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가 '동성결혼'을 인정할 준비를 하지 않는 이유

가톨릭 교회 십자가 근처에서 펄럭이는 무지개색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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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가톨릭 교회 십자가 근처에서 무지개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기자, 에디슨 베이가
    • 기자, BBC News, 브라질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했다는 소식은 로마 가톨릭을 믿는 성소수자들에겐 중대한 진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바티칸 교황청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순 없다고 말한다.

교황이 승인해 지난 18일에 발표한 문서에서, 교황청은 사제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동성 커플이나 ‘비정상적(irregular)’인 커플을 축복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이러한 축복이 정기적인 교회 의식의 일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전히 교황청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바라본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의 필리페 도밍게스 교수는 “사람들이 [바티칸이] 이러한 공식 발표를 하리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발표 자체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교황청이 동성결혼을 수용하는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려 한다는 분명한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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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전문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승인해 지난 18일에 발표한 문서엔 로마 가톨릭이 동성결혼 수용을 향해 더 나아갈 것으로 보이는 분명한 조짐은 없다고 말한다

“해당 문서는 혼인성사가 무엇인지, 축복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2021년 발표한 기존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앞서 교황청은 신이 “죄를 축복할 순 없다”는 주장 아래 동성결혼 축복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도밍게스 교수는 “현 교황은 2021년 문서의 최종 내용에 그다지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허가를 내렸다”면서 그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금 더 유화적인 어조를 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러 종류의 축복

로마 가톨릭 교회엔 여러 종류의 축복이 있다. 전례 규율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가 축복받기 위해선 “교회의 가르침에 표현된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 이러한 축복의 의미에 좀 더 목회적인, 혹은 공동체적인 이해 개념을 도입했다.

이번 달 18일에 발표된 문서는 축복받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은 하느님의 구원적 존재가 필요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하느님의 도움을 바라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애원”을 하는 존재라고 적고 있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문신을 한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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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동성결혼을 원하는 기독교인들은 일부 교회에서 축복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도밍게스 교수는 “해당 문서는 새로운 축복이 의식화돼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특정 의식을 치르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자발적인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교회에 속하지 못하거나, 교회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입니다.”

사제들은 축복을 거부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이미 로마 가톨릭 교회 내 일부 사제나 주교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진 걸까.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의 종교 전문가이자 사회학자인 프란시스코 리베이루 네토 교수는 제도적 정당화가 마련된 것이라고 봤다.

“목회적인 성격의 축복은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축복을 환영한다는, 바티칸 교황청의 확인이라는 촉진제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사제들이 축복할 의무는 없습니다. 사제들은 사례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톨릭교회가 이번에 말하는 바는, 신자들이 목회적인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네토 교수 또한 지난 18일의 발표를 로마 가톨릭교회가 동성결혼을 수용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네토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건 아니”라면서 “동성결혼에 대한 축복으로 나아가는 대신 동성애자들에 대한 수용을 보장하는 범주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을 임명하는 교황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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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프란치스코 교황은 페르난데스 추기경(오른쪽)을 교황청의 주요 직책 중 하나에 임명했다

네토 교수는 이번 행보를 전통주의자들과 교회의 현대화를 외치는 이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평가했다.

“교황이 이번에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는 건 동성결혼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로부터 약간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동성 커플들은 이제 이러한 종류의 축복을 받겠죠.”

그러나 네토 교수는 축복이 교회가 이들의 관계를 승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교황의 아르헨티나 친구

한편 지난 18일의 발표로 교황과는 사적인 친구이기도 한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제인 그는 최근 교황청에서 가장 오래된 주요 직책 중 하나인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새롭게 임명됐다. 진보적이고 논란이 많은 견해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예를 들어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여러 책을 저술했는데, 이중엔 커플들에게 에로틱한 키스를 연습하도록 권장하는 내용도 있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초혼이 아닌 커플을 환영하거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여러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