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흑해 지배권 다툼 속 전략적 요충지가 된 '스네이크 섬'

사진 출처, PLANET LABS PBC
- 기자, 소피 윌리엄스, 폴 커피
- 기자, BBC New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흑해의 스네이크 섬(즈미니 섬)은 전략적 요충지로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거의 신화 속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 손에 넘어간, 이 특별한 것 없는 바위투성이 섬은 주요 전쟁터가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스네이크 섬 탈환을 위해 특수부대, 군용기, 헬기, 드론 등을 동원했지만 참패해 큰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작전이 섬의 시설과 배를 공격하는 데 그쳤다고 맞받아쳤다.
영국 국방부 정보 당국은 흑해 주도권을 위한 이번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며 러시아는 섬에 노출된 자국의 수비대를 보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기가 1㎢ 도 안되며 이름과 달리 뱀이 살지 않은 스네이크 섬은 그 규모는 작지만, 흑해 서부 제해권을 위해선 꼭 거쳐야 할 요충지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전문가인 올레 즈다노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스네이크 섬 점령에 성공해 장거리 방공 시스템을 구축하면 흑해 북서부 지역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남부의 육, 해, 공을 손에 넣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UKRAINIAN GROUND FORCES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 호'는 지난 2월 개전 몇 시간 만에 스네이크 섬으로 향했다. 이후 이곳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수비대원들에게 "유혈사태와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폭격하겠다"라며 항복을 종용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군함, 꺼져라"라는 수비대원들의 대답은 가히 전설이 됐지만, 실제로는 더 거친 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러시아는 스네이크 섬을 손에 넣었으나, 불과 몇 주 뒤 모스크바 호는 흑해에서 침몰했다.
영국 정보 당국은 모스크바 호가 침몰하면서 스네이크 섬으로 향하던 러시아 보급선들에 대한 보호 능력이 매우 축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위치를 공고히 한다면 흑해 대부분을 장악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인접국, NATO에 대한 위협
흑해 내 러시아의 병력 증강은 우크라이나에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재앙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최대 항구 도시 오데사를 폐쇄해 주요 수출 품목인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즈다노프는 이제 스네이크 섬이 "제2의 최전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가 스네이크 섬에 장거리 방공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설치한다면 우크라이나 해안에 도달할 수도 있는 러시아 함대를 방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인접한 트란스니스트리아로도 진입할 수 있게 된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의 친러 지역으로 개별적인 독립을 선언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스네이크 섬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는 루마니아가 있다. 루마니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이다.
영국의 해군 전문가 조나단 벤담은 스네이크 섬 내 러시아의 첨단 방공 미사일 시스템 'S-400' 배치는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가 이곳에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한다면 우크라이나 오데사뿐만 아니라 NATO의 남쪽 영역도 위험해진다는 게 루마니아의 역사학자 도린 도브린쿠의 경고다.
도브린쿠는 "(러시아의 미사일 시스템 배치는) 루마니아 정부와 국민뿐만 아니라 NATO 전체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러시아는 NATO 동쪽 영역의 도시들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과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NATO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벨기에와 프랑스군을 루마니아국경으로 보내 동쪽 국경의 병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비단 국방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위험도 고려해야 하는 처지다.
스네이크 섬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간 국경을 이루는 다뉴브강 하구와 인접해있으며 루마니아의 흑해 항구인 콘스탄차 또한 스네이크 섬에서 그리 멀지 않다.
현재 콘스탄차에는 더 이상 오데사로 갈 수 없어 발이 묶인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해있다.
러시아의 군사 및 정치 분석가인 알렉산더 미하일로프는 스네이크 섬에 군대를 주둔시키면 흑해 북서쪽 및 다뉴브강 삼각주로의 해상 교통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뉴브강 삼각주는 유럽 남동부로 향하는 관문이다.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하일로프는 "스네이크 섬에 군사기지나 군사 인프라를 유지하면 다뉴브강으로 들어오고 나가려는 선박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의 유럽-대서양복원력센터(E-ARC)는 러시아가 스네이크 섬을 합병하고 남쪽의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향하는 흑해 항로를 최대한 통제하려 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1948년 소련에 할양되기 전까지 스네이크 섬은 루마니아의 영토였다. 당시 루마니아는 1989년까지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었기에 스네이크 섬을 넘겨주는 데 합의했다.
이후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이 섬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결국 2009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나서 영토 분쟁 해결에 나섰다. 이에 따라 루마니아는 스네이크 섬 근처 흑해 대륙붕의 거의 80%에 대한, 우크라이나는 그 나머지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스네이크 섬은 전략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탄화수소가 풍부한 흑해에 위치해 더욱 가치 있는 곳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흑해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언뜻 보기엔 별로 가치 없어 보이는 작은 바윗덩어리인 스네이크 섬. 그러나 이번 전쟁 속 스네이크 섬의 운명을 향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