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디즈니가 빚은 첫 동남아 공주...'정체불명' 논란도

디즈니가 낳은 '라야'는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Disney

사진 설명, 디즈니가 낳은 '라야'는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 기자, 이베트 탄
    • 기자, BBC 뉴스

지난 4일 공개된 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제작됐다. 90년에 달하는 디즈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주인공 라야가 분열된 지역에서 사람들을 연대시키며 세상을 구한다는 게 주된 이야기다.

하지만 인류애라는 서사 외에 영화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11개국으로 이뤄진 동남아시아는 6억73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수십 개가 넘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확히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디즈니 주인공이 이를 제대로 구현한 것인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동남아시아 요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가상의 국가 쿠만드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5개 부족이 쪼개진 쿠만드라에서 살고 있는데, 각 지역은 저마다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

돈 홀 감독은 제작팀은 여러 동남아시아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BBC에 밝혔다.

영화는 수천 년 동남아시아의 모습을 상상해 표현했다.

이에 따라 영화 곳곳에는 동남아시아권 특유의 문화 요소가 녹아 있다.

주인공 라야가 쓴 모자는 필리핀 전통모자 '살라콧'을 연상시킨다.

라야와 툭툭

사진 출처, Disney

사진 설명, 라야와 툭툭

라야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야가 이동 수단으로 타고 등장하는 '툭툭'은 필리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륜 차량에서 영감을 받았다.

라야의 전투 스타일의 경우,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예 '실랏'에서 영감을 받았다.

제작자 오스넛 슈러는 "(동남아시아에) 깔려있는 보편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노력했다"며 "공동체 의식과 함께 일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라고 밝혔다.

'동남아시아의 정체성'... 대체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여러 집단의 이질적 문화를 이것저것 뽑아내 한 작품에 모두 담아내는 건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태생의 공동 각본가 아델 림은 영화가 더 심오한 부분을 녹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 '오, 이 모습이 마음에 드니까 넣자' 이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심오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라야의 아버지가 수프를 끓이는 장면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동남아시아에서는 음식을 통해 사랑이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그게 저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지점이었죠."

하지만 한 인도네시아 누리꾼은 BBC에 "동남아 전체를 대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문화 하나에 집중해야 했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사 측은 작품이 단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이며, 한 문화나 국가에 초점을 맞출 의도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공동 각본가 퀴 응우옌은 "아서왕 전설이 유럽 각지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그 설화에서는 영국적인 요소와 프랑스적인 요소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완전히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되, 그 DNA는 실존하는 지역에서 비롯된 겁니다. 저희는 악당들이 태국에서 왔고 선한 사람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구성하게 된 겁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상상의 나라 쿠만드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진 출처, Disney

사진 설명,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상상의 나라 쿠만드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데이비드 림 말레이시아 오픈유니버시티 부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이 지역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 지역별로도 문화 이질성이 큰데, 여기에 식민지배 결과까지 더해진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과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림 교수는 "식민지배 역사가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어떤 문화를 더 닮고자 하는지, 누구와 동일시하는지 등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국가보다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을 잘 알지 못할 겁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사는 사람들은 태국보다 프랑스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지요."

그는 또한 유럽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유럽인'으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동남아시아 주민들은 자신들을 '동남아인'으로 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음식을 두고 각자 자국의 요리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일례다.

림 교수는 "이 지역에는 민족주의 관련해 국가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음식을 두고 원조 논쟁이 진행 중이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동남아시아에서는 음식을 두고 원조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는 다만 영화 한 편에 전체 지역을 담아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동남아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는 걸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투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남아시아를 다뤘고, 이 지역에서 대화를 끌어내는 이야기로 보면 될 것 같아요."

관객들도 림 교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디즈니가 다양성을 품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한 관람객은 트위터에 이런 평을 남기기도 했다.

"완벽한 대변은 아니지만,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