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꿈꾸는 싱가포르 청년들

건물과 남성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2013년 기준 싱가포르 15~34세 미혼 남녀 중 약 97%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 기자, 사만다 휘키 요우
    • 기자, BBC 패밀리트리

싱가포르 청년 대부분은 부모님과 함께 산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며 독립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싱가포르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알렌(27)은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로 결심했지만, 부모님께 말을 꺼내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알렌은 부모님이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혹은 화를 내실까 봐 두려웠다고 한다.

사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삶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알렌이 남동생과 함께 살던 부모님의 집은 방 3개짜리 아파트로 알렌이 즐겨 찾는 모든 게 모여있는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매일 밤 알렌은 부모님이 차려주신 집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따로 빨래할 필요도 없었다.

알렌은 "사실 (부모님 집에서 날) 밀어내는 요소는 없었다. 끌어당기는 요소만 있었을 뿐"이라면서 "(그러나)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혼자 있는 건 어떨지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 느낌 다들 알지 않나"고 말했다.

서구 문화권에서 성인이 되어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는 일은 많은 이정표 중 하나일 뿐이다.

이와 달리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문화 및 정서상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심지어 부모에 대한 무례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3년 기준 15~34세 미혼 남녀 중 약 97%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향은 효심과 관련된 뿌리 깊은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청년 부동산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싱가포르 국민 대부분은(2022년 기준 80% 이상)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이 지원하는 공영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공영 아파트에 사는 국민의 약 90%가 살고 있는 집의 소유자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오직 결혼한 이성애자 부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미혼일 경우 35세가 넘어야 공영 아파트를 살 수 있다.

공영 아파트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은 민간 부동산 시장을 통해 부동산을 구할 수 있지만, 이는 공공주택에 비해 훨씬 비싸다.

싱가포르 리서치 기업 밸류챔피언 조사에 따르면 ft²(약 0.0929㎡) 당 가격을 비교했을 때 민간 아파트 가격이 공공주택의 평균 3배 이상이었다.

추아 벙 후앗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이처럼 높은 비용으로 인해 "미혼 청년 대부분이 사실상 부모와 계속 함께 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도심에서 떨어진 북동부 후강 지역에 대학 친구 2명과 아파트를 구한 알렌처럼, 오랜 문화적 규범에 저항하는 밀레니얼 및 Z세대 청년이 늘고 있다.

이들은 여러 이유로 독립 비용을 치를 가치가 있다며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다.

'말 그대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공간이죠'

최근 몇 년간 월셋집을 구하는 싱가포르 현지인이 늘어가는 추세다. 원래는 싱가포르에 온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장이다.

월세가 갈수록 비싸지고 있지만, 부모에게서 독립해 월세를 내고 사는 35세 미만 미혼 싱가포르 남녀는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독립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 부동산 업체인 프로퍼티구루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22~39세 사이의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독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추아 교수는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와 함께 살기) 불편해진다"며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생활이 잘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인끼리 함께 지내기엔 "까다롭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청년 브렌다 탄

사진 출처, Brenda Tan

사진 설명, 싱가포르 청년 브렌다 탄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성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고 말했다

알렌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싱가포르 청년 브렌다 탄(26)은 22살 때 부모님 집에서 나와야 할 이유가 딱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탄은 더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다.

탄은 우선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 친구들과 방을 함께 썼다. 이후 미국 뉴욕에서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함께 지낼 사람을 구해 살았다.

그러나 탄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현재 컨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는 탄은 자신만의 원룸을 얻기까지 과정을 기록한 영상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건) 모든 게 자동 조종 모드로 돼 있는 듯한, 즉 이미 모든 일이 다 돼 있는 환경과 같다"고 말했다.

"나만의 공간, 때로는 나의 식단에 대한 통제권을 오롯이 나 자신이 갖고 있는 게 아닌 거죠… 그냥 식탁에 차려져 있는 걸 먹으니까요."

이제 26살이 된 탄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생활용품 브랜드를 고르는 등 삶의 구석구석에서 주인의식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또한 일도 더 창의적으로 잘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독립은 제가 진정 즐기는 방식으로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저 자신이 이제 꽃을 피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어른이 될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있으니까요."

물론 세대를 막론하고 부모와의 동거는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요즘 청년 세대가 평균적으로 부모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으며, 이에 따라 소득수준도 더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추아 교수의 설명이다.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25~34세 국민의 57%가 대졸자였다. 20년 전인 2000년의 24.4%에 비하면 2배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10년 전의 46.5%에 비해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지출에 대한 우선순위가 달라지면서 싱가포르 청년들이 월세를 내고서라도 독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점점 늦어지는 싱가포르 내 혼인 연령을 꼽아 볼 수 있다.

추아 교수는 "예전이라면 25~34세 사이 사람들은 대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이미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 공공 주택을 구매할 자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 점점 더 많은 싱가포르 청년들은 독립의 맛을 보기 전까지 결혼을 미루고자 한다.

