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가뭄: 굶주림 끝에 목숨을 잃은 2살 아기

하와는 딸 우바를 안고 아들 압디왈리를 침대에 뉘었다. 도움을 청하러 오기 전 몇 주 동안 아들이 쇠약해졌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 BBC/ Ed Habershon

사진 설명, 하와는 딸 우바를 안고 아들 압디왈리를 침대에 뉘었다. 도움을 청하러 오기 전 몇 주 동안 아들이 쇠약해졌다고 말한다
    • 기자, 앤드류 하딩
    • 기자, BBC 뉴스, 돌로

작은 소말리아 병원에서 이틀을 보낸 압디왈리 압디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두 살배기 아기의 체중은 여전히 4.6kg에 불과해, 건강한 신생아 수준이다. 그래도 이제는 신음 소리를 낼 기력이 생겼다. 모친인 하와는 소말리아 국경 마을 돌로에서 압디왈리를 뉜 침대 옆에 앉아 두 달 된 딸에게 모유를 먹이며 교외의 먼지 낀 임시 캠프로 돌아갈 희망적인 계획을 세웠다.

케냐 출신의 베테랑 간호사로 행정 업무도 담당하는 파투마 모하메드는 "이런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라고 말했다. 파투마는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분투 중인 소말리아 남부의 건조한 가시투성이 평원에서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으로 씨름 중인 17명의 영유아를 돌본다.

하와(22)는 아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아이에게 먹일 음식이 없지만 이웃들이 도와줬다"라고 말한다. 아들이 열과 설사로 몇 주 동안 몸이 쇠약해진 끝에 병원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소말리아 남서부 국경 지역의 먼지투성이 작은 마을 돌로에 위치한 작은 병원은 수년간 압디왈리와 같은 아이들을 조용히 돕고 있다. 영국 정부 및 기타 기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기본적인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지역사회 일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돌로 마을뿐만 아니라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가 통제하는 분쟁 지역 깊숙한 곳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5번 연속 우기가 찾아오지 않자, 돌로 마을은 밀려드는 피난민으로 압도됐다. 압디왈리의 가족처럼 소가 죽고 밭이 마른 수만 명의 가족이 음식과 안전한 쉼터를 찾아 붐비는 비공식 정착촌에 모였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의 압둘카디르 모하메드는 더 많은 가족이 더 큰 캠프로 몰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위험에 처한) 수십만 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지원할 자원이 부족하다"라고 설명한다.

의사들은 압디왈리를 보온 담요로 감싸 체온을 올리려 했다
사진 설명, 의사들은 압디왈리를 보온 담요로 감싸 체온을 올리려 했다

병원에는 100명가량의 여성이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를 돌보며 체중을 측정하고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일랜드 자선단체 '트로케어(Trocaire)'를 대리해 이 병원의 영양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파멜라 와송가는 "이곳 상황이 정말 나빠질 것이다. 곧 공식적인 (기근) 선언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유엔은 앞으로 소말리아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670만 명에게 식량 원조가 필요할 것으로 경고했다.

하룻밤 사이에 압디왈리의 상태가 악화됐다. 다음날 오전 9시가 지나자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고 2명의 소말리아 의사가 포일로 만든 온열 담요로 아이를 재빨리 감쌌다. 두 개 건너 침대에서 18개월 된 여자 아기도 똑같은 긴급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의사가 압디왈리의 축 늘어진 팔 아래에 체온계를 끼웠을 때, 모하메드는 "상황이 정말 걱정된다. 이 아이들은 온도 조절이 잘 안돼서 안정화 센터에서는 (천장) 선풍기를 절대 켜지 않는다. 아이가 따뜻해지면 생존율이 더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아이의 아버지인 케라드 아단(28)도 병원에 도착해 초조해하며 침대 주위를 서성거렸다.

이번 가뭄이 오기 전에는 돌로 마을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콴삭스디어 부근 베이 마을의 초가집에서 4명의 자녀를 키우고 40마리의 소를 돌보며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베이 마을은 가뭄의 한가운데에 있다.

두 달 전에는 가족의 부의 원천이던 마지막 가축이 세상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부모는 당나귀 수레에 몇몇 짐을 싣고 가족과 함께 북쪽으로 6일간의 도보 이동을 결심했다. 알샤바브 무장세력은 마을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지만, 아단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선에서 가족을 보내줬다.

