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인간: 암으로 숨진 노모를 '냉동 보존'한 아들의 사연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추도 개념이 없어요. 늘 그냥 계신다고 생각하니까. 잠시 주무시고 계시는구나."
지난 추석을 앞두고 서울 외곽 한 사찰에서 만난 김정길(가명) 씨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찰 명패엔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지만, 가족들은 아버지 제사만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해 4월 말 혈액암으로 숨진 80대 노모를 '냉동인간'으로 보존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600명의 냉동인간이 존재하는데, 그중 한국인은 2명이다. 김 씨의 어머니는 한국 첫 사례였다.
그도 처음부터 냉동 보존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암 투병 중이었지만 어느 날 어머니의 증세가 갑자기 심각해졌다. 급성 패혈증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던 도중 어머니의 몸부림은 그에게 충격으로 남았다.
"그거는 안 본 사람은 몰라요. 앰뷸런스 들썩거릴 정도로 난 가기 싫은데 왜 너희 아버지가 나 부르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옆자리에서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제가 엄마한테 속으로 그랬어요. 아픈 몸으로 살아서 고생하는 거보다 차라리 잠시 쉬고 계세요. 의학이 발전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 어머니마저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던 김 씨는 이렇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는 "절대 울지 않는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라며 "그걸 생각하니 속된 말로 화장해서 가루로 만들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시신 화장을 3시간 정도 앞둔 시점에 내린 결정.
그는 냉동보존을 담당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한국 제1호 냉동인간 절차는 시작됐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해동연구개발 전문기업인 '크리오아시아(KrioAsia)'의 한형태 대표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김 씨의 음성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부모님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생활하셨던 분들이 의뢰하시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그분도 50년이 넘게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오셨고, 또 갑작스럽게 병을 얻으셔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부분에 대해 조금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셨던 것 같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냉동보존은 4단계를 거친다.
물론 사망 선고가 내려져야 조치할 수 있다.
심정지가 온 후에도 몇 분 동안은 뇌와 각각의 장기들은 아직 산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능이 유지된다. 이후 장기 기능이 완전히 멎기 전에 이를 얼리는 것이 냉동보존의 원리다.
의사의 사망 선고 이후 사체를 수술대로 옮겨 신체 온도를 영하로 낮춘 다음 전신의 피를 뽑고 냉동보존액을 주입한다. 냉동보존액은 부피 변화를 억제해주고 얼음 결정 생성을 막는 역할을 한다.
보존액 주입이 마무리되면 냉동인간은 액체질소가 채워진 챔버에 들어가 영하 196℃의 온도로 보관된다.
현재 김 씨 어머니의 시신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질소 냉동고에 있다.
기술적 한계...해동 기술 개발 중
보존 계약기간 100년 하지만 아직 기술적 한계는 많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깨어나려면 해동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동결기술은 어느 정도 검증이 이뤄진 반면, 해동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현실화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만 확인했다고 말한다.
크리오아시아의 기술 책임자이자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 김시윤 교수는 이식용 장기를 극저온에 보관했다가 해동하는 기술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지금은 해동기술이 걸음마 수준이다"라면서 "얼린 장기 및 시신의 안이랑 바깥을 동일하게 녹일 방법이 없는 게 현재의 한계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특히 액체질소를 이용해 급속 냉동한 개구리나 금붕어가 미지근한 물에서 자연스럽게 해동되는 모습은 냉동인간을 소개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이는 초저온 액체질소를 통해, 냉동 시 우려되는 세포조직의 파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된다.
하지만 냉동인간 해동 기술이 언제쯤 완성될지는 아직 명확하진 않다.
"정말 1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장담을 못 할 것 같아요. 근데 좋은 여건이 갖춰져서 공동 연구를 같이 하실 분들이 있다라는 조건이라면 이 기술이 된다 안 된다를 확인할 수 있는 데는 사실 한 10년 정도면 가능할 거예요."

그는 꼭 냉동인간만을 위해서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장기 이식 비율 높여 사람을 살리는 일에 이 기술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이식용 장기들이 시간 안에 사용되지 못하면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안전하게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 이식용 장기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기에 딱 나타나게 되면 다시 녹여서 이식하면 그 환자분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다양한 시선
냉동보존에 대한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국내 첫 냉동인간 사례가 보도되자 온라인에서는 김 씨의 선택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럴 거면 시신 기증이나 해라', '임종하신 분을 편히 가게 해줘라'라는 반응이었다.
김 씨는 "순리대로 해야지, 돈이 썩어났니…. 이런 댓글도 있고. 그런데 순리라는 게 뭔가요? 저는 고정관념의 동의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의 정하린 교수는 "냉동인간의 꿈 역시 고인에 대한 애정과 추모를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친밀한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면서도 "지식과 기술은 양면성을 갖고 있어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용인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에 맞추어 발전하지 않으며,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그 결과는 인류가 예상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구현 가능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사회 안에서 윤리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
김 씨는 냉동인간에 대해 여러 가지 시선이 공존하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일이 뭐인 거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라며 반문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게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고뇌를 한 게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 '소나기'를 약간 피할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지금 신체 보존까지 한 거예요."

사진 출처, 김정길
혹시라도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김 씨가 가장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그냥 잘 쉬셨냐고. 그거밖에 없죠."
"제가 봐서는 (어머니께서 깨어나시면) 아이고 아들 반가워 이러실 것 같아요. 잘했어 잘못했어가 아니고 너무 반가워 우리 아들 너무 반가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