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레이터: 의료기기가 섹스토이가 되기까지

'테크놀로지 오브 오르가슴'의 저자 레이첼 메인스는 1909년부터 바이브레이터 기기가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Science Museum

사진 설명, '테크놀로지 오브 오르가슴'의 저자 레이첼 메인스는 1909년부터 바이브레이터 기기가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바이브레이터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처음으로 발명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이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이브레이터는 19세기에 의사들이 여성 히스테리 환자를 위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들에게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 오르가슴을 주는 치료법으로 사용했다는 것.

바이브레이터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에서 이미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최근 이것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사들이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자위기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오르가슴의 기술: 히스테리, 바이브레이터, 그리고 여성의 성적 만족감(The Technology of Orgasm: "Hysteria," the Vibrator, and Women's Sexual Satisfaction)에서 유래한다. 1999년에 출판된 이 책은 미국 코넬 대학의 연구원 레이철 메인스가 썼다.

이 책은 1999년 미국 역사학회의 허버트 피스상(Herbert Feis Award)을 받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저널 오브 포지티브 섹슈얼리티'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근거가 불분명하다.

이 논문은 '오르가슴의 기술'의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역사학자들이 펴낸 최신 연구다. 논문은 성의 역사와 대중의 상상력에 관한 내용도 포함한다.

이 논문의 저자인 조지아 공과 대학의 기술 역사학자 할리 리버먼은 "성의 역사에 대해 내가 아는 바로는, 의사들이 이런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라며 "원문의 출처를 확인했을 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리버먼은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등이나 목 마사지용으로도 사용했던 '바이브레이터'는 1900년대와 1910년대 초반까지 많은 여성이 사용했다. 하지만 1900년 이전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됐다는 근거는 없다. 이전에 바이브레이터는 의사에게만 판매됐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 의사들이 오르가슴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이브레이터에 관한 오해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기로 작동하는 바이브레이터는 잡지, 정기 간행물, 의학 문헌, 신문 등에 광고됐다.

1904년 광고에는 한 여성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편안히 앉아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여성의 목을 마사지 하기 위해 서 있다. 의사의 손에는 검은색 케이블로 연결된 금속 바이브레이터가 있다.

하지만 광고 이미지 어떤 곳에도 환자의 목 이외에 다른 부위에 기기를 사용했다는 언급은 없다.

광고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일반적인 수동 마사지와는 달리, 피로도의 50%가 사라진다"며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직접 치료를 한다.

1913년경의 헤어드라이어처럼 생긴 사노픽스(Sanofix) 진동기는 여러 가지 다른 부착물이 함께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에 담겨 있다. 주름진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심각한 얼굴의 여성이 이 바이브레이터를 이마와 턱, 목, 그리고 가슴에 댄다.

1900년대 초의 광고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팔과 다리, 가슴, 얼굴에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

사진 출처, Science Museum

사진 설명, 1900년대 초의 광고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팔과 다리, 가슴, 얼굴에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

메인스는 이러한 광고를 접했을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바이브레이터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찾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도서관에서 연구하며 19년을 보냈다. 자료가 많지 않아 19년이 걸렸고 결국 책을 냈다"고 말했다.

'오르가슴의 기술'에서 메인스는 바이브레이터가 오르가슴을 통한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사용됨으로써,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는 이론을 설명했다.

메인스는 여성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과거 로마인들도 자위 기구를 사용했다고 저술했다.

그는 당시에는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발작'이 성적 반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르가슴에 대한 인식

리버먼은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행위는 남성의 성행위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빅토리아 시대 의사들이 지식이 부족해 바이브레이터를 의료기기로 사용했다는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메인스는 그것이 오르가슴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표현했다"며 "그 당시에도 여성 성행위와 성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리버먼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미국과 영국의 의사들이 어떤 종류의 여성 성행위가 건강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이론을 세웠으며, 당시 여성의 오르가슴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이 존재했다고 한다.

