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위기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던지는 경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선 20년 만에 처음으로 스리랑카가 외채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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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선 20년 만에 처음으로 스리랑카가 외채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 기자, 수란자나 트와리
    • 기자, BBC 아시아 비즈니스 전문기자

전례 없는 심각한 경제 위기로 스리랑카에서 대규모 시위에 더불어 대통령이 국외로 탈출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다른 국가들 또한 비슷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부채 수준이 높고 정부의 해결 역량 및 옵션이 부족한 국가에선 상황이 특히 어려워질 수 있다. 스리랑카의 상황이야말로 경고음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발도상국에서 4개월 연속으로 자본이 유출되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이들 국가의 꿈이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스리랑카는 외환 위기에 빠지면서 국민 2200만 명에게 필요한 식량, 연료, 의약품과 같은 주요 수입 물자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전년 대비 물가는 50%가량 상승했으며, 특히 식량 가격은 80%나 치솟았다.

스리랑카 루피(LKR)의 가치는 올해 들어 미국 달러나 다른 주요 글로벌 통화 대비 크게 떨어졌다.

이번에 물러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는 이들이 많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미 경제가 어려웠는데 실정을 거듭하며 상황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수년간 막대한 부채 부담을 안고 있던 스리랑카는 지난달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선 20년 만에 처음으로 외채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국가가 됐다.

스리랑카 당국은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IMF와 협상을 벌여왔으나, 현재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면서 이 또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물가 상승, 주요국의 금리 인상, 통화 가치 절하, 높은 국가 부채, 외환 보유고 감소 등의 세계적인 역풍은 비단 스리랑카만의 문제가 아니며, 아시아 지역 다른 국가도 위협하고 있다.

한편 몇몇 이러한 개발도상국은 주로 중국서 대규모 차관을 도입했기에, 이들 국가의 운명은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 대한 중국의 대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또는 부채 재조정 가능 여부에 대해선 대체로 불분명한 상태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앨런 키넌은 이러한 국가에서 경제적 수익이 크지 않은 값비싼 인프라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지원한 건 중국의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라자팍사 가문과 이들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 이러한 정치 실패가 스리랑카 경제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더 민주적인 정치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스리랑카가 현재의 악몽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입니다."

한편 스리랑카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듯한 국가들이 있어 우려스럽다.

라오스

인구 750만여 명의 동남아시아 내륙 국가 라오스 또한 몇 달째 외채 채무 불이행 위험에 빠졌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유가 상승으로 연료 공급이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미 국민의 약 3분의 1가량이 빈곤한 라오스에서의 식량 가격은 치솟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연료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으며, 일부 가정에선 공과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의 통화인 킵(LAK)의 가치는 급락해, 올해 들어서만 달러 대비 3분의 1 이상 떨어졌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 강세와 현지 통화 약세로 라오스의 부채 부담과 수입 비용은 더욱 커졌다.

이미 국가 부채가 상당한 라오스는 대출을 상환하거나 연료 등의 수입품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라오스의 외환보유액은 13억달러다. 그러나 이는 2025년까지 라오스가 매년 상환해야 할 부채와 거의 같은 수준이며, 라오스 국내 총수입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라오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정크" 등급, 즉 고위험군으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라오스의 수력발전소나 철도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위해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다. 실제로 라오스 관료와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해만 중국이 라오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813건으로, 160억달러어치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은 국가 부도 직전인 듯한 라오스에 계속 차관을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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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중국은 국가 부도 직전인 듯한 라오스에 계속 차관을 제공해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라오스의 공공 부채는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88%에 달하는 규모이며, 이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된다.

전문가들은 1975년 이후 라오인민혁명당이 유일한 정당으로 권력을 잡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스의 수년간 경제 실정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라오스는 (노력한다면) 구제금융이 필요한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과의 교역이 증가하고 있고, 수력 전기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했다.

파키스탄

파키스탄 당국은 중단됐던 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재개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고자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연료 보조금을 폐지하자 지난 5월 말 이후 연료 가격은 90%가량 상승했다.

파키스탄은 인플레이션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파키스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21.3%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키스탄의 외환보유고도 지난해 8월 이후 절반 가까이 줄어들며 스리랑카, 라오스처럼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동차, 철강 등의 대규모 산업에 1년간 10%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해 19억3000만달러의 세수를 확충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정부 세입과 지출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구제금융 재개를 위한 IMF의 핵심 요구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 신용평가사 S&P 글로벌레이팅스의 앤드류 우드 국가 분석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파키스탄 정부가 이러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다른 대출 기관도 기꺼이 대출을 연장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제위기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이러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임란 전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4월 해임됐다.

지난달 파키스탄 정부의 한 장관은 수입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민들에게 차 소비량을 줄여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매년 차 수입액으로 5억1500만달러 이상을 기록하는 등 세계 최대 차 수입국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의 우르두어로 차는 '차이(cha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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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파키스탄은 매년 차 수입액으로 5억1500만달러 이상을 기록하는 등 세계 최대 차 수입국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의 우르두어로 차는 '차이(chai)'다

여기서도 중국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중국 차관이 파키스탄 전체 대외 부채의 4분의 1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드 분석가는 "파키스탄이 중국으로부터 상업 차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의 외환보유액이 다소 회복됐다. 또한 올해 하반기에 다시 중국에 손을 내밀 조짐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몰디브

인도 남서쪽 인도양의 섬나라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몰디브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공공 부채 부담이 증가해 현재 GDP의 100%를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다.

스리랑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몰디브 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공공 부채 비율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세계은행은 다양화되지 않은 경제 구조상 몰디브는 특히 연료비 상승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은 몰디브를 2023년 말까지 디폴트 위험이 큰 국가로 분류했다.

방글라데시

지난 5월 방글라데시의 물가상승률은 7.42%로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보유고가 감소하면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발 빠르게 불필요한 수입품을 막았으며, 재외국민 수백만 명의 송금을 유치하기 위해 규정도 완화했고, 공무원의 해외 출장도 줄였다.

S&P 글로벌레이팅스의 킴 엥 탄 국가 분석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은 보조금 증대에 따른 심각한 역풍을 맞고 있다. 파키스탄과 스리랑카는 IMF와 외국 정부에 재정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탄 분석가는 "방글라데시는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소비 활동을 제한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미 타격 입은 세계 경제가 위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년간 국채 규모를 늘려왔던 개발도상국들은 경제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탓에 이번 세계 경제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