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피할 수 없다, 일해야만 하기 때문'… 아시아를 휩쓴 폭염

인력거 옆에서 물을 마시는 모하마드 슈쿠르 알리의 모습
사진 설명, 방글라데시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하는 모하마드 슈쿠르 알리는 올해 유독 더 덥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 기자, 데릭 카이
    • 기자, BBC News, 싱가포르

날이 좋든 흐리든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인력거를 끌며 생계를 유지하는 모하마드 슈쿠르 알리(50)는 언제나 일하러 길거리로 나선다. 손님을 태우고 인력거를 끄는 일이기에 이미 육체적으로 충분히 고달픈 직업이지만, 올해는 유독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알리를 괴롭힌다. 지난 4월 다카의 온도계는 사상 최고 기록인 40.6°C를 가리켰다.

하지만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셋방살이하는 알리는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난하기에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알리는 다카에서도 고급 아파트와 사무실, 외국 대사관 등이 모여 있는 부촌 굴산 지역에서 매일 8시간씩 교대근무를 한다. 이 지역에 출입하기 위해선 셔츠 위에 일종의 유니폼과 같은 조끼를 덧입어야 하는데, 이로 인해 타는 듯한 더위 속에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료가 부족해지며 방글라데시는 더욱 지독한 더위와 싸우고 있는데, 이에 따라 정전이 자주 발생하며 악순환이 이어진다.

한편 북미와 유럽 등 전 세계 수백만 명은 이미 올해 여름 지독한 무더위를 경험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도시의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됐으며, 과학자들은 지난 7월이 전 세계에서 가장 더운 한 달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사회는 화석 연료 배출량을 줄여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지는 1.5°C를 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앞으로 4년 안에 이 마지노선이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지구는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1°C 더 더워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45억 명 인구가 모여 사는 아시아 지역의 기온은 이보다도 훨씬 더 더워졌다.

기후학자 20여 명이 참여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내 많은 지역에서 올해 초 평균 기온 상승폭은 2°C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올해 여름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폭염이 관측됐다.

우선 한국에선 올해 5~8월 사이 온열 질환으로 최소 23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가 넘는 숫자다. 지난 3일 전북 부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 수백 명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등 일부 지역은 기온이 무려 38°C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 외에 폭우나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도 있었다.

일본 당국은 이미 7월 중순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되는 등 기온이 치솟자 국토 절반 지역에 열사병 경보를 발표했다. 일례로 수도 도쿄의 올해 평균 기온은 평소 대비 8°C 높은 38°C를 기록하며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단 1주일 동안 전국에서 열사병으로 입원한 환자 수는 9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사상 최고 기온이 관측되고 있다. 지난달 신장자치구 서부 건조 지역에선 무려 52°C까지 치솟았다. 또한 1달 전 수도 베이징에서도 수은주가 51°C를 가리키며 60여 년 만에 가장 더운 6월이 됐다.

인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수도 델리 일부 지역 기온이 49.2°C까지 치솟는 등 극심한 폭염이 북부 지역을 휩쓸었다.

얼음을 자르고 있는 태국 인부들의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지난 4월 15일, 태국에선 수은주가 45.4°C까지 올라가며 역대 가장 더욱 날로 기록됐다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무더운 4, 5월 당시 기록적인 고온이 관측됐다.

한편 폭염은 목숨을 위협하는 자연재해 중 하나로, 지진, 태풍, 홍수보다도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폭염으로 인해 도로가 녹고,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되기도 하며, 산불이 발생하는 등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폭염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조용한 재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종종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폭염은 당뇨와 같은 기저 질환을 악화할 수 있으며, 탈수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또한 주변 온도가 극도로 올라가면 신체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심장은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는데, 중심체온(심부체온)이 고작 0.5°C만 올라도 분당 심장 박동수는 10회 이상 상승할 수 있다.

