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라크파: 동굴에서 태어난 미혼모...세계 최고의 등반가가 되기까지

셰르파 라크파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청소부로 일하는 미혼모였으며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셰르파 라크파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청소부로 일하는 미혼모였으며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셰르파 라크파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청소부로 일하는 미혼모였으며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누구보다 많이 등반한 여성이다.

라크파는 또 다시 기록을 깰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BBC에 "산악 등반의 역사를 쓰고 제 목표를 이루는 데 매우 근접해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10번째로 등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막내딸 15세 샤이니는 베이스캠프에서 떨리는 감정으로 조심스레 엄마의 등반을 지켜봤다.

"어머니를 존경해요.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많은 것을 성취했거든요."

그러나 라크파의 노력과 업적은 아직 돈이나 명예로 환산되지 않았다.

동굴에서 태어나다

라크파는 해발 4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마을에서 삶을 시작했다.

그는 "나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도 모른다"며 "여권에 48세라고 적혀있다"고 웃음 지었다.

라크파는 티베트 유목민의 후손인 셰르파족에 속한다. 셰르파족은 위험하고 높은 곳에서 사는 것에 익숙하다.

학교를 그만두다

라크파와 두 딸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라크파와 두 딸

"몇 시간 동안 걸어서 학교에 갔어요. 때때로 남동생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했고요. 근데 외면당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에 여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거든요."

네팔 동부의 마칼루 지역에 위치한 라크파의 고향은 대부분 농업 지역이다. 전기도 학교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라크파를 만든 마법과도 같은 자연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에베레스트 산이다.

네팔 동부의 마칼루 지역에 위치한 라크파의 고향은 대부분 농업 지역이다. 전기도 학교도 없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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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파는 "나는 에베레스트 바로 옆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며 "에베레스트는 계속해서 나를 흥분시키고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1953년 인류가 처음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정복한 이래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매년 그 봉우리를 오르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들은 꼭 현지 셰르파 가이드와 짐꾼들을 고용해왔다.

그러나 라크파와 같은 일부 셰르파들은 도우미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산악인이 됐다.

'아무도 너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라크파의 부모님은 라크파가 산악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그러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라크파의 부모님은 라크파가 산악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라크파의 엄마는 그가 자신이 너무 남성적이고 바람직하지 않게 변해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산악인은 남자의 일"이라며 "시도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기록을 세우다

라크파는 2003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며 3번이나 정상에 오른 첫 여성이 됐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라크파는 2003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며 3번이나 정상에 오른 첫 여성이 됐다

라크파는 이러한 우려들에도 2000년, 에베레스트 최고봉 등반에 성공했다.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때 제 꿈에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속으로 '더는 그냥 가정주부가 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셰르파 문화를 바꾼 것 같았습니다. 셰르파 여성과 네팔 여성의 지위 말입니다."

"저는 집 밖에 있는 것을 즐겼고 그 느낌을 모든 여성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라크파는 2003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며 3번이나 정상에 오른 첫 여성이 됐으며, 이후에도 더 많은 신기록을 세워나갔다.

2003년 등정 당시 라크파는 그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8000미터 높이 등반에 성공했고, 기네스북이 인정한 에베레스트 등반 첫 삼 남매가 됐다.

"제 형제 세 명이 에베레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여동생 중 한 명이 에베레스트에 두 번 올랐고요."

그 후 라크파는 미국에 본거지를 둔 루마니아 태생의 산악인 조지 디자메스쿠와 결혼하여 그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을 5번이나 등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새 보금자리

라크파는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2015년 이혼으로 관계가 끝났다.

라크파는 현재 두 딸과 함께 미국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다. 그는 또한 이전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 있다.

라크파는 등정 초기 정상에 네팔 국기를 꽂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등정에 미국 국기를 들고 나섰다.

'이발 비용조차 없었다'

등반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최저 임금을 벌며 일했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등반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최저 임금을 벌며 일했다

라크파의 업적은 언론의 관심과 후원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다.