리버먼은 또 메인스의 책에 인용된 역사적 사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메인스는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했으며 "특히 부인과의 마사지"에 자주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주장에 대한 다섯 가지 자료를 인용했는데, 이 중 몇 개는 메인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1900년대 초부터 이 휴대용 바이브레이터는 의사가 환자를 마사지하는 데 사용됐다

사진 출처, Science Museum

사진 설명, 1900년대 초부터 이 휴대용 바이브레이터는 의사가 환자를 마사지하는 데 사용됐다

해당 자료들은 바이브레이터, 히스테리, 부인과 마사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메인스가 인용한 자료는 '전류로 통증을 치료했다'는 부분이다. 해당 자료의 저자는 생리통이 있는 환자에게 "성적 흥분의 완전한 부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자료 또한 히스테리, 마사지, 바이브레이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세 번째 자료는 부인과 마사지도 언급하지 않고 일반 마사지만을 언급하고, '바이브레이터'라는 용어 또한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리버먼은 책을 읽으면서 이런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대해 메인스는 리버먼의 주장이 기존의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비판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메인스는 "물론 젊은 학자가 나이든 학자의 일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며 "제시한 것은 가설이다. 나와 공동저자들은 (리버먼의) 가설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브레이터는 만병통치약?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실은 바이브레이터가 거의 모든 병의 치료법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광고에서는 바이브레이터가 불면증, 마비, 신경통, 간질, 소화불량, 통풍, 청력상실, 치질, 구토, 변비, 인후염 등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한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1900년대 초까지 판매된 '비디' 바이브레이터는 감기부터 소화불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광고했다

사진 출처, Science Museum

사진 설명, 1900년대 초까지 판매된 '비디' 바이브레이터는 감기부터 소화불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광고했다

리버먼은 "진료실에서 오르가슴을 이용해 여성을 치료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바이브레이터가 사용된 부위는 성기보다 등과 목 등에 편안한 마사지를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메인스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오픈 대학 고전 역사학자인 헬렌 킹을 포함한 학자들 또한 바이브레이터의 사용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메인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킹은 "메인스는 (바이브레이터의 역사가) 히포크라테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으로 고증되길 바란다. 그래서 메인스는 의사들이 여성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오르가슴을 사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자료를 찾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킹은 고대사회에서 의사들이 여성 근처에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고, 메인스가 이 시기에 대한 풍자적 글과 실제 의학 문헌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로마에 여성을 자위하는 내용의 풍자가 있지만, 의사들이 실제로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이는 풍자이고,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킹은 반면 메인스가 의사들이 허리, 무릎, 머리를 마사지하는 것을 묘사한 고대 의학 문서들을 잘못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성교 중 자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을 메인스는 의사가 여성에게 자위행위를 했다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바이브레이터가 섹스 토이가 되기까지

의사가 아니라면 누가 바이브레이터를 섹스 토이로 만들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메인스가 발견한 몇몇 광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의사들은 바이브레이터가 사실상 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리버먼은 "의학 협회가 바이브레이터를 건강 사기 및 돌팔이 장치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바이브레이터 제조업자들은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바이브레이터는 의료 기기로 발전했지만, 더는 이를 구매하려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 회사는 1903년에 대담한 결정을 내렸는데, 바로 남녀의 성기를 광고에 등장시킨 것이다. 주 소비자층을 의사에서 대중으로 옮긴 것이다.

리버먼은 이것이 그가 연구를 통해 발견한 성적인 목적과 직접 연관된 바이브레이터의 시초라고 한다.

하지만 바이브레이터를 공개적으로 성적인 기구로 판매하는 것은 드물었다. 이는 바이브레이터가 외설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한동안 미국과 영국에선 바이브레이터를 광고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의 한 바이브레이터 광고. '미니 바이브레이터...쾌적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적혀있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20세기 중반의 한 바이브레이터 광고. '미니 바이브레이터...쾌적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적혀있다

리버먼은 바이브레이터가 당시 광고에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여성을 위한 가정용품으로 묘사됐고, 낮 동안 여성들이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마사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이브레이터 광고들은 점차 성적 요소를 담기 시작했다.

리버먼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바이브레이터는 195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더 대중화돼 공개적으로 판매됐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바이브레이터에 대한 논쟁이 가라앉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 알라바마 주의 경우, 여전히 바이브레이터를 광고하고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성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바이브레이터는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성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바이브레이터는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인스는 위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을 고수한다. 그는 "내 가설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리버먼은 그가 발견한 증거가 기존의 가설보다 덜 흥미롭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이브레이터는 어깨, 목, 손목 등을 마사지하기 위해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리버먼은 그의 논문의 내용을 "이제 막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의사가 등장하는 포르노 영화 시나리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위행위가 의료계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이론은 거의 20년 동안 교육되어왔고, 학계와 언론에도 사실처럼 받아들여 왔다. 또 연극 및 영화를 통해 더욱 대중화됐다.

이에 대해 리버먼은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진실로 만들려고 할 때, 심지어 학자들도 사실 확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