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러셀 전 차관보 '비핵화가 최우선 사항이 돼야'

2017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세계평화포럼에서 강연하는 대니얼 러셀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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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대니얼 러셀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평화나 신뢰 구축에 앞서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8~20일 북한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3번째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종전선언과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 발전과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2기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재임한 대니얼 러셀 아시아 정책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이 그 어떤 논의보다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꼭 할 필요가 없다면 절대로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지도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평화체제나 신뢰구축 따위가 아니다."

러셀 전 차관보는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악순환(Vicious Cycle)'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고의로 긴장을 고조시킨 뒤 한국 등 주변국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모든 타협을 얻어낸 뒤에야 긴장을 푸는 순환을 계속해왔다"며 "현 상황에선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북한이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시험장 등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현재 무엇을 보유하고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면 우린 아직 시작도 못 한 것이다. 그 시점까지 가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 돼야 한다."

즉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종전선언과 경제협력과 병행되는 것이 아닌 무엇 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선호해온 '선비핵화 후보상'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북한 측은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해 왔다.

북한과의 '지구전'에서 "성급했던 대화"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거둘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체계적으로 차단해 왔다. 각종 제재 등을 통해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진전을 이룰 때마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아무것도 없이 생존할 순 없다."

러셀 전 차관보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했던 조지 W. 부시 정권 때나 그 뒤를 이은 오바마 정권 때나 북한에 대처하는 전략은 지구전(Strategy of Attrition)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지구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손을 내민 것도 갈수록 위협적이고 심각한 압박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2017년에만 4개의 대북제재를 채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전한 신년사에서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밝혔고, 그 뒤로 평창 동계올림픽 공동입장과 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며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5월 26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예고없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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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5월 26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예고없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러셀 전 차관보는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압박에서 풀려나기 위해 핵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갈 기회였다"고 말했다.

러셀 전 차관보는 "3월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성급하게 움직였다. 너무 일찍 움직여 북한 김정은의 불충분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라며 "김 위원장이 강제력이 있는 약속이나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기 전부터 압박을 풀어주는 바람에 협상 수단(Leverage)을 낭비했고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가망을 좌절시켰다"고 전했다.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 핵보유국으로 인정

러셀 전 차관보는 현재 한반도가 이른바 '평화 도취상태(Peace Euphoria)'에 빠져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에선 "'이번에는 마술적으로 다를 거야'·'평화의 꿈을 이룰 수 있어'·'이제 통일도 불가능하지 않아'와 같은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에선 한국과 비교하면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달리 유럽과 아프리카 등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직접 위협을 받지 않은 곳에선 사태가 잘 풀리길 바라면서도 면밀히 따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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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화성-12형 로켓 발사를 참관하는 김정은 위원장

러셀 전 차관보는 낙관론과 회의론, 무관심보다 반복된 악순환에서 나오는 피로감을 우려했다.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이고, 북한의 자제에 만족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한 유감스러운 현실이 받아들인 것 같이 핵 보유 북한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 있다."

파키스탄은 냉전 시대에 미국과 동맹이었지만, 인도와 전쟁을 겪으며 동맹이 약화됐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비밀리에 핵 개발을 시작했다. 1980년대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필요했고, 결국 핵 개발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 한 뒤에는 이미 파키스탄의 핵 기술이 완성된 상태였다.

러셀 전 차관보는 "핵 보유 북한이 너무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관계개선을 기대하는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