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시위대, '대통령·총리 사임 전까지 대통령궁 점거할 것'

동영상 설명,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궁을 점거한 반정부 시위대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진 스리랑카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궁 및 총리 자택을 점거한 가운데, 시위대가 11일(현지시간) 대통령과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임할 때까지 점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오는 13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스리랑카 국회의장이 밝혔다. 그러나 라자팍사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BBC의 군 관련 소식통은 라자팍사 대통령이 시위대를 피해 현재 스리랑카 해역의 해군 함정에 머물고 있으며, 대통령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는 해군기지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일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이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수도 콜롬보로 모여들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경제 실책으로 지난 몇 달간 식량, 연료, 의약품 부족 등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한편 9일 시위로 자택이 불길에 휩싸인 라닐 위크레메싱게 현 총리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시위대는 여전히 대통령과 총리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는 대통령궁의 호화스러운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시위대는 대통령궁의 호화스러운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학생 시위를 이끄는 라히루 위라세카라는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라자팍사 대통령이] 정말로 떠날 때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리랑카의 정치 분석가이자 인권변호사인 바바니 폰세카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며칠간 정치적으로 매우 불확실할 것"이라며 두 지도자가 실제로 사임"할지 지켜보는 건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 지도부는 지난 10일 원만한 권력 이양을 위한 추가 회의를 열었다.

한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스리랑카 새 정부는 당장 장기적인 경제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의회 대변인은 BBC 월드 서비스 '뉴스아워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공식 사임으로부터 1주일 이내에 새로운 초당적 연립정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여당 출신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의장은 스리랑카 경제난의 원인을 주로 코로나19 팬데믹 탓으로 돌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가 대혼란에 휩싸이면서 백신 접종에 국가 예산을 거의 다 써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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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 스리랑카는 인도반도 남동부의 섬나라로, 1948년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했다. 싱할라족, 타밀족, 이슬람교도 등 3개 종족이 전체 2200만 인구의 99%를 차지한다.
  • 라자팍사 가문의 형제가 수년간 국정을 장악했다. 형 마힌다 라자팍사는 타밀 분리주의 반군과 수년 간 이어진 내전을 지난 2009년 승리로 이끌며 다수민족인 싱할라족의 영웅이 됐다. 마힌다의 동생이자 당시 국방장관인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스리랑카 현 대통령이다.
  • 경제 난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식량, 의약품, 연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전력난도 심각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라자팍사 가문과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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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9일 벌어진 시위에서 수십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콜롬보의 한 주요 병원 대변인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명이 총상으로 치료받았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지난 9일 시위 구호를 외치고 국기를 흔들며 관저에 침입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시위대는 지난 9일 시위 구호를 외치고 국기를 흔들며 관저에 침입했다

9일 관저 점거로 몇 달간 주로 평화롭게 전개되던 스리랑카 내 시위는 정점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라자팍사 대통령 관저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국기를 흔들던 엄청난 인파가 바리케이드를 뚫고 관저에 침입했다.

온라인에 공개된 영상을 통해 시위대가 관저 안을 배회하고 대통령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랍장 및 대통령의 소지품을 뒤지며 호화롭게 장식된 욕실을 사용하는 모습도 담겼다.

2200만 명 국민들의 지난 수개월간의 고통과 대조되는 대통령궁의 호화스러움에 시위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시위에 참여한 차누카 사야스리아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라 전체가 고통받고 있기에 시민들은 이곳에 몰려와 그 고통을 덜고자 했다. 이 대통령궁의 호화스러움을 보고 있자니 지도부가 국가를 위해 일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두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라자팍사 대통령은 안전 예방 차원에서 예정됐던 시위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8일 이미 관저를 떠났다고 전했다.

시위대가 점거한 곳이 라자팍사 대통령의 공식 관저이지만, 라자팍사 대통령이 잠을 자는 곳은 근처에 별도로 마련된 자택이다.

10일 총리 관저에서 카드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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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위대는 수도 콜롬보의 부유층 밀집 지역에 있는 위크레메싱게 총리의 사저에도 불을 질렀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같은 날(9일)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초당적 정부 구성을 위해 사임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으나, 직후 그의 자택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포됐다.

해당 건물은 총리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사저로, 공무용 공관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