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싱: 캘리포니아, 동의 없이 콘돔 빼면 '성폭력'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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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tty Images/BBC

약 30년 전, 성노동자였던 맥신 두건은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임신했다.

두건은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새로운 남성 고객과 함께 있다가 남성이 성관계 중 몰래 콘돔을 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건은 충격을 받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남성은 사라진 후였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두건은 가까운 진료소에서 여러 종류의 성병 검사를 받았고, 각 검사에서 음성 결과가 나오자 조용히 안도하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6주 후 두건은 임신중절을 신청했다. 수술 비용은 당시 300달러었고, 그는 수술 후 한 달간 휴직해야 했다.

남성이 저지른 일은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두건이 아는 한 불법 행위는 아니었다.

두건은 "그런 행위를 당했을 때 의지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두건 같은 사람들이 의지할 법률이 생겼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7일 "스텔싱", 즉 상대방의 동의 없이 콘돔을 제거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초당적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이 캘리포니아주의 성폭력에 관한 민법에 추가되면서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스텔싱을 범죄화한 첫 번째 주가 됐다.

이 법은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두건이 30여 년 전 당한 성폭력에 대해 명확한 법적 구제책을 제공한다. 두건과 달리, 오늘날 법정 재판을 감내할 수도 있는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이 법은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고 법안 지지자들은 주장했다.

법안을 발의한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하원의원은 "우리는 스텔싱이 부도덕할 뿐 아니라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미 하원의원은 이전에 스텔싱 법안 통과를 두 차례 실패했지만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BBC

사진 설명,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미 하원의원은 이전에 스텔싱 법안 통과를 두 차례 실패했지만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르시아 의원은 수 년 동안 이 법안의 법률화를 연구해 왔다. 그는 2017-2018년 스텔싱을 형사 처벌하는 법안을 도입했고 검사들이 가해자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논의되지 못했고 청문회도 열리지 않았다.

이번에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민법만 개정한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성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형사 고발은 할 수 없다.

가르시아 의원은 "나는 여전히 이 법이 형법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BBC에 말했다. "파트너간 동의가 깨졌다면 성폭력의 정의, 즉 강간 아닙니까?"

입법 분석가들은 스텔싱이 형법에 명백히 기술돼있진 않지만 성폭력 경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르시아 의원이 발의한 새로운 법은 민사 고소에 관한 사항들을 명확하게 해주며,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성폭력 생존자들이 재판에 임하는 길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가르시아 의원은 "우리는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스텔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2017년 당시 예일대 로스쿨 학생이었던 알렉산드라 브로드스키의 연구 논문을 읽고 스텔싱을 하원에서 논의하는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브로드스키는 스텔싱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인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민권 변호사인 브로드스키는 성폭력에 공정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다룬 '섹슈얼 저스티스(Sexual Justice·성 정의)'의 저자이다. 그는 합의된 연인 관계나 성적 관계의 맥락에서 이뤄졌다면 성폭력을 겪지 않았을 생존자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자신의 논문에 상세히 기술했다.

브로드스키는 생존자들의 설명이 종종 "강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으로 시작된다고 썼다.

그들은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성폭력 피해의식은 물론 성병 전염과 임신에 대한 공포에 관해 브로드스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이전에 강간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많은 생존자들은 스텔싱이 성폭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브로드스키는 사람들이 아직 스텔싱과 성폭력을 연관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생각에, 문제의 주안점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로드스키가 2017년에 발행한 논문은 "스텔싱"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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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브로드스키가 2017년에 발행한 논문은 "스텔싱"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다만 캘리포니아 상원 법사위원회가 가르시아 의원의 법안을 평가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한 연구는 스텔싱이 "절망적으로 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2019년 미 국립의학도서관에 발행된 논문은21-30세 여성 중 12%가 스텔싱을 겪었다고 기술했다. 같은 해, 호주 모나쉬대학의 연구원들은 남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 5명 중 1명과 여성 3명 중 1명 꼴로 스텔싱을 당했다고 밝혔다.

2019년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남성의 거의 10%가 성관계 중 파트너의 동의 없이 콘돔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브로드스키는 스텔싱에 관한 조언으로 유명한 블로거의 말을 논문에 인용했는데, 그 블로거는 파트너 몰래 콘돔을 빼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과거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유했다. 해당 웹사이트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 댓글러들은 여성의 의무는 다리를 벌리는 것이고, 남성의 권리는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스텔싱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이에 대한 입법 활동은 뒤쳐져 왔다.

영국, 뉴질랜드, 독일 등 스텔싱을 성폭력으로 간주해 온 국가들에서도 행위의 의도를 입증하는 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스텔싱이 기소되는 일은 드물다.

여기서 민사소송이 장점을 발휘한다. 형사 사건보다 입증 부담이 덜하고, 검사가 아닌 성폭력 생존자가 소송 청구를 추진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브로드스키와 가르시아 의원은 주정부가 스텔싱을 불법 행위라고 공식 규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했다.

브로드스키는 "캘리포니아주가 스텔싱 생존자들에게 이런 대우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할 때 생존자들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라"며 "이는 법적 해결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두건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변론 단체 '성노동 제공자의 법률, 교육, 연구 프로젝트(ESPULP)'의 지지를 받았다.

두건은 성노동자들은 관계 중 콘돔을 빼는 고객들을 이 법으로 고소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법이 형사사법제도로부터 소외된 성노동자들과 그 외 단체들에 대한 추가적인 법적 보호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두건은 "스텔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건을 제기할 때 발생하는 문제도 여전하다. 브로드스키는 성폭력을 고소하는 사람들은 종종 "철저한 조사와 회의론"에 직면한다. 스텔싱에 관한 한, 이러한 회의적 반응은 "정의에 따르면, 가해는 섹스에 동의한 후 발생한다"는 이유로 더 심해진다.

그러나 최근 뉴욕과 위스콘신에서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 시도가 실패한 후, 캘리포니아의 움직임은 중요한 첫 걸음마로 축하받고 있다.

가르시아 의원은 "나는 캘리포니아가 미 전역 최초로 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자랑스러운 한편, 다른 주의회 의원들에게도 이를 빨리 따르라고 촉구하고 있다"며 "이제 49개 주가 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