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의도 못 찾아'… 문재인 정부 결정 뒤집혀

해경 브리핑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북한 피격 공무원 사건' 최종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국 해양경찰이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이 자진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1심 패소 판결에 항소했던 이전 정부의 결정을 번복하고 사실상 유족에게 사과했다.

해경은 16일 오후 개최된 언론 브리핑에서 "국방부 발표 등을 근거로 피격된 공무원의 월북 여부를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이 자리에서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당시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며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해경은 숨진 공무원 이씨가 도박 빚으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출신의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회장은 BBC 코리아에 "피해자가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피격∙소각까지 됐음에도 전임 정부는 그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 시켜주기 위해 피해자가 자진월북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며 "사안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윤석열 정부가 사실을 바로잡고 북한 정권의 잔학성, 반인권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전임 정부를 겨냥해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에 국가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씨는 지난 2020년 9월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km 해상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됐으며 하루 뒤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졌다.

대통령실, 항소 취하… '부당한 조치 시정'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16일 오전 법률대리인을 통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항소 취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안보실은 "이번 항소 취하 결정이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피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에게 사망 경위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은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유족이 바라는 고인의 명예 회복과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비영리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이영환 대표는 "이번 발표로 일단 국민적 인식에서 피살 공무원과 유족의 명예회복은 일단 이뤄진 셈"이라며 "해경청장 외에도 전 정부 인사들과 정부를 상대로 한 민형사 소송 여부는 유족과 변호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하는 유족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북한군 피격으로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유가족과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진상 규명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 및 청와대 정보공개 승소판결에 관한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결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이행 차원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나, 정부의 무능인가 아니면 북한의 잔혹함인가, 불과 1년 전 대통령이 유가족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약속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이 집권하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사건 당시 관련 자료를 내부적으로 분석하며 사실상 재조사를 진행하고 사건이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임 정부 당시 청와대가 남북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북한 눈치를 보며 국민의 인명사고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핵심은 문재인 정부가 고인의 월북을 단정했던 점"이라며 "북한군 감청 자료 등을 근거로 월북을 단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유족 측은 지난 2021년 1월 청와대와 국방부, 해경청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같은 해 11월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와 해경은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에 각각 항소했고 특히 청와대는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재판부 판결에 불응했다.

이에 대해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국민의힘)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실은 결국 안개를 걷고 얼굴을 내미는 법"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사명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며 오히려 진실을 숨기려 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권 청와대가 보유했던 핵심 관련 자료는 이미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됐지만, 하루빨리 명백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기록물 '봉인 해제' 왜 어려울까?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보유했던 해당 사건 관련 자료는 문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간 봉인됐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위원장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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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다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 또는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 현 대통령실 판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임 정부에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목록이나 내용을 현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료 열람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사법부 판단을 받아본 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으면 추가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환 대표는 이와 관련해 "사실 봉인된 기록물에 전임 정부가 은폐하려는 명확한 자료가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민감하고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전에 해당 문서들을 파기하거나 변조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유족 측은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한 고등법원장 영장 발부를 이끌어내기 위해 변호사와 관련 법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