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지향 포기? 노동당 규약 개정의 의미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 출처, Reuters

지난 1월 개정된 북한 노동당 규약의 일부가 최근 공개되면서 '북한이 통일을 지향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 노동당 규약은 지난 1월 개최된 8차 당 대회에서 개정 및 채택됐다. 조선노동당 일당 국가체제에서 당 규약은 북한의 모든 대전략과 실천강령, 당의 역할 등 기본적인 체제 노선을 반영한다.

따라서 당 규약을 통해 수령의 유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노동당 규약 개정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BBC 코리아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는 당이 먼저 정책 결정을 하면 국가기관이 그에 따라 집행을 한다"며 "당의 모든 지침과 결정이 국가체제 운영 방향을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국가의 운명이 당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통일-대남 적화전략 포기?

우선 '통일 과업' 부문의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한다"는 구절로 대체됐다.

'통일전선' 부문에서는 "조국을 통일하고"가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로,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는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로 바뀌었다.

또 대남 인민 연대를 상징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남한 인민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사라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론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일 언론과의 비대면 회의에서 "북한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맞지 않으며 남조선 혁명도 포기했다"고 분석했다.

동영상 설명, 비전향장기수 박희성 씨

하지만 국가정보원 대북정책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똑같은 내용인데 얼굴의 화장색만 바꾼 것"이라고 비유했다. 북한에서 '민족해방'과 '자주'는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곽 대표는 "북한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주의가 완성된 나라,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공산당의 활동이 자유로운 나라를 뜻하고, '자주'는 전통적으로 미제를 물리친 반제 정권 수립을 의미한다"며 이는 북한의 기본적인 전술인 '용어혼란전술'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미국은 '한국과 북한의 비핵화'로 받아들이지만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그는 '남한 인민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삭제됐다고 해서 이를 북한의 '대남적화노선 포기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오히려 '핵 무력 통일노선을 앞당긴다' 등의 노골적인 표현과 함께 해외 동포를 향해 '자주 혁명'과 '통일전선사업에 동참하라' 등의 선전 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결국 겉으로는 개정 내용이 순화되고 평화 지향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강한 대남 통일 전선의 실천 강령을 표현한 것이라고 곽 대표는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당 규약 개정은 북한이 통일을 포기한 것'이란 해석에 대해 "북한이나 한국이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북한이 통일을 단기적인 목표로 설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로 미룬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바탕으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궁극적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통일부는 "개정 내용이 일부 공개되긴 했지만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며 "전반적인 취지를 종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제1비서직 신설

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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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또 새 당 규약에서 총비서 바로 아래 제1비서 직함을 신설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고 명시했다. 당 총비서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정성장 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제1비서직을 신설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핵심문제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회의를 싫어하고 수많은 결제를 감당하는 등 당원 및 대중들과의 소통에 소홀했지만, 대리인을 내세워 업무의 상당부분을 넘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정치 방식은 아버지의 정책 결정 스타일과 명백히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제1비서에 누가 임명됐느냐 하는 것도 관심사다. 일단 북한 당국과 관영 매체들은 제1비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는 공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리인인 제1비서는 후계자 그리고 후계를 이어주는 인물까지 포함하며 "백두혈통만이 가능해 유사시 김여정을 등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심복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거론되기도 한다. 실제 제1비서에 앉힐 정도의 최측근은 서열상으로나 신임관계로 보나 조용원 조직비서가 유일하다는 평가다.

그는 잦은 물갈이 속에서도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제1부부장을 거쳐 지난 1 당대회에서 조직비서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