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

두아 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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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가수 두아 리파는 202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팝 앨범상'을 받았으나, '올해의 앨범상'은 받지 못했다
    • 기자, 마크 새비지
    • 기자, BBC 음악 전문 기자

당신이 그래미상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대에 올라와 눈물을 훔치고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수상 소감을 전하고 나면, 음반 판매량 증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아델의 '21' 앨범조차 201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뒤 판매량이 207% 증가했다.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의 하비 메이슨 주니어 최고경영자(CEO)는 수상 이력이 가수의 협상력도 높여준다고 설명한다.

메이슨 CEO는 올해 초 빌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수상을 하면 대중의 관심을 더 끌어모을 수 있고, 그렇기에 가수들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광 효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그래미 수상자들은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보고, 다음 음반에서 스타일 혁신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지아코모 네그로 미 에모리 대학 교수는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이 1978년 그래미 수상식에서 앨범 '루머(Rumours)'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뒤 그다음 앨범 '터스크(Tusk)'에서 꾀한 변화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곡들이 좀 더 단순해지고 심지어 포스트 펑크 장르의 영향도 느껴지며, (전작인 '루머'와는) 굉장히 색다른 앨범"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앨범 '조슈아 트리'로 (198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록밴드 U2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U2는 다음 앨범인 '아흐퉁 베이비(Achtung Baby)'에선 춤과 크라우트록의 느낌을 실었죠. 즉 그래미를 수상한 이후 가수와 대중이 모두 분명히 느끼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네그로 교수를 포함한 연구진은 5년간 그래미 시상식을 연구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두 번째 발견은 더욱 놀랍다.

바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한 가수는 앞서 말한 수상자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즉 기존 음악 스타일과 비슷하며 덜 독특한 음반을 발표한다.

연구진은 "수상 제도가 예술적 차별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다"면서 "시상식의 의도는 그 반대일지라도 말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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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도전한 역대 그래미 수상자 5팀

1) 비틀즈

비틀즈 앨범

1968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바로크팝, 사이키델릭록 등을 실험하며 록의 규칙을 다시 썼다.

그러나 이 앨범의 주인공 비틀즈는 다음 앨범 '더 비틀즈'에서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화려하고 꽉 찬 오케스트라 스타일 대신 기본으로 돌아간, 아방가르드한 미학을 택한 것이다.

수록곡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 중 소음처럼 녹음된 기타 소리는 헤비메탈 장르의 시초를 예견했으며, 또 다른 수록곡이자 갖가지 음을 독특하게 콜라주한 실험적인 곡인 '레볼루션 9'는 급진적 예술을 주류로 들여왔다.

그 결과 앨범 '더 비틀즈'는 비틀즈의 가장 유명하고도 여러 요소가 섞인 앨범으로 기억된다.

2)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데뷔 앨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로 2000년 그래미 수상식에서 최고의 신인상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아길레라는 음반사 RCA와의 힘겨루기 끝에 결국 자기 정체성과 독립성에 관한 거칠고 신랄한 느낌의 후속 앨범 '스트립드'를 내놨다.

당시 대부분 팝 앨범이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했지만, 아길레라는 수록곡 '파이터'에선 하드록을, '뷰티풀'에서는 감성적인 사랑 노래를, '더티(Dirrty)'에선 강렬한 클럽 음악을, '인파투에이션(Infatuation)'에선 라틴팝 등을 선보이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시도했다.

아길레라의 날 것 느낌의 감성적인 가사는 리한나, 아리아나 그란데, 마일리 사이러스와 같은 후배 팝 스타들에게도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3) 빌리 조엘

빌리 조엘

빌리 조엘은 5집 앨범의 3번째 수록곡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로 1979년 올해의 레코드 상을 수상했을 당시 소프트 록 발라더 스타일에 진저리가 났다.

경기장에서 열린 조엘의 공연은 매진됐고, 조엘은 그 커다란 공간을 가득 채우기 위한 더 하드한 느낌의 경쾌한 노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조엘은 다음 앨범에서 빠른 템포의, 기타 소리를 크게 높인 수록곡 '잇츠 스틸 락 앤 롤 투 미(It's Still Rock and Roll To Me)'를 발표했다. 빌리 조엘의 첫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조엘은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고나와 어느 정도 판매량을 보장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면서 "솔직히 그렇게 비슷한 음악을 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내 음악 커리어도 가망 없게 될 뻔했다. (기존 음악 스타일을 선호하는) 한 관객을 버리고 다른 관객을 매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4) 빌리 아일리시

빌리 아일리시

빌리 아일리시는 데뷔 앨범 '웬 위 올 폴 어슬립 웨어 두 위 고(When We All Fall Sleep Where Do We Go)'로 202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포함해 무려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아일리시 또한 다음 앨범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팝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신 진화와 변화를 선택했다.