이에 대해 추아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효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효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표시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또 다른 사회학자인 탄 언 세르 박사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청년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해 자기만의 공간을 얻는 등 선호하는 생활방식이 있다"면서 "그렇다고 이들이 부모에 대해 신경을 덜 쓴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부모에게서 떨어져 살게 되면 숨통도 더 트이고, 이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부모와 성인 자녀 간의 유대감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는 청년들

알렌과 탄처럼 자립을 위해 둥지를 벗어나는 이들도 있지만, 부동산 중개인인 윌리엄 탠은 최근 월셋집을 찾는 성소수자(LGBTQ)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탠은 과거 월셋집을 구하는 고객은 대부분 외국인이었지만, 이제 이러한 흐름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탠이 성소수자들을 위해 개설한 페이스북 부동산 페이지에는 싱가포르 청년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놀랍지 않다. 싱가포르 정부의 주택 정책은 성소수자들에게 크게 불리하다. 이에 따라 35세 이하의 성소수자들에겐 자기만의 집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비난하는 분위기는 크게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이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성소수자임을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2018년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이 동성 결혼을 '언제나 혹은 거의 언제나'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청년들은 친구나 동료보다 가족의 동성연애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탠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성소수자 청년들이 더 강하게 독립을 원하게 됐으리라고 봤다. "지난 2년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정에서) 아마 갈등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탠은 경험상 "많은 성소수자 청년들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며 "이들의 가정 분위기가 매우 비우호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열악한 가정환경과 같이 독립을 부추기는 요소가 성소수자 청년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가족과 비좁은 집에 함께 살거나, 가족 구성원과 침실을 공유해야 하는 청년들의 경우 마치 압력밥솥에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지아는 부모님, 언니와 함께 방 두 개짜리 공영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일 무렵 지아는 빠르게 실습생 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재택근무는 "지옥"이었다고 한다.

지아의 언니 또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이들 자매는 때론 회의 시간이 겹치기도 하는 등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던 지아의 부모님은 코로나19 봉쇄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집에 계속 머물게 되자 더 자주 언쟁을 벌였다.

지아는 "좁은 공간이었기에 이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서 "한번은 전화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뒤에서 소리 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아는 진지하게 독립을 고민했다. 더 조용히 일하고 살 수 있는 조건은 분명 유혹적이었지만, 결국 현실을 고려해야만 했다. 지아는 지금 상황에선 월급의 대부분을 월세로 내느니 저축하는 게 더 낫다고 봤다.

또한 "부모님을 뒤로한 채 떠났다면 죄책감을 크게 느꼈을 것 같다"는 이유도 지아를 붙잡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아가 독립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다. 특히 현재는 실습생이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월급이 50%가량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이 주요 결정 요소라고 했다. 지아는 "이제 가족 구성원 모두 재택근무 등을 끝내고 집 밖으로 자주 나오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견딜만하다"면서 "그러나 만약 (부모님) 사이가 2년 전처럼 다시 더 틀어지면 이번에는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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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싱가포르의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공공 주택 정책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끈다

'가장 잘한 소비'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은 성공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지만, 최근 여러 미묘한 변화가 보여주듯이 청년들의 요구와 열망은 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공 주택 정책을 개정해 청년들, 그중에서도 소외 계층도 더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청년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

세르 박사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청년들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해" 주택개발청이 미분양 아파트를 임대하거나 특별 설계된 임대 아파트를 추가로 짓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책이 "싱가포르 청년들이 새롭게 선호하는 생활 조건 등을 수용"하고 "해당 정책에서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현재의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독립과 더 나은 삶을 우선시하며 둥지를 떠나 월셋집을 찾는 싱가포르 청년들은 점점 더 많아져 주류가 될 것이며 금기시하는 분위기도 약해질 것이다.

점점 증가하는 청년 실소득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할 것이다.

또한 효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면 더 많은 청년들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게 될 것이다.

한편 탄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독립으로 좋았던 건 단순히 자유로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탄은 "가장 잘한 소비"였다면서 "혼자 살게 되면서 내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됐는데, 내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알렌 또한 비슷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비록 부모님은 아들의 결정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알렌은 "부모님은 내 결정을 부모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마치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싫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라고 회상했다. 부모님은 아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확고히 결심한 알렌의 모습에 포기했다.

독립한 이후 알렌의 생활비는 크게 올랐다.

알렌은 여전히 매달 "용돈" 명목으로 부모님께 400싱가포르달러(약 37만원)를 드린다고 했다. 정규직으로 입사해 첫 월급을 받은 뒤부터 계속 드렸다.

또한 이전에는 부모님이 모두 부담했던 식료품, 수도전기가스비, 보험료 등을 직접 내야 하며, 집세도 내야 한다.

그러나 알렌은 이러한 비용을 독립에 따르는 의미 있는 대가로 여긴다고 했다.

알렌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면서 "여기에 가격을 매길 순 없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알렌과 지아의 성은 생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