등반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최저 임금을 벌며 일했다.

"노인들을 돌보거나, 집안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일을 했어요. 돈을 많이 벌지 못했죠."

"옷을 살 수도 없었고, 심지어 헤어컷 비용도 없었어요.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다음에 에베레스트로 갈 정도의 여유가 있기를 바라야 했죠."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도 라크파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라크파는 가이드로 일하며 두 번 등반을 완료했고, 때때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의 등정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제게는 또 다른 스포츠입니다. 열정이기도 하죠. 다만 위험도에 비해 보상이 크지는 않습니다."

라크파는 등반이 그를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마을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왔다고 믿는다.

크라우드 펀딩

라크파의 9번째 등반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라크파의 9번째 등반

재정적인 여건은 라크파가 영어를 배운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행사에서 연설을 하거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9번째 등반에 후원자를 얻었다. 바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다.

라크파는 지형에 익숙한 만큼 등반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정상에 가기 전에 적응을 위해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야 합니다."

악천후와 싸우다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다가 사망했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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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파는 항상 기도로 등반을 시작한다. 안전이 가장 큰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때마다 정상에 올랐다. 사고를 당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시체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다가 사망했다. 라크파와 동료들도 등반 과정에서 얼음이 된 시체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2014년에는 등반가가 아닌 16명의 셰르파 가이드들이 눈사태로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2015년에도 눈사태로 21명이 사망했다.

라크파는 "산이 날씨를 결정한다. 날씨가 안 좋을 때는 그냥 기다리고는 한다. 우리는 산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산소가 떨어진다며 "8000미터를 넘으면 좀비가 된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먹을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얼어있어요. 밤에 올라가야 낮에 밝은 상태에서 하산할 수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에요."

정상을 즐길 시간은 짧다

라크파는 정상에서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사진 설명, 라크파는 정상에서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6000명 이상의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했다. 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바는 정상에서 보낼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라크파는 정상에서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라크파는 자신이 정상에 오르면 "먼저 사진을 찍는다. 나는 보통 친구, 가족, 부모님, 제 딸들, 그리고 저를 지지해 준 많은 이들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 "안전한 하산에 대해 생각도 한다"고 덧붙였다.

엄마를 따라가다

막내딸 샤이니는 엄마가 하산하는 동안 수천 미터 아래에서 그의 등반을 축하하기 위해 기다린다

사진 출처, Lhakpa She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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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파의 아이들은 엄마의 여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크파는 딸들을 마칼루 베이스캠프까지 데려갔다. 맏딸 써니는 이미 등반에 관심이 많다.

막내딸 샤이니는 엄마가 하산하는 동안 수천 미터 아래에서 그의 등반을 축하하기 위해 기다린다.

"엄마가 등반할 때면 엄마 생각을 많이 해요. 가끔 대화하기도 하지만 산속 인터넷은 아주 안정적이지는 않아요. 원할 때마다 전화하기는 어려워요."

샤이니는 진로를 결정하기 전 몇 년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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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샤이니는 진로를 결정하기 전 몇 년 지켜보려 한다

샤이니는 미국에서 자라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향수가 비교적 많지 않다. 그러나 그조차도 네팔 집을 방문할 때면 감정적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샤이니는 진로를 결정하기 전 몇 년 지켜보려 한다.

등반이라는 스포츠에 큰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엄마가 어떤 도전이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도 말했다.

계속 도전할 것

라크파는 아직 은퇴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는 다음 목표로 세계 제2의 고봉 K2를 정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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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라크파는 아직 은퇴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는 다음 목표로 세계 제2의 고봉 K2를 정복하고자 한다

라크파는 아직 은퇴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는 다음 목표로 세계 제2의 고봉 K2를 정복하고자 한다.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산은 저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줬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를 보는) 젊은 여성들이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라크파는 그의 자식들과 에베레스트를 함께 등정할 날도 꿈꾸고 있다.

"등반은 제 열정 그 자체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