작년 발매된 아일리시의 두 번째 앨범 '해피어 댄 에버(Happier Than Ever)'에서 보다 성숙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보사노바, 그런지록 장르를 선택한 것이다.

아일리시는 이 앨범으로 올해 초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또다시 이름을 올렸다.

5) 스티비 원더

스티비 원더

스티비 원더는 70년대 그래미 시상식의 엄청난 스타였다. 74년, 75년, 77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각각 앨범 '이너비전스(Innervisions)', '풀필링니스 퍼스트 피날레(Fulfillingness' First Finale)', '송스 인 더 키 오브 라이프'(Songs in the Key of Life)'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최정상 자리에 오른 원더는 이후 기록적인 명반 'Songs in the Key of Life'을 발표한다.

이 더블 앨범에는 '패스트타임 파라다이스(Pastime Paradise)', '서 듀크(Sir Duke)',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 '애즈(As)' 등 주옥같은 수록곡이 담겼다.

창작 전성기에 원더는 사회 비판적 가사와 소울 음악의 급진적인 일렉화를 선보였는데, 이는 이후 프린스와 마이클 잭슨 등 80년대를 풍미한 후배 가수들의 음악적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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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코모 네그로 에모리 대학 교수, 발라스 코박스 예일 대학 교수, 글렌 R 캐롤 스탠퍼드 대학이 함께 진행한 이번 연구의 결과는 다음 달 '미국사회학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연구팀은 1959년 제1회 시상식부터 브루노 마스가 본상 4개 부문 중 3개 부문을 휩쓸었던 2018년까지 그래미 시상식의 "주요 4개" 부문(올해의 앨범상, 최고의 신인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을 연구했다.

또한 미 온라인 음악 데이터베이스 '올뮤직(AllMusic)'의 태그와 '스포티파이'의 메타데이터를 이용해 앨범 12만5000개의 개별곡을 장르, 스타일, 키, 템포, 에너지, 댄스 적합성, "어쿠스틱함" 등의 기준으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음악 장르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계산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특정 음반이 그 스타일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그 정도를 측정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래미 수상자들이 수상 이전에는 보통 기존 장르에 속하는 곡을 내놓다가 수상 이후에야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한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진은 수상에 따른 자신감과 영향력 증대를 그 원인으로 봤다.

이에 더불어 수상을 하게 되면 가수가 상업적 성공을 중요시하는 음반사와 맞설 힘이 생겨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녹음하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그로 교수는 이러한 더 실험적인 음반이 그 이전 음반보다 종종 저조한 성과를 거둔다고 말했다.

네그로 교수는 "(수상) 이후 발매된 앨범이 반드시 비평가들로부터 더 좋은 찬사를 얻고 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건 아니"라면서 "흥미로운 난제이다. 가수는 새로운 길을 시도하지만, 관객은 반드시 그 길을 따라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후보로 지명됐다가 수상하지 못한 가수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만들면서 팬층을 유지해나간다.

스눕독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스눕독은 그래미 역사상 가장 불운한 음악가로, 1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가수들이 수상에 실패한 뒤 더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에 관해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진은 '은메달 증후군'으로 알려진 현상 때문으로 추측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1892년 제안한 개념인 '은메달 증후군'은 경주에서 은메달을 따느니 차라리 꼴찌를 하겠다던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의 발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인펠드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면 기분이 좋아진다. 동메달을 따면 '음, 그래도 뭔갈 얻었잖아'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메달을 따면 마치 '축하해, 거의 이겼네. 이 모든 패배자 중에선 그래도 첫 번째로 들어온 거야'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죠."

"패배자 중 1등이라는 거죠."

이렇듯 "성공에 거의 가까웠던"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가수들로 하여금 자신의 음악적 본능을 의심하게 하거나, 심지어 "전설적인 선배 가수"를 모방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네그로 교수의 설명이다.

끝에 가서 연구진은 그렇다면 '과연 후보 명단을 발표하지 않는 편이 음악계에 더 나은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구진은 "(후보 명단을 발표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최종 후보로 선정된 가수들이 관습적인 행동을 취할 유인이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후보 명단을 공개하면 설령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앨범 판매량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선택은 그래미 시상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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