미국 ‘메이오 클리닉’ 종합병원에 따르면 중심체온이 상승해 40°C를 웃돌 경우 열사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장기 부전, 심정지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에서 도시 기후학을 가르치는 윈스턴 초우 부교수는 열은 공기 중 수증기량(습도)을 높이는데 이렇게 되면 “피부의 땀이 증발할 수 없어 [신체의 열을 배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즉 “몸이 열을 식힐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을 잃으며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인디애나대 블루밍턴 소속 생리학자 잭 슐래더는 전문가들은 보통 ‘습구온도(온도계 선단을 물에 적신 천으로 감싼 상태에서 측정한 온도)’ 35°C를 인간이 생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절대적 한계”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 이르면 땀을 흘려 체온을 식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인도 출신 건설 노동자로 현재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센틸 로제쉬(26)는 건설 현장에 무더위 쉼터 및 급수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1년 내내 습한 싱가포르 일부 지역에선 올해 5월부터 37°C를 웃돌았는데, 이는 40년 만의 기록이다.

건설 현장에선 습구온도를 모니터링해 너무 더울 경우 근로자들이 쉴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매일 현장에서 10시간씩 근무하는 로제쉬에 따르면 모든 근로자들이 언제나 “땀에 흠뻑 젖는다”고 한다.

한편 기후 변화의 사회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는 유엔(UN) 최고 기후 기관인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공동 의장이기도 한 초우 교수는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여러 도시가 성장하며 향후 수십 년간 아시아의 인구는 2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초우 교수는 “이에 따라 더 많은 건설 공사가 진행될 것이며, 더욱 기온이 올라가도 건설은 진행될 것이다”면서 “그렇기에 여러 취약층이 노출된 위험 요소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우 교수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선 탄소 배출량 감소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 국가들이 앞으로 점점 더 기승을 부릴 폭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염 대처 방안

예를 들어 싱가포르와 같이 동남아시아에서도 부유한 국가에선 쇼핑몰이나 집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등 더위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반 시설이 마련돼 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녹지 공간을 확충하고 보행로에 그늘을 마련하고 건물 디자인을 바꾸는 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더위에 대비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저소득 국가에선 이러한 조치를 당장 시행할 수 없다. 심지어 더위에 맞서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엔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거나, 이러한 국가 내에서도 더 소외된 지역 사회는 간과될 때가 많다.

일례로 아시아 폭염 보고서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태국의 기후학자 차야 바드하나푸티 박사는 태국은 이미 폭염에 대비해 국가 차원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밝은색의 옷을 입거나 잠시 무더위를 피하길 권고하고 있다.

바드하나푸티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모든 시민이 이를 따를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그렇기에 국가의 폭염 대비 시스템은 노숙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이들이 국가의 권고 사항을 따른다는 가정하에 마련된 사회 시스템입니다.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라기보단 일반적인 권고 사항에 가깝습니다.”

한편 저예산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폭염 대처 사례로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시의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13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1344명이 사망한 이후 아마다바드시 정부는 도시 가구의 4분의 1이 거주하는 슬럼가의 양철과 석면 지붕을 흰색 페인트로 칠해 온도를 낮췄다. 또한 시민 공원 또한 온종일 개방해 노점상과 건설 노동자들이 잠시 더위를 피해 쉴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인도의 다른 도시들 또한 해당 사례를 따라 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크리슈니 타루
사진 설명, 네팔에 사는 크리슈니 타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이외에도 인프라에 접근할 수 없거나, 적절한 수단이 없어 폭염 등 자연재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소외 계층을 위해 여전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네팔의 어느 더운 여름밤, 크리슈니 타루(30)는 자녀 둘, 시어머니와 한방에서 잠을 청한다. 온 가족이 선풍기 1대에 의지한다.

타루가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서부 네팔군즈 지역에선 지난 6월 44°C를 기록했다.

에베레스트산을 품은 내륙 국가 네팔은 보통 5~7월이 여름으로 기온이 높은데, 해마다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정부 자료를 살펴봐도 매년 기온이 꾸준히 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타루는 매일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10시간가량 교대 근무를 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다. 그렇게 하루에 버는 돈은 미화 4.50달러(약 5900원) 정도이며, 이 돈으로 타루 가족은 생계를 이어 나간다.

타루는 최근 날씨가 무척 혹독해지면서 안 그래도 힘든 야외 노동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타루는 BBC에 자신의 노동은 가족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라면서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일해야만 하거든요.”

추가 보도: 오치 오톤드릴라(다카), 비말라 초드하리(카트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