소말리아 가뭄 실태
사진 설명, 소말리아 가뭄 실태

의사들이 갑자기 압디왈리 주변에 모였다. 한 명은 심장 박동을 자극하기 위해 가슴을 두 손가락으로 거듭 압박했다. 다른 의사는 아이의 멈춘 동공을 확인하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모는 침대 발치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구름이 꼈던 그날 오전 10시 13분, 모든 것이 끝났다.

압디왈리의 모친이 침대에 엎드려 울기 시작하자 모하메드는 "심장박동이 멈췄다"라고 속삭였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한듯한 모하메드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아기를 구해냈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병원의 대표 의사 알리 슈엡은 "간단히 예방하고 고칠 수 있었을 상황을 목격하면 너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라고 말했다.

압디왈리의 아버지는 몇 분 뒤 전화를 걸어 친척에게 알리고 그날 오후 장례식을 계획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조용한 목소리로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라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다음 날, 압디왈리의 부모 하와와 케라드 아단

사진 출처, BBC/ Ed Habershon

사진 설명, 아들을 잃은 다음 날, 압디왈리의 부모 하와와 케라드 아단

구급차가 병원 밖 좁은 골목으로 후진하자 압디왈리의 부모가 올라탔다. 케라드는 두텁게 감싼 아들의 시신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안고 있었다.

이후 파멜라 와송가는 방문자에게 병원의 약국과 작은 검사실을 보여줬다. 파멜라는 2011년 기근 당시 케냐의 집을 떠나 처음으로 소말리아에 왔고 지금까지 머무르는 중이다.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지난 10년간의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한 결과 훨씬 더 나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현장에 더 많은 (국제) 단체가 있고, 접근이 어려운 먼 곳까지 손을 내밀 수 있는 지역 단체가 늘어났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또 다른 기근이 닥친 지금, 수도 모가디슈의 정치적 격변 상황 속에서 대응이 지연되자 병원은 (아마도 일시적이겠지만) 국제 지원 자금의 절반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저마다의 이유로 혼란에 빠진 세계 각국이 현재 소말리아에서 진행 중인 기근 사태의 심각성을 한발 늦게 인지하고 있다. 최신 자료에 따르면, 가뭄 대응에 필요한 인도적 지원 자금이 현재 절반도 확보되지 았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2017년 소말리아의 마지막 대기근 동안 2억파운드(약 3236억원) 이상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지만, 올해 지원 규모는 4분의 1에 못 미친다.

와송가는 "전 세계가 소말리아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소말리아는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 각국의 도움 없이는 처참한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압디왈리는 라단 캠프 끄트머리에 묻혔다

사진 출처, BBC/ Ed Habershon

사진 설명, 압디왈리는 라단 캠프 끄트머리에 묻혔다

구급차가 마을 동쪽 변두리의 라단 캠프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가족의 텐트 밖에 모여 있었다.

거친 바람이 두꺼운 먼지 회오리를 만들었다. 누군가 아이의 몸을 씻기 위해 플라스틱 물통을 가져왔다. 또 다른 이는 장례를 위해 질 좋은 흰 아마포 조각을 사왔다. 그런 다음 두 명의 이웃이 무덤을 파기 위해 삽을 어깨에 메고 울타리가 쳐진 황무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이가 묻힌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작은 무덤이 있었고, 그 사이의 한곳을 택했다.

한 시간 후, 하와가 무덤에 도착했다. 전통에 따라 여성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와와 그 모친은 먼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주장했고, 무덤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른 여성과 함께 앉았다.

"최선을 다한 걸 알고 있어요." "남은 아이를 위해 힘내야죠." 모여 앉은 여성들은 조용히 위로와 격려를 건넸고, 케라드는 다른 남성과 교대로 곡괭이를 휘둘러 딱딱하고 메마른 땅을 파냈다.

짧은 기도가 이어진 뒤 아이를 땅에 묻었다. 압디왈리의 부모는 새 터전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평원을 쓸쓸하게 가로질렀고 곳곳의 마른 가시덤불 위에서 헝겊 조각과 쓰레기가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