현재, 네덜란드의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정당 간 협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이 유럽 전체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빌더르스가 네덜란드 의회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대표라 하더라도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만큼의 충분한 의석수를 확보한 건 아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주간 정당 간 교섭이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빌더르스 대표 또한 정치적 동지를 찾기 위해선 일부 정책은 타협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으로선 빌더르스 대표가 네덜란드의 차기 총리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정말 차기 총리로 올라선다면, EU 지도자 간 정상회담은 더욱 긴장되고 까다로운 자리가 될 수 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빌더르스 대표는 네덜란드의 EU 탈퇴를 강경하게 외쳐온 인물이다. 물론 빌더르스 또한 EU 탈퇴론이 네덜란드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리 인기가 있진 않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만, 총리가 될 경우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에 대해 유럽집행위원회(EC) 측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에릭 매머 EC 대변인은 지난 23일 네덜란드가 (EU 창립 회원국으로서) EU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EU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내부 분열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우려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지원엔 엄청난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EU 회원국인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빌더르스 대표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원조에 반대한다.

전투기 앞에서 함께 사진 찍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총리

사진 출처, UKRAINIAN PRESIDENT VOLODYMYR ZELENSKYY'S OFFICIAL

사진 설명, 이번에 사임하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오른쪽)는 지난 8월 우크라이나에 F-16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빌더르스 대표는 네덜란드 우선주의를 표방한다. “네덜란드를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혹은 조르자 멜로니 현 이탈리아의 총리가 내세운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국민을 우선으로!”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민자 쓰나미”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는 빌더르스 대표는 EU의 이민 및 망명 신청자 관련 정책 등에 대해 멜로니 총리 등의 우파 지도자들과 같은 편에 설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빌더르스 대표의 이번 성공을 두고 강경파, 극우파,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 정당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주장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꼬리표를 하나로 뭉쳐서 일괄적으로 모든 논쟁에 적용할 순 없는 노릇이다.

폴란드에선 보수 성향의 ‘법과정의당’이 총선에서 막 패배했으며, 스페인의 우파 정당 ‘VOX’는 지난여름 선거에서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2위를 차지한 건 좌파 성향의 노동당과 녹색당 연합이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현재 이민자와 물가를 가장 최우선 선거 이슈로 보고 있는 건 사실인 듯하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독일의 극우 정당 ‘AfD’는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끔 1위로 올라설 때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보수 성향의 ‘국민당’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있다.

반이민 정책을 강하게 외치는 이러한 정당들은 비록 현재 집권당은 아니나, 그 존재 자체로도 정치적 압력이 되고 있으며, 이에 (독일의 집권 ‘사회민주당’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르네상스당’)과 같은 주류 당들을 이민과 국가 안보 이슈와 관련해 우파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포착되는 흐름이다.

EC는 빌더르스의 존재와 빌더르스의 승리가 유럽 전역에 불고 있는 정치적 바람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너무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