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판결: '일본, 피해자에 1억원씩 지급하라' 첫 판결...실제 배상 이뤄질까?

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73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가 씌어져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73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가 씌어져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국내에서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가운데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8일 오전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우선 "국제 관습법인 국가주권면제가 이 사건에서도 적용돼 우리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가 문제됐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이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볼 때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선고는 사건 접수 이후 약 5년 만에 나온 것으로, 손해배상 소송에 앞서 배상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 사건이 접수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약 7년 5개월 만이다.

일본 반응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나오자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날 정례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또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1심에서 패소한 판결에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 외무성도 판결이 나오자마자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를 불러 이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남 대사는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나고 나오면서 취재진에 "우리로서는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차분하고 절제된 양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소송 과정은 어땠나?

지난 2013년 피해 할머니들과 유가족들은 일본 정부에 위자료를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로 차출한 것에 손해배상을 하라는 취지였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4차례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피해자들은 마지막으로 한국 법원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은 소송 절차를 밟기 위해 2015년 10월 사건을 일반 민사합의부로 이송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건은 2016년 12월 법원에 접수됐지만 일본 정부는 2019년 1월까지 소장 접수 자체를 계속 거부했다.

결국 재판부는 '공시 송달' 절차를 통해 일본 정부에 소장을 전달했다.

공시 송달이란 주로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송달이 불가능할 경우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면서 사유를 게시판에 공고해 당사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2019년 5월 9일부로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후에도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 할머니 6명이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들의 호소

2019년 11월 13일 가까스로 열린 첫 변론 자리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길원옥·이옥선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옥선 할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철모르는 어린 것들을 일본에서 끌어다 못 쓰게 만들고 다 죽였으니 반성해야 한다"면서 "퍼뜩 배상받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이옥선, 길원옥 할머니가 2019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첫 재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이옥선, 길원옥 할머니가 2019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첫 재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마지막 변론 기일이었던 지난해 11월 11일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원고 측 변호인이 신청한 증언자로 법정에 섰다.

이날 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나라 대 나라로서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적극 나서지 않고 아무런 대책도 없어 이 억울함을 법에 호소하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위안소에 머물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군인이 칼로 찌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군인 방에 들어가라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일본이 주장했던 '국가면제'

일본은 줄곧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했다.

주권면제로도 불리는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앞서 2019년 11월, 일본 정부 대변인으로 나섰던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현 일본 총리)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한일 간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특히 지난 2015년 한일 합의에서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한일 양국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제법상 국가면제에 따라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재판권에 속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번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피해자 측은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동원한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가 한국 영토에서 이뤄졌고 '인권 침해 ' 불법성이 지나치게 커 국가면제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 양성우 변호사는 앞서 6일 BBC 코리아에 "위안부 피해자 구제를 실현할 다른 형태의 분쟁 해결 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원이 기계적으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이 사건에서만큼은 제한하는 판결을 해 오늘날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국제 인권 규범 형성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배상 가능할까?

우선 일본 정부는 항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하게 되면 소송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배상액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 내 일본 자산 압류와 강제매각 등 별도 절차가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다.

앞서 양 변호사는 "선고 이후에 후속 절차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등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대법원은 2018년 11월 "피고는 원고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했다.

미쓰비시 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자 피해자들은 지난해 3월 22일 특허청이 있는 대전지법에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상표권 압류 매각명령 신청을 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낸 미쓰비시중공업 국내자산 압류명령 효력은 지난달 29일 오전 0시부터 발생했다. 미쓰비시 측은 압류명령을 내린 대전지법에 즉시 항고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